[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쟁의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빨라지고 있다. 드론과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는 수년이 아닌 수개월 단위로 개량되고 있으며 새로운 전술도 빠르게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 각국 군대의 무기 획득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민간 기술을 군에 신속하게 적용하기 위해 획득 체계 개편에 나서며 대표적인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반면 국내 신속획득 체계는 여전히 실증과 시범사업 중심에 머물러 있어 전력화 연결 측면에서 한계를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 기술부터 찾는 미국···달라진 획득 방식
10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민간 기술을 군에 신속하게 적용하기 위한 조직과 제도를 잇달아 확대하고 있다.
신속획득은 기존 무기 획득 절차보다 빠르게 신기술을 시험·평가해 군에 적용하기 위한 제도다. 최근 전장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미국은 민간 기술을 신속하게 군에 도입하는 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실제 미 국방부는 국방혁신단(DIU), 미 공군 산하 혁신조직 에이에프웍스(AFWERX), 전략자본실(OSC) 등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과 자율체계, 상업용 소프트웨어의 군 활용을 확대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국방혁신단은 실리콘밸리 기업과 국방부를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민간 기술을 발굴해 군이 시험하고 실제 사업으로 연결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DIU는 자율체계와 AI, 우주, 사이버, 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에이에프웍스 역시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국방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기존 방산기업뿐 아니라 민간 기술기업이 국방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실증과 사업화를 지원하는 구조다.
전략자본실은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민간 투자를 확대해 국방 산업 기반을 강화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단순히 기술을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혁신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미 육군은 지난 3월 검증된 무인항공체계를 신속하게 구매할 수 있는 'UAS 마켓플레이스(Marketplace)'를 출범했다. 미 육군에 따르면 현장 부대는 해당 플랫폼을 통해 검증된 드론을 비교·평가하고 신속하게 구매할 수 있다. 과거처럼 요구 성능을 정하고 수년간 개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빠르게 시험하고 도입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전쟁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무기 성능 자체보다 새로운 기술을 얼마나 빠르게 발견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 미국은 전력화까지 연결···한국은 실증 이후가 과제
전문가들은 미국의 신속획득 체계 핵심이 ‘빠른 실험’이 아니라 ‘빠른 전력화’에 있다고 평가한다. 미국은 민간 기술이 군 활용성을 입증하면 후속 사업과 조달, 전력화로 연결하는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국방혁신단과 에이에프웍스가 단순 연구개발 지원 조직이 아니라 실제 획득 체계와 연계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미 국방부는 특정 무기체계 개발보다 자율체계와 AI 기술을 신속하게 시험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방향에 무게를 두고 있다. 군이 먼저 기술을 확인하고 활용성을 검증한 뒤 후속 사업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에 비해 국내 신속시범사업은 시제품 개발과 군 활용성 확인에는 일정 부분 성과를 내고 있지만, 이후 양산과 전력화 단계로 이어지는 구조는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5월, 적 자폭드론 대응을 위한 '대드론 하드킬 근접방호체계' 신속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적 드론을 탐지한 뒤 요격드론이 직접 충돌해 격추하는 개념으로 사업규모가 약 170억원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신속획득의 성과를 사업 수나 시제품 숫자가 아니라 실제 전력화 비율로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형곤 한국국방기술학회 센터장은 “군 활용성이 확인된 과제는 신속하게 양산 단계로 연결할 수 있는 패스트트랙 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한국의 차이가 시제품을 만드는 속도가 아니라 검증된 기술을 실제 전력으로 연결하는 속도에 있다는 설명이다.
◇ 기술을 찾는 미국···소요를 만드는 한국
전문가들은 또 다른 차이로 기술 탐색 방식에 주목한다. 기존 군 획득 체계는 군이 필요한 장비를 정의하고 세부 요구조건을 작성한 뒤 업체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하지만 AI와 드론,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변화하는 최근 전장에서는 기술 발전 속도가 군의 소요 결정 속도를 앞지르는 경우가 늘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 먼저 기술을 탐색하고, 군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국방혁신단 역시 특정 제품보다 군이 직면한 문제를 제시하고 민간 기업이 해결책을 제안하는 구조를 활용하고 있다. 이는 군이 기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술 발전 흐름을 먼저 파악하고 활용 가능성을 검토하는 방식에 가깝다.
반면 국내는 여전히 소요 결정과 요구 성능 중심의 사업 구조가 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 센터장은 “개별 품목 중심의 수요 조사에 머무르기보다 합참과 각 군 차원에서 기술 발전 추세를 반영한 중장기 기술 확보 로드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민간 혁신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도 중요한 차이로 꼽는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국방혁신단과 에이에프웍스 등을 통해 작은 업체가 군 사업에 진입한 뒤 후속 사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며 “국내는 시범사업 이후 실제 사업으로 연결되는 사례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차이가 단순히 기업 육성 차원을 넘어 신속획득 체계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요소라고 평가한다. 새로운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계속 등장하고 성장해야 군도 변화하는 전장 환경에 맞춰 기술을 빠르게 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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