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1500원대는 외환위기의 재현이 아니다. 미국의 고금리와 전쟁, 외국인 주식 매도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환율이 단기간에 급등한 것은 맞다. 그러나 이런 충격이 잦아든다고 원화가 과거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현재의 원화 약세에는 일시적인 시장 불안과 한국 자본이 해외로 이동하는 구조 변화가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10일 <뉴스로드>가 2021년 평균 1144원에서 2026년 6월 1520원까지 오른 376원을 요인별로 분해한 결과, 달러 강세와 한미 금리 차, 지정학·정치 위험, 외환시장 수급 불안 등 순환·사건 요인이 약 67%를 차지했다. 국민연금과 금융기관, 가계, 기업의 해외 자산 매입에서 비롯된 구조적 자본유출은 33%였다.
두 요인이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지속 기간이 다르다. 달러 강세와 한미 금리 차, 지정학적 위험, 수급 불안이 완화되면 환율 상승분의 약 3분의 2는 줄어들 수 있다. 반면 연기금과 가계, 기업의 해외 자산 매입에서 비롯된 구조적 자본유출은 단기 충격이 사라진 뒤에도 환율의 장기 수준을 높이는 요인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경상수지 흑자인데도 원화가 약한 현상은 국제수지의 구조를 함께 봐야 이해할 수 있다. 국제수지 회계에서 경상수지 흑자는 준비자산 변동 등을 제외하면 같은 규모의 순자본유출과 대응한다. 한국이 수출과 해외투자 소득으로 벌어들인 외화를 국내 소비와 투자에 모두 사용하지 않으면, 남은 자금은 해외 주식과 채권, 직접투자 형태로 축적된다. 경상수지 흑자와 자본유출은 서로 충돌하는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자금 흐름이 국제수지의 서로 다른 항목에 기록된 결과다.
따라서 환율을 판단할 때 중요한 것은 흑자의 존재가 아니라 무역과 자본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 움직였는지다. 과거에는 수출기업이 달러를 벌어 국내에서 원화로 환전하면 원화 수요가 늘었고, 그 결과 원화가 강해졌다. 지금은 국민연금과 금융기관, 가계, 기업이 먼저 해외 자산을 사기로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달러 수요가 늘어 원화가 약해지고, 약해진 원화가 수출기업의 원화 환산 실적과 가격 경쟁력을 높여 경상수지 흑자를 키운다. 흑자인데도 원화가 약한 것이 아니라, 자본유출이 원화를 약하게 만들고 약해진 원화가 흑자를 늘리는 인과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환율의 성격도 달라졌다. 과거 환율이 수출과 수입이라는 거래 흐름을 맞추는 가격이었다면, 지금은 연기금과 가계, 기업이 이미 쌓아둔 자산을 국내와 해외에 어떤 비중으로 보유할 것인지 조정하는 가격에 가깝다. 월별 무역수지만으로 환율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자본이동이 자유로운 경제에서 환율은 상품 거래뿐 아니라 국내외 금융자산을 보유하려는 의지까지 반영한다.
본지는 이 구조를 국제수지 항등식과 포트폴리오 균형이론, 환율 오버슈팅 모형, 외환시장 주문흐름 이론을 통해 분석했다. 국제수지 항등식으로 경상수지 흑자와 순자본유출의 관계를 확인하고, 포트폴리오 균형이론을 적용해 연기금과 가계, 기업의 해외 자산 비중 확대가 환율의 장기 수준을 어떻게 끌어올리는지 살폈다. 환율 오버슈팅 모형으로는 미국 통화정책 변화가 임금과 상품가격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환율에 먼저 반영되면서 단기적으로 장기 균형 수준을 넘어서는 과정을 분석했다. 주문흐름 이론으로는 외국인의 달러 매수와 수출기업의 달러 매도 보류, 역외 투자자의 매수가 한 방향으로 겹칠 때 외환시장 호가가 비면서 환율 상승 폭이 확대되는 구조를 추적했다.
이론 분석에는 다섯 건의 사건 연구를 결합했다. 2020년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발표 뒤 원화가 하루 만에 약 3% 강해진 사례를 통해 달러 유동성에 대한 제도적 접근성이 원화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했다. 2024년 세계국채지수 편입 확정 뒤 대규모 외국인 채권자금 유입이 예상됐지만 원화 강세가 오래가지 않은 사례에서는 외국인 자금 유입과 환율 안정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살폈다.
2024년 비상계엄 선포 직후 환율이 약 1402원에서 1442원까지 급등한 사건은 국내 정치 위험이 실물경제 지표의 변화 없이도 원화 가치에 즉시 반영된다는 점을 보여줬다. 같은 해 밸류업 계획 발표 뒤 일부 저평가 종목은 올랐지만 환율 반응은 뚜렷하지 않았다.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선언만으로는 가계의 해외 자산 매입과 실제 환전 수요를 바꾸기 어렵다는 뜻이다. 2026년 5~6월 외국인의 20거래일 연속 주식 매도 사건에서는 대규모 달러 매수와 수출기업의 달러 매도 지연이 겹치면서 시장 유동성 부족이 환율의 단기 진폭을 얼마나 키우는지 분석했다.
이 사건 연구에서 얻은 수치 범위를 바탕으로 달러 강세, 한미 금리 차, 지정학·정치 위험, 외환시장 수급, 구조적 자본유출의 기여도를 설정한 뒤 20만회의 몬테카를로 모의실험을 실시했다. 분석 결과 구조적 자본유출은 환율 상승분 가운데 126원, 33.4%를 차지해 단일 요인 중 가장 컸다. 달러 공통요인은 111원, 29.4%, 한미 금리 차는 72원, 19.2%, 지정학·정치 위험은 47원, 12.6%, 수급 혼잡은 20원, 5.3%로 추산됐다.
이를 토대로 산출한 원화의 포트폴리오 균형환율은 달러당 1400~1440원, 중심값은 약 1420원이다. 구매력과 교역조건만 보면 원화의 균형 수준은 이보다 낮지만, 연기금과 가계, 기업의 해외 자산 매입이 이어지는 현실을 반영하면 환율에는 구조적 자본유출에 따른 비용이 추가된다.
현재 환율에는 이 균형 수준을 넘어 약 80~120원의 순환적 위험 부담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 호르무즈 해협 위험 등 지정학적 부담이 30~40원,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경로에 대한 부담이 25~35원, 외국인 매도와 수출기업의 달러 매도 지연, 외환시장 호가 부족에서 발생한 수급 부담이 15~25원으로 추산됐다.
이 위험 부담이 점차 줄어든다는 전제에서 환율의 중심 경로는 3개월 뒤 1520원, 6개월 뒤 1480원, 12개월 뒤 1430원으로 전망됐다. 외국인 매도와 외환시장 호가 부족이 만든 단기 과열은 먼저 완화되고, 미국 통화정책과 지정학적 위험에 따른 부담은 이후 순차적으로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국민연금과 가계의 해외투자가 계속되는 만큼 환율이 1300원대로 곧바로 복귀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전망값을 확정된 숫자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환율은 단기적으로 임의보행에 가까워 3개월 전망만 해도 ±60~80원의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특정 시점의 환율을 맞히는 일이 아니라 예상보다 크게 오를 위험과 크게 내릴 가능성 가운데 어느 쪽이 우세한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현재 전망 분포는 환율이 예상보다 크게 오를 가능성을 뜻하는 오른쪽 꼬리가 두꺼운 형태다. 기업의 환헤지도 중심 전망만이 아니라 이런 급등 위험을 기준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정책의 목표도 환율 숫자를 일시적으로 낮추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외환당국이 달러를 공급하면 일방향 쏠림과 급등 속도를 완화하고 시장 기능을 복원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장개입만으로 국민연금과 가계, 기업의 해외 자산 선호까지 되돌릴 수는 없다.
환율의 장기 수준을 낮추려면 국내 자산의 기대수익과 신뢰를 높여야 한다.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이 일반주주에게 돌아가도록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을 강화해야 한다. 국내에서 성장산업에 투자해 장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자본시장도 만들어야 한다. 해외투자를 막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이 미국 주식과 해외 채권 대신 국내 기업과 자산을 선택할 이유를 만드는 일이 환율정책의 핵심이다.
모리스 옵스펠드 미국 UC버클리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국제통화기금(IMF) 기고문 세계 불균형 평가의 원리와 실제(Assessing Global Imbalances: The Nuts and Bolts)에서 “인구 고령화가 빠른 국가는 근로자들이 은퇴한 뒤 사용할 자금을 축적할 필요가 있다”며 “국내 투자 기회가 적다면 이들 국가가 해외에 투자하고 경상수지 흑자를 내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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