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영 더봄] 실크로드 낙타 방울 소리 머금은 황금빛 살구의 문명사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전지영 더봄] 실크로드 낙타 방울 소리 머금은 황금빛 살구의 문명사

여성경제신문 2026-06-10 10:17:48 신고

주황빛 여름햇살을 품은 황금빛 열매 살구 /픽사베이
주황빛 여름햇살을 품은 황금빛 열매 살구 /픽사베이

여름 햇살을 품은 황금빛 열매

6월 초여름 시장과 과일 가게 진열대에 노란빛과 주황빛이 어우러진 작은 열매들이 탐스럽게 익어간다. 살구다. 매끈한 껍질과 은은한 향 그리고 달콤함 속에 숨어 있는 산뜻한 신맛은 무더운 계절을 앞둔 사람들의 입맛을 깨운다.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살구는 매실이나 복숭아에 비해 다소 낯선 과일일 수 있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살구는 매우 오래된 과일 가운데 하나다. 오히려 사과나 배보다 먼저 인간과 함께한 과일이라는 주장도 있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살구를 먹고 말리고 저장하며 삶의 지혜를 이어왔다.

특히 살구는 단순한 과일을 넘어 문명과 문명을 연결한 상징적인 존재였다. 동서양을 잇던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하며 각 지역의 문화와 식생활 속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황금빛 살구 한 알에는 인류의 교역과 여행 그리고 문화 교류의 역사가 담겨 있다. 

실크로드가 키운 과일

살구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와 중국 서북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고고학자들은 지금의 중국 신장 지역과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야생 살구가 자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건조한 기후와 풍부한 일조량은 살구가 자라기에 이상적인 환경이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이미 4000년 전부터 살구를 재배한 기록이 남아 있다. 살구나무는 아름다운 꽃과 열매 덕분에 귀하게 여겨졌으며 의학과 교육의 상징으로도 사용되었다. 중국 고전에는 명의가 살구나무를 심어 숲을 이루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훗날 중국에서는 의술을 뜻하는 말로 행림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데 여기서 행이 바로 살구를 의미한다.

살구는 중국을 출발해 서쪽으로 향하는 상인들의 낙타 행렬과 함께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했다. 비단과 향신료, 차와 함께 살구 씨앗과 묘목도 오아시스 도시들을 거쳐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오아시스는 살구 재배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했다. 여행자들은 긴 여정 속에서 쉽게 상하지 않는 말린 살구를 중요한 식량으로 이용했다. 건조한 환경에서 수분이 빠진 살구는 단맛이 더욱 농축되었고 무게는 가벼워져 휴대가 편리했다.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한 것은 물건만이 아니었다. 음식 문화와 생활 방식도 함께 이동했다. 살구는 그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였다.

아르메니아 영혼 상징

실크로드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한 살구는 특히 아르메니아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살구가 민족의 상징인 아르메니아 국기 /픽사베이
살구가 민족의 상징인 아르메니아 국기 /픽사베이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살구를 민족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실제로 학계에서는 살구의 학명인 프루누스 아르메니아카가 아르메니아의 자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비록 살구의 원산지가 아르메니아는 아니지만 유럽인들이 처음 접한 우수한 품질의 살구가 아르메니아를 통해 전해졌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도 아르메니아의 국기 색 가운데 주황색은 살구를 상징한다는 해석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여름이 되면 시장에는 신선한 살구가 넘쳐나고 가정마다 살구잼과 살구 주스를 만든다.

살구나무는 목재로도 사랑받는다. 아르메니아 전통 악기인 두둑은 살구나무로 제작되는데 깊고 애잔한 음색 덕분에 영혼의 소리라고 불린다. 한 나라의 과일이 음악과 문화 정체성에까지 영향을 준 셈이다.

이웃한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도 살구는 귀한 식재료였다. 사람들은 살구를 말려 겨울철 비상식량으로 저장했고 견과류와 함께 디저트로 즐겼다. 일부 지역에서는 양고기 요리에 말린 살구를 넣어 단맛과 풍미를 더했다. 오늘날 중동 요리에서 과일과 고기를 함께 사용하는 조리법의 뿌리 역시 이러한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 식탁에서 다시 피어난 살구

살구가 유럽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로마 시대 이후였다. 로마인들은 동방 원정을 통해 살구를 접했고 이를 지중해 연안 지역으로 가져왔다. 이후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으로 재배가 확산되면서 살구는 유럽 여름 식탁의 중요한 과일이 되었다.

프랑스 남부에서는 잘 익은 살구로 타르트를 만든다. 버터 향이 풍부한 반죽 위에 살구를 촘촘히 올려 구워내면 새콤달콤한 향이 여름 햇살처럼 퍼진다. 이탈리아에서는 살구를 넣은 케이크와 잼이 사랑받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살구 만두인 마릴렌크뇌델이 유명하다.

이탈리아에서 즐겨먹는 살구잼 /픽사베이
이탈리아에서 즐겨먹는 살구잼 /픽사베이

튀르키예 동부 말라티아 지역은 오늘날 세계 최대 건살구 생산지로 알려져 있다. 여름철 수확한 살구를 햇볕에 말려 만든 건살구는 전 세계로 수출된다. 실크로드 시대 대상들이 휴대하던 말린 살구가 현대 글로벌 식품 산업의 중요한 상품으로 발전한 것이다.

살구는 영양학적으로도 주목받는다. 주황색을 만드는 베타카로틴은 체내에서 비타민 A로 전환되며 식이섬유와 칼륨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특히 건살구는 수분이 제거되면서 영양 성분이 농축되어 건강 간식으로 인기가 높다.

그러나 살구의 진정한 가치는 영양 수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살구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 과일이었다. 동양의 과수원에서 시작된 작은 열매는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하며 수많은 민족의 식탁에 오르고 각자의 문화 속에서 새로운 음식으로 탄생했다.

햇살아래 노랗게 익어가는 살구 /픽사베이
햇살아래 노랗게 익어가는 살구 /픽사베이

초여름 햇살 아래 노랗게 익어가는 살구를 바라보면 낙타 방울 소리를 울리며 사막을 건너던 대상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은 비단과 보석뿐 아니라 씨앗과 이야기를 함께 운반했다. 그리고 그 여정의 흔적은 오늘날 우리가 먹는 살구 한 알 속에도 남아 있다.

달콤함과 신맛이 공존하는 살구의 맛은 어쩌면 실크로드 자체를 닮았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문화가 만나고 헤어지며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냈던 길. 살구는 그 긴 여정의 기억을 품은 채 지금도 매년 여름 황금빛 열매로 우리 곁을 찾아오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전지영 푸드칼럼니스트(foodnetworks@hanmail.net)

전지영 세계식문화 칼럼니스트 

식품영양학 전공 후 청와대 비서실 영양사를 거쳐 외식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대학 겸임교수 및 농식품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음식을 단순히 먹는 대상이 아닌 한 사회의 시간과 기억을 이어주는 언어로 바라보며 유엔식량기구(FAO)와 주요 언론에 칼럼을 연재해 왔다. 식탁 위 한 그릇의 음식에서 세계의 문화와 삶을 읽어내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람으로 남고자 한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Copyright ⓒ 여성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