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 사임 없이 겸직 가능…작년 헌법재판소 결정과 상충
(자카르타=연합뉴스) 손현규 특파원 = 인도네시아에서 군 출신인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이 2024년 집권한 이후 군부의 영향력이 커진 가운데 군인에 이어 경찰관의 외부 직책 겸직도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돼 권위주의 시기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0일(현지시간) 로이터·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의회는 전날 본회의를 열고 현직 경찰관이 민간 정부에서 다른 직책을 겸직할 수 있게 허용하는 국가 경찰법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수프라트만 안디 아그타스 인도네시아 법무부 장관은 본회의에서 "국가경찰이 효과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더 유연한 법체계가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인도네시아 현직 경찰관은 대통령을 비롯해 다른 국가기관이나 부처의 요청이 있을 경우 국가경찰청 외 조직의 다른 직책도 맡을 수 있다.
이 경우 사임할 필요는 없지만 겸직하는 업무가 국가기관이나 부처의 안전, 질서, 법 집행 등 경찰 임무와 관련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경찰관은 사직하거나 퇴직한 후에만 경찰 외 조직의 직책을 맡을 수 있었다.
개정안 심의를 담당한 사리푸딘 수딩 하원의원은 "행정부는 경찰관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며 "(겸직하는) 경찰관들이 사임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권 단체들은 과거 수하르토 독재 정권처럼 군이나 경찰이 민간 분야에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권 단체인 국제앰네스티 인도네시아지부 소속 하에릴 할림은 "정부가 군법 (개정안)에 적용한 방식을 그대로 반복한 것 같다"며 "권력자들이 자신들을 뒷받침하는 데 군과 경찰을 이용하는 권위주의 (회귀의) 징후"라고 비판했다.
앞서 인도네시아 의회는 지난해 3월 군인 신분으로 겸직할 수 있는 관료직 수를 확대한 군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번 국가 경찰법 개정안은 경찰관이 외부 직책을 맡을 경우 사임해야 한다고 명시한 지난해 헌법재판소 결정과도 충돌한다.
또 다른 인권 단체인 인도네시아 법률구조재단 소속 무하맛 이스누르는 "현직 경찰관을 각 부처나 국가 기관에 배치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경찰의 전문성을 훼손하고 공무원의 경력 체계를 교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1968∼1998년 수하르토 독재 정권 시절 현역 군인이 정부 관료를 비롯해 주지사나 시장 등 직책을 맡았고 각종 국영 기업에서도 일하는 등 사실상 군부가 정부와 기업을 장악했다.
수하르토 정권이 퇴진한 뒤 인도네시아는 민주화를 거치며 군법을 개정해 국방부와 국가정보국 등 일부 기관에서만 군인이 일할 수 있도록 했다.
2024년 10월에 취임한 프라보워 대통령은 수하르토 정권에서 특수부대 사령관으로 복무하며 파푸아와 동티모르 등지에서 반정부 세력을 강경 진압하고 민주화 운동가들을 납치한 의혹을 받았다.
그는 옛 장인인 수하르토 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찬양해왔고, 대통령 당선 후에는 군인 출신답게 정부 내에서 군부 영향력을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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