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FIA 세계 내구레이스 챔피언십(WEC)의 최대 승부처인 ‘르망 24시’가 하이퍼카 타이틀 경쟁의 흐름을 결정지을 무대로 다가왔다.
제94회 르망 24시는 6월 10일부터 14일까지 프랑스 라 사르트 서킷(길이 13.626km)에서 열린다. 결선은 13일 오후 4시(현지시간)에 출발한다. 하이퍼카와 LMGT3 클래스 모두 더블 포인트가 걸린 만큼 이번 결과는 시즌 초반 타이틀 경쟁 구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르망 24시는 ‘F1 모나코 그랑프리’, ‘인디애나폴리스 500’과 함께 국제 모터스포츠의 ‘트리플 크라운’을 구성하는 대표 이벤트다. 1923년 처음 열린 뒤 수많은 전설과 이변을 만든 이 대회는 속도와 내구성, 전략과 집중력이 동시에 요구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내구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최근 르망은 전통적인 내구레이스의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24시간 스프린트에 가까운 흐름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 두 차례 대회의 우승의 차이는 각각 14초에 불과했고, 2024년에는 9대가 리드랩에서 레이스를 마쳤다. 최고속도 350km/h에 이르는 하이퍼카들이 라 사르트의 고속 구간을 달리고 한 랩에서 약 78회의 기어 변속이 이뤄지는 만큼 작은 실수와 기계적 문제도 곧바로 결과에 반영된다.
올해 하이퍼카 제조사 챔피언십은 초반부터 촘촘하다. 개막 두 경기 후 BMW, 토요타, 페라리는 선두권에서 17포인트 차 안에 몰려 있다. 세 제조사는 지금까지 하이퍼카 포디엄을 나눠 가졌지만 아직 두 차례 이상 포디엄에 오른 팀은 없다. 스파-프랑코르샹에서는 2012년 이후 처음으로 새로운 폴시터와 새로운 우승자가 동시에 등장하며 예측하기 어려운 시즌 흐름을 만들었다.
BMW는 직전 스파 6시간에서 원투 피니시를 거두며 르망에 들어선다. 이는 BMW가 1999년 르망 24시 이후 글로벌 내구레이스 정상에 오른 첫 종합 우승이었다. 상승세는 분명하지만 라 사르트에서 24시간 동안 그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지는 다시 검증받아야 한다.
토요타와 페라리의 대결 구도도 뚜렷하다. 토요타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르망 5연승으로 현대 하이브리드 내구레이스의 질서를 만들었다면 2023년 이후 라 사르트의 흐름은 페라리 499P가 장악했다. 토요타는 올해 이몰라 개막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페라리를 꺾으며 반격의 신호를 보냈고 페라리는 499P로 르망 4연속 우승에 도전한다.
페라리의 최근 르망 성과는 강력하다. #51호차는 페라리가 WEC 하이퍼카 클래스에 합류한 이후 매년 르망 포디엄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83호 AF 코르세가 13그리드에서 출발해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20년 만에 비 팩토리팀이 르망 종합 우승을 거둔 사례이자 대회 역사상 세 번째로 낮은 출발 위치에서 나온 우승이었다.
추격 그룹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캐딜락은 지난해 르망에서 미국 제조사로는 1967년 이후 처음 폴포지션을 차지했고, 올해도 라 사르트에서 강한 한 랩 페이스를 기대하게 하는 패키지를 갖췄다. 이몰라와 스파에서도 상위권 속도를 보였던 만큼 남은 과제는 이를 24시간 결과로 연결하는 운영 완성도다.
알핀 A424는 이미 WEC 우승 경험을 가진 하이퍼카 모델 중 하나로 올해 이몰라와 스파에서 포디엄권에 근접한 흐름을 보였다. 홈 무대에 가까운 르망에서 프랑스 제조사로서 존재감을 보여줘야 한다. 푸조는 르망 첫 출전 100주년을 맞아 9X8의 잠재력을 포디엄으로 연결하는 것이 목표다. 스파에서 첫 WEC 폴포지션을 기록한 만큼 한 랩 속도는 확인했다.
애스턴 마틴 발키리도 변수다. 두 번째 시즌을 맞은 발키리는 개막 두 경기에서 발전된 페이스를 보였고 르망 공식 테스트데이에서는 전체 1위를 기록했다. 테스트 결과만으로 본선 전력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지난해보다 한 랩 페이스와 완성도가 크게 개선됐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제네시스는 올해 르망에 처음 출전한다.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은 하이퍼카 두 번째 출전 만에 포인트권 피니시를 기록했고 르망 테스트데이에서도 #19호차가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다만 첫 르망의 현실적인 목표는 우승 경쟁보다 완주와 데이터 축적, 장거리 운영 안정성 검증에 있다. 24시간 동안 두 대의 GMR-001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관리하느냐가 첫 도전의 핵심이다.
하이퍼카 클래스는 양적·질적으로 모두 성장했다. 올해 르망 그리드는 BMW, 토요타, 페라리, 캐딜락, 알핀, 푸조, 애스턴 마틴, 제네시스 등 다양한 제조사가 맞붙는 구조다. 단순한 속도 경쟁을 넘어 각 브랜드의 기술 방향성과 내구레이스 운영 능력이 동시에 비교되는 무대가 됐다.
LMGT3 역시 치열한 경쟁을 예고한다. 25대가 출전하는 올해 LMGT3 클래스는 WEC 역사상 가장 큰 GT 그리드다. 만타이는 지난해 르망 우승팀이자 현재 타이틀 선두로 이번 대회에 나서며 페라리, 코르벳, 애스턴 마틴, BMW, 맥라렌, 렉서스, 포드, 메르세데스-AMG가 가세해 다자 경쟁을 펼친다.
주행은 10일 자유주행으로 시작된다. 같은 날 전 클래스 예선이 열리고 11일 저녁에는 하이퍼폴을 통해 최종 그리드가 결정된다. 올해 LMGT3 하이퍼폴은 예선 상위 15대가 1단계에 진출하고 이 가운데 10대가 2단계로 올라가는 방식으로 확대됐다.
제94회 르망 24시는 13일 오후 4시 막을 올린다. BMW의 상승세, 토요타의 반격, 페라리의 4연속 우승 도전이 3강 구도를 이루는 가운데 캐딜락, 알핀, 푸조, 애스턴 마틴, 제네시스가 변수로 가세한다.
르망의 승부는 한 랩의 속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24시간 동안 속도와 신뢰성, 피트 전략과 집중력을 얼마나 완성도 있게 유지하느냐가 올해 타이틀 경쟁의 첫 큰 방향을 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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