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청암정 물그림자에 비친 닭실마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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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honey] 청암정 물그림자에 비친 닭실마을의 시간

연합뉴스 2026-06-10 12:00:2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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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한 중견 배우의 이름을 내건 동네 탐방 프로그램이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화면에는 푸근한 고향 마을 같은 풍경이 자주 등장한다. 큰 사건은 없어도 낮은 담장과 좁은 골목, 밥 짓는 냄새와 오래된 집들이 남아 있는 마을들이다. 경북 봉화 닭실마을이 바로 그런 곳이다.

석양의 닭실마을 [사진/성연재 기자]

석양의 닭실마을 [사진/성연재 기자]

닭실마을을 방문하게 되니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다. 지난해 작고한 재영 작가 권석하다. 닭실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1982년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에 건너갔다. 이후 런던과 러시아(당시 소련) 법인장으로 일했고, 1990년대 러시아 모라토리엄을 겪은 뒤 런던에 정착했다. 런던에서는 여행사 대표와 칼럼니스트, 저술가로 활동하며 월간조선 등에 영국과 유럽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하늘에서 본 닭실마을. 제일 왼쪽이 청암정이다. [사진/성연재 기자]

하늘에서 본 닭실마을. 제일 왼쪽이 청암정이다. [사진/성연재 기자]

그는 단순한 해외 거주 작가가 아니었다. 영국인도 따기 어렵다는 예술문화역사 해설사 자격인 '블루 배지'를 취득했고, '영국인보다 영국을 잘 아는' 한국인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은 많은 애독자에게 안타까움을 남겼다.

재영작가 권석하 씨 [사진/성연재 기자]

재영작가 권석하 씨 [사진/성연재 기자]

흥미로운 것은 그의 삶이 경북의 오지 봉화의 닭실마을에서 러시아를 거쳐 런던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봉화의 두메산골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유럽의 정치와 역사, 문화와 건축을 해설하는 작가가 됐다.

그의 딸 보라 씨는 영국 런던 해머스미스 앤드 풀럼 자치구의 지방의원으로 활동했다. 닭실마을은 알고 보면 그런 인물을 여럿 배출한 마을이다. 이 마을의 역사는 충재 권벌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권벌은 1519년 기묘사화에 연루돼 관직에서 물러난 뒤 이곳에 터전을 잡았고, 이후 안동 권씨가 약 500년 동안 세거하며 마을을 이뤘다.

모내기 논이 만든 풍경 [사진/성연재 기자]

모내기 논이 만든 풍경 [사진/성연재 기자]

◇ 기라성 같은 인물들 배출한 닭실마을

권벌 이후 닭실마을은 학문과 벼슬, 문장으로 이름난 후손을 여럿 냈다. 권두인, 권두경, 권만, 권상원 같은 인물들이 닭실의 문학과 학문을 이은 이름으로 거론된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 나선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자료는 봉화 유곡리가 조선시대 관리와 문장가를 많이 배출했고,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전개한 인물이 많았던 지역이라고 설명한다.

권상원은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독립을 호소한 유림단의 독립청원 운동, 이른바 파리장서 사건에 참여했다. 경북 봉화에서는 권상원과 권병섭, 권상익 등 여러 유림이 서명자로 이름을 올렸다. 파리장서 사건은 1919년 3·1운동 직후, 전국 유림 대표들이 프랑스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독립을 호소하는 긴 청원서를 보내려 한 독립운동이다. 닭실마을은 조용한 산골 마을처럼 보이지만, 그 안쪽에는 조선 사림의 기억과 문중의 역사, 독립운동의 흔적, 해외로 뻗어 나간 현대 인물의 삶이 겹쳐 있다.

가로등 위 닭 모형 [사진/성연재 기자]

가로등 위 닭 모형 [사진/성연재 기자]

◇ '금닭이 알을 품은 듯'

봉화읍에서 유곡리로 들어서면 낮은 산줄기가 마을 뒤를 감싼다. 들판 너머로 기와지붕과 돌담이 보이고, 마을 안쪽에는 오래된 종가와 정자가 자리한다. 닭실마을은 금닭이 알을 품은 형국이라는 '금계포란형' 지세에서 이름이 비롯됐다. 옛 경상도 사람들은 닭을 '달구'로 읽는 경우도 많았다. 그 덕분인지 주민들은 닭실을 '달실'이라고도 부른다. 마을에는 충재 권벌 종가를 중심으로 고택과 정자, 서원, 유물관이 모여 있다. 골목은 넓지 않다. 낮은 담장 안쪽으로 기와집이 이어지고, 담장 너머로 장독대와 마당이 보인다. 관광지처럼 크게 꾸민 흔적은 많지 않다.

돌다리와 연못이 아름다운 청암정 [사진/성연재 기자]

돌다리와 연못이 아름다운 청암정 [사진/성연재 기자]

집과 길, 밭과 산자락이 지금도 생활의 자리로 남아 있다. 나른한 초여름 날씨였다. 논에는 뒤늦게 모내기를 기다리는 모판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논두렁길 뒤로는 기와집들이 나란히 자리했다. 흙담과 벽체 위로는 불두화가 둥글게 피어 있었다. 흰 꽃송이가 기와 끝에 걸린 모습은 정지용의 시 '고향'을 떠올리게 했다. 고향에 돌아와도 예전 그대로의 고향은 아니지만, 어떤 풍경은 오래전의 정서를 불러낸다.

권벌의 호 '충재'를 기리는 현판 [사진/성연재 기자]

권벌의 호 '충재'를 기리는 현판 [사진/성연재 기자]

닭실마을의 초여름이 그랬다. 발길은 청암정에서 오래 머문다. 청암정은 너럭바위 위에 세운 정자다. 정자 둘레에는 물이 고여 있고, 돌다리가 정자와 바깥길을 잇는다. 바위와 물, 소나무와 처마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자는 크지 않지만, 자리가 좋다. 마루에 앉으면 연못 가장자리의 나무와 담장, 뒤편 산줄기가 차례로 보인다. 청암정은 닭실마을의 첫 장면이 아니라 가장 선명한 장면이다. 정자 하나가 이 마을의 지형과 집안의 역사를 함께 보여준다. 청암정 주변으로는 충재 권벌의 흔적이 이어진다. 종택은 마을 안쪽에 자리하고, 충재박물관에는 집안에 전해 내려온 자료들이 보관돼 있다. 이 마을은 단순한 전통가옥 군락이 아니다.

석천계곡과 석천정사 [사진/성연재 기자]

석천계곡과 석천정사 [사진/성연재 기자]

◇ 석천계곡

석천계곡 쪽으로 가면 풍경은 달라진다. 물은 바위 사이를 지나고, 계곡 옆에는 석천정사가 있다. 석천정사는 충재 권벌의 장자 권동보가 부친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정자로 알려져 있다. 정자 아래로는 물길이 지나고, 주변에는 소나무와 암반이 이어진다. 이곳에서는 건물보다 물소리와 바위의 위치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여름이면 계곡 그늘이 좋고, 가을이면 산자락의 색이 정자 주변을 바꾼다.

이 마을에서 태어난 권 작가의 생애 덕분에 닭실마을은 여느 마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오래된 마을은 사람을 길러 밖으로 내보냈고, 그 사람들이 마을을 빛냈다. 닭실마을은 산 아래에 집과 정자가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고, 정자 아래로 물이 흐른다. 봉화의 깊은 산골에는 그런 구조의 마을이 아직 여럿 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6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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