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돋보기] 리센느가 피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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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돋보기] 리센느가 피는 시간

지라운드 2026-06-10 08:47:55 신고

3줄요약
하루에도 수십 개의 노래, 수십 개의 작품이 탄생한다. 음악·드라마·영화 등이 수없이 많은 매체를 통해 소개되고 있지만 대중에게 전해지는 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노래를 부르고, 연기한 아티스트도 마찬가지. 뛰어난 역량에도 평가 절하되거나, 대중에게 소개되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아티스트 돋보기>는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를 소개하고 그들의 성장을 들여다보는 코너다. 아티스트에게 애정을 가득 담아낸 찬가이기도 하다. <편집자 주>
리센느 사진더뮤즈엔터테인먼트
리센느 [사진=더뮤즈엔터테인먼트]

"모든 꽃은 저마다 피는 시간이 있다."

어떤 꽃은 이른 봄에 피고, 어떤 꽃은 시린 겨울을 버텨낸 뒤에야 만개한다. 그룹 리센느(RESCENE)가 그러하다. 데뷔 이후 이들은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함 대신 안으로 향을 채우며 천천히 피어나는 길을 택했다. 개화의 시기가 다소 늦어지더라도 의연했고 자신들만의 결을 지키며 묵묵히 나아왔다. 서두르지도, 유예하지도 않은 채 걸어온 시간. 이들은 마침내 자신들의 계절을 마주하고 가장 완연히 피어나고 있다.

원이, 미나미, 리브, 메이, 제나로 구성된 5인조 다국적 걸그룹 리센느는 오래도록 기억될 향기를 꿈꾼다. 그룹명은 '장면(Scene)'과 '향(Scent)'의 결합에서 왔다. 향기가 지나간 자리에 특정한 순간의 기억이 맺히듯 음악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머무르겠다는 의미다. 자극적인 유행이 쉽게 번지고 사라지는 가요계에서 리센느는 흐름에 휩쓸리기보다 자신들만의 고유한 정서를 채우는 쪽을 택했다. 세련된 음악적 문법 위에 정체성을 켜켜이 쌓아 올린 이들의 행보는 왜 이들이 개화를 서두르지 않았는지를 증명한다.
리센느 사진어뮤즈
리센느 [사진=어뮤즈엔터테인먼트]

이들의 디스코그래피는 앨범마다 다른 향을 조향해온 과정에 가깝다. 데뷔 싱글 '레:씬(Re:Scene)'의 출발점은 플로럴(Floral) 향이었다. 선공개곡 '요요(YoYo)'가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리센느의 향에 이끌린 이들을 초대했다면 타이틀곡 '어어(UhUh)'는 '버닝 플라워(Burning Flower)' 콘셉트를 통해 당당하고 매혹적인 에너지를 드러냈다. 이들이 피워낸 꽃은 우아하면서도 쉽게 시들지 않고, 향기로운 이미지 안에 자신들만의 단단한 힘을 함께 담아냈다.

이후 리센느는 향의 질감과 온도를 달리하며 자신들의 세계를 넓혀갔다. 미니 1집 '씬드롬(SCENEDROME)'에서는 앰버그리스(Ambergris)를 통해 다른 향과 만났을 때 비로소 가치가 선명해지는 존재의 의미를 짚었다. 미니 2집 '글로우 업(Glow Up)'에서는 비누 향처럼 맑고 깨끗한 정서 안에 스타일과 실력의 성장을 담아냈다. 세 번째 미니앨범 '립밤(lip bomb)'은 다섯 가지 베리(Berry) 향이 한데 어우러지듯, 멤버 각자의 색이 모여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더 선명하게 피워낸 결과물이었다.

디지털 싱글 '런어웨이(Runaway)'에 이르면 이 향의 서사는 더 단단해진다. 리센느는 인센스(Incense)의 스산하고 묵직한 잔향 속에서 스스로 가두고 있던 세계를 벗어나 주체적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그렸다. 흐릿한 경계 속에 머물던 자아가 사라지지 않는 향처럼 또렷해지고 다섯 멤버가 하나의 길 위에서 결속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플로럴의 첫 설렘에서 앰버그리스의 깊이로 비누 향의 맑은 성장에서 베리(Berry)의 생동감과 인센스의 의지로. 리센느가 지나온 시간은 매번 다른 향을 빌려왔지만 끝내 하나의 본질을 향해 있었다. 오래 기억되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 이제는 자신들이 선택한 길 위에서 진짜 '나'와 '우리'를 완성해가는 일이다.
 
사진유튜브 캡처
[사진=유튜브 캡처]
 
이들이 축적해온 서사는 무대 밖 현실의 지표를 바꾸는 실체적인 동력이 됐다. 최근 자체 유튜브 채널을 중심으로 확산된 일본인 멤버 미나미의 '거제 야호-!' 밈(Meme)과 경상도 사투리를 전면에 내세운 로컬 콘텐츠의 흥행은 대중을 이들의 음악으로 진입시키는 결정적인 문이 됐다. 콘텐츠의 화제성이 리스너들의 유입으로 직결되면서 발매된 지 약 2년이 지난 미니 1집 타이틀곡 '러브 어택(LOVE ATTACK)'은 가파른 역주행 흐름을 타고 차트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멜론 'TOP 100' 차트에서 무려 719계단을 뛰어오르며 최고 28위까지 진입한 것을 비롯해, 애플뮤직 오늘의 'TOP 100 대한민국' 10위, 유튜브 뮤직 '한국 인기곡 Top 100' 11위 등 국내외 주요 음원 차트 최상위권에 잇따라 이름을 올리며 '리센느 붐'을 실체적인 성과로 증명해냈다.

대형 기획사의 자본과 마케팅이 주도하는 K-팝 시장에서 리센느가 자신들만의 자리를 넓혀갈 수 있었던 건, 요행이 아닌 묵묵히 다져온 태도 덕분이다. 데뷔 초기, 인지도가 부족했던 시절 아스날 축구 팬 카페에 직접 홍보 글을 올리고 거제까지 내려가 멤버를 캐스팅했던 소속사 대표의 발품, 그리고 초등학교 흙바닥 운동장 공연도 마다하지 않으며 대중과의 접점을 넓혀온 멤버들의 성실함이 단단한 주춧돌이 됐다. 여기에 미국 버클리 음대 출신 대표가 이끄는 전담 작곡팀의 웰메이드 음악이 맞물리며 이들의 행보에 힘을 실었다. 최근 선보인 '러브 어택(Love Attack)'의 약진은 단지 외부에서 찾아온 우연한 행운이 아니라 좋은 음악과 이들이 쌓아온 시간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리센느 사진더뮤즈엔터테인먼트
리센느 [사진=더뮤즈엔터테인먼트]

리센느가 보여준 약진은 흘러가는 유행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화제성이 곧 소비로 끝나기 쉬운 시장 안에서도 음악과 실력이라는 본질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쉽게 타오르고 빠르게 휘발되는 흐름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결을 지키며 묵묵히 고유한 향을 머금어온 태도는 그래서 더 귀하다. 개화의 시기가 조금 늦었을지언정 척박한 땅을 딛고 제 힘으로 피어난 향기는 쉽게 휘발되지 않는다.

좋은 음악과 성실함으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증명해낸 리센느는 오는 7월, 리메이크 디지털 싱글을 선보인다. 앞선 '런어웨이'가 스산하고 묵직한 내면의 변화를 보여주었다면 이번 신보는 고유한 감성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무대다. 역주행으로 다진 단단한 토대 위에서, 이들은 이제 더 깊고 선명해진 향으로 다음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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