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림을 그린 순간을 기억하나요? 아마 세 살 때였던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이셨거든요. 덕분에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그림 도구를 접할 수 있었죠. 연필이나 볼펜 한 자루만 있어도 제가 원하는 모양대로 선이 생긴다는 사실 자체가 늘 설레고 행복했습니다. 무엇보다 어머니께서 제 그림을 보고 칭찬해주시는 게 저에게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어요. 생각해보면 그리는 행위는 항상 제 삶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제 삶의 의미가 없다고 느낄 정도니까요.
화면을 가득 채운 형상들은 신체의 일부를 연상시킵니다. 과거 병리적 경험에서 기인한 도상으로 알고 있는데, 당시의 어떤 경험이 작가님의 작품 세계에 파동을 남겼는지 궁금합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첫 여름방학 때였어요. 갑자기 엄청난 불안이 찾아왔습니다. 병원의 여러 과를 돌며 검사를 받았는데 신체에는 이상이 없었고, 결국 신경정신과로 연결되어 입원하게 되었죠. 두 달 정도 병원에 있었는데, 그때 병실 침대에 누워 현재 제 작업과 비슷한 분위기의 환각을 많이 봤습니다. 인간 혹은 어떤 생물인 듯한 무언가가 근육, 살, 피부, 장기 같은 것으로 파편화되어 실내 공간에 붙어 있거나, 떠 있거나, 어딘가에 기대어 있는 장면이었어요. 기괴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당시에 그 장면들이 두렵진 않았어요. 오히려 그 감각이 제 작업의 중요한 단서처럼 느껴졌죠.
두렵지 않았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오히려 그 경험이 일종의 영감이 된 셈인데, 그 시간을 지나며 세상을 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입원했을 때 의사가 저를 진단하던 장면이 깊이 남아 있어요. 제 상태가 진단 코드로 기입되고, 그것이 정보로 교환되는 과정을 보면서 이것이 사회가 한 인간을 규정하는 행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때 생각했어요. 내가 본 환각들을 작품으로 시각화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병의 증상이 아니라 일종의 예술이 된다고요. 그 행위 자체가 환각을 해방시키는 것이고, 나아가 사회가 인간을 정의하는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가 대상을 정의하는 행위에 대한 문제의식이 작업의 뿌리가 된 거군요. 그렇다면 누군가를 하나의 범주로 묶는 순간, 그 사람에게서 가장 먼저 소멸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복합성과 주체성이 지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의 정보나 정의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인데, 카테고라이징이 시작되면 점점 자신을 살아 있는 존재라기보다 교환 가능한 정보처럼 보게 되거든요. 스스로를 감각하고 이해하는 방식도 점점 무뎌지고, 결국 타인과의 관계 역시 인간 대 인간이 아니라 정보 대 정보의 관계처럼 바뀌어버립니다. 그때 인간관계의 본질적인 무언가가 사라진다고 느껴요. 정신과 진단을 받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예를 들어 원래 조금 우울한 기질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까지 진단과 함께 병의 증상으로 기록될 수 있거든요. 고유한 기질이나 성격의 결이 하나의 병증 안에 포섭되어버리는 거죠.
복합적인 존재로서 인간이 작가님의 화면에서는 서로 얽히고 침투하는 자유로운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정해진 틀 없이 꿈틀대는 이 형상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나요? 정돈된 맥락이나 인과관계, 현실의 물리법칙 안에 있지 않습니다. 양감이나 명암, 텍스처가 있어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미술 기법으로 얘기하면 상당 부분은 자동 기술적 드로잉에서 출발해요. 계획도 없고, 그 과정에서 결과를 예측하지도 못합니다. 그리다 보면 조각처럼 어느 정도 덩어리가 생기고, 거기에 디테일을 추가해나가는 방식이죠. 환각 속 캐릭터나 분위기는 기억하되, 그 단서들을 더듬어 조립해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기억을 헤집으며 즉흥적으로 캐치해 그리기도 하고, 한번 그린 것에 대한 기억을 다시 그리기도 하고, 일부는 지어내기도 해요. 그러다 보니 지금은 그때의 환각을 얼마나 충실하게 재현하느냐보다 맥락 그 자체가 더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감각을 따라간다고 했지만, 완성된 작품을 마주하면 형상의 강렬함과 색채의 섬세함이 이루는 대비가 무척 정교하고 아름답습니다. 제가 환각으로 본 것들이 인체나 생물을 이루던 파편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해부학적 메타포가 될 만한 색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붉은색 베이스의 그림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고요. 보완적으로 푸른색이나 녹색을 섞기도 하고, 가끔은 그 관계를 뒤집기도 합니다. 어떤 철저한 계획에 따른다기보다 그냥 편하게 쓰고 싶은 색을 쓰다 보면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더라고요.
작품 활동 외에 평소 작가님의 시선이 머무는 또 다른 분야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게임을 원래 좋아했어요. 어릴 때만큼 열정적이지는 않아도 여전히 컴퓨터그래픽이나 게임 속 아트워크를 감상하는 게 즐겁습니다. 최근에는 AI 기술에도 눈길이 가는데, 특히 생성형 이미지 모델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제가 기억 속 환각을 시각화하는 과정과 묘하게 닮았더라고요. 학습된 데이터 사이에서 형상을 길어 올리는 메커니즘이 비슷해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AI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는 현상을 환각이라는 뜻의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이라 부르는 것도 재미있고요. 제가 신경정신과적 맥락에서 다뤄온 환각이라는 키워드가 AI의 담론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 유심히 살피는 중입니다. 다만 제 작품에 AI를 직접 활용하지는 않습니다.
오는 6월, PKM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열리죠. 이번 전시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인간을 규정하고 범주화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저항이라는 큰 맥락은 같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처음 선보이는 신작을 통해 같은 이야기의 가지를 살짝 변주합니다. 저는 회화 작가이기 때문에 주제를 매번 바꾸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큰 틀은 비슷하게 가져가되, 그림이 조금씩 달라지는 식이죠. 한국 갤러리에서 이 정도로 큰 개인전을 여는 건 사실상 처음이라 준비 과정에서 고민도 많았지만, 그래도 작업에 몰입하는 시간이 제게는 가장 안정적인 순간이라는 걸 다시금 느꼈습니다.
오랜 시간 작업을 멈추지 않고 이어올 수 있게 한 가장 근원적인 힘은 무엇인가요? ‘그리기’라는 행위가 저에게 완전히 체화되어 있다는 것. 그게 전부인 것 같아요. 이것 말고 다른 일은 못하겠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단순히 그리기뿐 아니라 미술과 관련된 사회적이고 철학적인 생각, 작가적 태도를 다듬어가는 과정도 좋아해요. 그런 면이 제 그리기를 동시대 미술계에 자리하게 해주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술이 우리 삶에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술은 꼭 어떤 목적을 달성하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는 드문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나 경제가 어려울 때 쉽게 후순위로 밀리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 무목적성과 비효율성 때문에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예술은 인간을 어떤 수치나 성과로만 보지 않고 철학이나 본질, 감각 같은 느린 질문을 다시 마주하게 합니다. 제 삶에서 예술은 현대사회의 빠른 시간을 잠시 늦추고, 서로를 알아가는 동안 시계를 덜 보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인간성을 잃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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