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동생은 웃었고, 고문피해자는 죽었다, 박영무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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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동생은 웃었고, 고문피해자는 죽었다, 박영무의 두 얼굴

프레시안 2026-06-10 11:32:1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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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2권을 받아 들었다. 박영무(朴英武, 1943~) 항목을 읽다가 한 장면에서 멈췄다. 1987년 9월 박영무 재판부는 박종철(1965~1987) 고문치사를 은폐한 박처원 등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그런데 판결문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이 사건이 피고인들 개인적 욕심 때문이 아니라 한 명의 부하라도 희생시키지 않으려는 간부로서의 인간적인 면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정상을 참작했다."

고문치사를 은폐한 것이 '부하를 지키려는 인간적인 면'이라서 집행유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같은 시기 박영무 재판부는 민주화운동 관련사건 피고인들에게는 징역 5년, 7년, 10년을 연달아 선고했다. 죽은 대학생의 고문범을 풀어주고, 살아있는 학생들을 감옥으로 보냈다. 이것이 박영무의 법이었다.

1943년 함경북도 청진 출생, PK 인맥으로의 진입

박영무는 1943년 3월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 당시 월남한 것으로 보인다. 1961년 부산 경남고등학교를, 1965년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1967년 8월 제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함경도 출신이었지만 경남고를 졸업함으로써 PK 인맥의 중심에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발판을 마련했다. 1970년 문교부장관과 법무부장관을 역임한 권오병의 딸과 결혼함으로써 PK 법조 엘리트 네트워크의 핵심에 진입했다.

이 PK 인맥이 나중에 그의 운명을 갈랐다. '정치판사'로 공개 거명됐음에도 김영삼(1927~2015) 정부에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으로 영전한 것이 그 증거다. PK 정권 아래서 PK 판사는 과거의 오점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세계사 속의 동류, '이중 잣대'의 법관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구조의 인물이 떠오른다. 나치 독일의 법관들 중 일부는 일반 형사사건에서는 비교적 공정한 판결을 내리면서도, 국가가 지정한 '적'에 대해서는 결론이 이미 정해진 재판을 진행했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이중 시스템(dual system)"이라 부른다. 법이 두 개의 기준으로 운영됐다는 것이다. 한 기준은 일반시민에게, 또 다른 기준은 국가가 지정한 적에게.

박영무의 법정도 이 구조와 닮아 있었다. 민주화운동가에게는 중형, 고문범에게는 집행유예. 간첩 혐의자에게는 징역 10년, 전경환(전두환의 동생)에게는 구형의 절반이하. 선고직후 전경환이 방청석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는 언론보도가 이 이중기준을 가장 잘 요약한다.

오휘웅 사건, 결백을 외치며 죽어간 사람

박영무의 이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장면은 1974~1975년 서울지법 인천지원 판사시절의 오휘웅 사건이다. 인천 일가족 살인혐의로 구속된 오휘웅은 수사과정에서 경찰과 검찰의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현장에서 그의 지문이나 혈흔 등 직접증거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유일한 증거는 고문으로 받아낸 자백뿐이었다.

1심 주심 판사 박영무는 오휘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오휘웅은 마지막 순간까지 "죽어 원혼이 되어서라도 고문수사한 사람들과 오판한 사람들에게 복수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1979년 사형이 집행됐다.

수십 년 뒤 경찰이 수사과정에서 고문을 통해 사건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2019년 검찰과거사위원회에서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받아낸 사실이 밝혀졌다. 2021년 2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인권변호사 시절 1992년 항소심부터 이 사건 변호를 맡았던 문재인(1953~) 전 대통령은 "변호사로 35년을 일하면서 가장 가슴 아픈 기억, 한으로 남은 사건"이라고 말했다.

1986~1987년, 서울형사지법의 '정치판사'

1985년 서울형사지법 부장판사로 발령받은 박영무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공안사건과 정치사건의 집중배당을 받기 시작했다. 서울형사지법은 박영무, 정상학, 이철환, 손진곤 등 특정 판사들에게 골치 아픈 정치사건을 몰아주었다. 그 결과 박영무 재판부에서는 법정소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재두 간첩조작사건(1986년)에서 74일 불법구금과 고문을 당한 피해자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고, 구명우 간첩조작사건(1986년)에서 43일 불법구금과 물고문·전기고문을 당한 피해자에게 역시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두 사건 모두 나중에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기록만 꼼꼼히 봐도 불법연행과 불법감금이 드러났는데도 중형이 선고됐다.

1986년 유성환(1935~2018) 국회의원의 "우리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박영무는 징역 1년 유죄를 선고했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 발언은 당연히 면책특권이 있었다. 그런데 원고를 사전 배포한 것이 면책특권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기묘한 논리로 유죄를 선고했다. 항소심과 대법원은 이 판결을 완전히 뒤집었다. 1991년 서울고법은 "면책특권 대상에 해당하므로 재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며 공소기각, 1992년 대법원도 무죄를 확정했다.

문익환(1918~1994) 목사 재판에서는 퇴정한 피고인을 향해 "피고인의 퇴정은 공소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궐석선고를 강행했다. 6월 항쟁 직후인 1987년 7월에도 제헌의회 그룹 관련자들에게 최고 징역 7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박종철 고문범에게는 집행유예, 전경환에게는 구형의 절반

박영무 재판부의 이중기준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두 사건이다. 1987년 9월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관련 박처원 등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부하를 희생시키지 않으려는 인간적인 면에서 비롯된 것"이라 했다. 1988년 9월 전두환(1931~2021)의 동생 전경환의 새마을 비리사건에서는 검찰이 징역 15년을 구형했으나 박영무는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선고직후 전경환은 방청석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언론은 "피고인 대부분의 선고형량이 당초 구형량의 절반 이하로 나오자 검찰은 예상 밖이라는 듯 굳은 표정이었다"고 보도했다.

'정치판사'로 거명됐지만 사법연수원장까지

1993년 국회의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5공 시절 정치사건에 관여한 법관의 명단이 공개됐다. 박영무는 유성환 의원 국시발언 사건 재판장으로 대표적 '정치판사'로 실명이 거론됐다. 그런데 어떻게 됐는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으로 영전했다. PK 인맥이었기 때문이다. 김대중(1924~2009) 정부에서도 서울지방법원장, 대전고등법원장, 사법연수원장까지 올랐다. 그것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에게 법의 이름으로 국가폭력을 자행한 박영무가 입은 유일한 불이익은 대법관이 되지 못한 것뿐이었다.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도 냉전시기 국가가 지정한 '적'에 대해 이중 잣대를 적용한 판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영국은 이후 그 기록을 공개하고, 피해자에게 국가가 공식 배상하고, 제도를 바꿨다. 박영무는 대법관이 되지 못한 것 외에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엄궁동 사건 재심무죄가 나온 2021년, 오휘웅 사건 재심무죄가 나온 같은 해, 박영무는 여전히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 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박영무의 법정을 떠올렸다. 민주화운동가에게 중형을 선고하면서도 고문범에게는 "인간적인 면"을 참작해 풀어준 그 이중 잣대가, 지금도 한국의 어딘가에서 작동하고 있지 않은지를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박영무 ⓒ반헌법행위자열전 제공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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