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 특약] K조 우즈베키스탄: '후사노프 세대'가 함께 만든 역사, 사상 첫 월드컵 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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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 특약] K조 우즈베키스탄: '후사노프 세대'가 함께 만든 역사, 사상 첫 월드컵 본선

풋볼리스트 2026-06-10 07:3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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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도르 쇼무로도프(우즈베키스탄). 게티이미지코리아
엘도르 쇼무로도프(우즈베키스탄). 게티이미지코리아

 

[풋볼리스트] 풋볼리스트는 2014년부터 영국 권위지 '가디언'의 월드컵 네트워크(World Cup Experts' Network) 회원사입니다. '가디언'이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본선 출전국 현지 전문가와 협업해 완성한 심층 분석 기사를 양사 특약에 따라 풋볼리스트가 국내 독점 게재합니다.

▲ 우즈베키스탄의 대회 플랜

우즈베키스탄의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은 오랜 기다림 끝에 이뤄낸 결실이다. 2021년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스레치코 카타네츠 감독은 3-4-3 시스템을 정착시키며 팀의 기반을 다졌다. 이후 지휘봉을 이어받은 티무르 카파제 감독과 현재의 파비오 칸나바로 감독 역시 이 전술을 유지하고 있다. 예선 과정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2차 예선에서는 투르크메니스탄과 홍콩을 제치고 조를 통과했으며, 아시아 최강국 중 하나인 이란과는 두 차례 모두 무승부를 기록했다. 3차 예선 대진도 우즈베키스탄에 유리하게 흘러갔다. 일본, 한국, 호주와 같은 강호들을 피했고 원정 이동 거리도 상대적으로 길지 않았다. 북한 원정은 라오스에서 중립 경기로 열렸으며, 우즈베키스탄은 전세기를 이용해 이동했다. 우즈베키스탄은 두 차례 예선 동안 치른 16경기에서 단 한 번만 패했다. 카타르 원정에서 기록한 2-3 패배가 유일한 패배였다. 특히 아시아 강호 이란과 치른 네 경기 모두 무승부로 마치며 경쟁력을 입증했다.

역사적인 본선 진출 과정에서 골키퍼 웃키르 유수포프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북한과의 두 경기에서 모두 페널티킥을 선방하며 팀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예선 도중 카타네츠 감독의 건강 악화는 대표팀에 큰 변수였다. 그는 일부 경기에서 건강 문제로 타슈켄트에 입국하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카타네츠 감독은 2024년 여름 "건강 문제로 세 번째 대표팀을 떠나게 된다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결국 그는 2025년 1월 사임했고, 2024 파리 올림픽 본선 진출을 이끌었던 카파제 감독이 후임으로 부임했다. 카타네츠 감독은 이후 후임자에 대해 "내가 준비하던 요리를 마무리한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공을 돌렸다.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뒤 우즈베키스탄축구협회는 해외 지도자 선임을 추진했고, 여러 후보 가운데 파비오 칸나바로 감독을 선택했다. 2006 독일 월드컵 우승 주장 출신인 칸나바로 감독은 지난해 본선 진출 확정 이후 우즈베키스탄 대표팀과 2년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부임 당시 "이 기회를 얻게 되어 매우 기쁘고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나는 모든 것을 바꾸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쌓아온 성과를 이어가기 위해 왔다"고 밝혔다. 첫 월드컵 본선 무대를 앞둔 우즈베키스탄은 안정적인 전술 체계와 조직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에 도전하고 있다.

▲ 감독: 파비오 칸나바로

파비오 칸나바로 감독은 선수 시절 월드컵 역사에 이름을 남긴 전설이다. 그는 1998 프랑스 월드컵, 2002 한일 월드컵, 2006 독일 월드컵, 2010 남아공 월드컵까지 네 차례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고, 2006년에는 이탈리아 주장으로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A매치 136경기에 출전한 그는 이탈리아 축구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레전드로 평가받는다. 더 많은 A매치 출전 기록을 보유한 선수는 176경기의 잔루이지 부폰뿐이다.  하지만 지도자로서의 커리어는 선수 시절만큼 화려하지는 않았다. 중국 광저우 에버그란데를 이끌며 4년 동안 중국 슈퍼리그 우승 1회를 기록했지만 기대에 비해 압도적인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중국 대표팀 감독 역시 단 두 경기만 지휘한 뒤 물러났다. 이후에도 이탈리아의 베네벤토, 우디네세, 크로아티아의 디나모 자그레브 등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팀을 맡으며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다. 칸나바로 감독은 선수와 감독의 차이에 대해 "선수 시절에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느낀 경기가 많았다. 하지만 은퇴 후 감독 생활을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경기장에서의 90분은 감독의 삶과 비교할 수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우즈베키스탄축구협회는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뒤 새로운 도약을 위해 칸나바로를 선택했다. 지도자로서 아직 월드컵 무대에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지 못한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감독 커리어의 가장 중요한 도전에 나서게 됐다. 선수로는 세계 정상에 올랐던 칸나바로가 감독으로도 성공 신화를 쓸 수 있을지가 우즈베키스탄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파비오 칸나바로. 서형권 기자
파비오 칸나바로. 서형권 기자

 

▲ 핵심 선수: 압두코디르 후사노프

후사노프는 현재 우즈베키스탄 축구를 대표하는 얼굴이다. 그는 우즈베키스탄 선수 최초로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PL), 프랑스 리그앙 무대를 경험한 선수이기도 하다. 축구는 그의 집안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 아버지 히크마트 호시모프 역시 센터백으로 활약했던 축구 선수였다. 후사노프는 17세에 벨라루스의 에네르게틱BGU 민스크로 이적하며 본격적으로 해외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벨라루스 규정상 외국인 선수는 만 18세가 되기 전까지 공식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기 때문에 훈련만 소화해야 했다. 후사노프는 당시를 떠올리며 "벨라루스에서는 부모님과 떨어져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루에 세 차례 훈련을 할 때도 있었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선수들이 직접 경기장 눈을 치운 뒤 훈련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2023년은 그의 인생을 바꾼 해였다. 우즈베키스탄의 AFC U20 아시안컵 우승을 이끌었고, 성인 대표팀 데뷔전까지 치렀다. 그의 잠재력을 눈여겨본 프랑스의 랑스가 영입에 나섰고, 이후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졌다. 불과 18개월 만에 그는 맨체스터 시티 유니폼을 입게 됐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 역시 후사노프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과르디올라는 "최고의 영입이다. 그는 가르치기 쉬운 선수다. 항상 좋은 자세로 훈련에 임하고, 매 순간 100%를 쏟아붓는다"고 말했다. 22세의 젊은 수비수는 이번 시즌 FA컵과 리그컵 우승을 경험하며 또 한 단계 성장했다. 이미 우즈베키스탄 축구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후사노프는 이번 월드컵에서도 대표팀의 수비를 이끄는 핵심 선수로 활약할 전망이다. 첫 월드컵에 도전하는 우즈베키스탄의 희망 역시 그의 어깨에 달려 있다.

▲ 주목할 선수: 베흐루즈 카리모프

베흐루즈 카리모프는 우즈베키스탄 축구의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유망주다. 2007년 우즈베키스탄 나망간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싶어 했다. 카리모프는 "6살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학창 시절 나브바호르 19세 이하 팀 입단 테스트를 받았지만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그 일을 계기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졌다"고 회상했다. 지난해는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한 해였다. 3월 수르혼 소속으로 우즈베키스탄 1부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10월에는 프로 첫 골까지 기록했다. 이어 올해 초에는 만 18세의 나이로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에 출전해 한국을 상대로 득점까지 터뜨리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를 바탕으로 성인 대표팀에도 처음 발탁됐다. 다만 올해 4월 수르혼에서 뛰던 중 발가락 골절 부상을 당하며 위기를 맞았다. 수술까지 받아야 했고 월드컵 출전 여부도 불투명했다. 카리모프는 당시를 떠올리며 "부상 이후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많이 우울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끊임없이 응원해줬고, 그 덕분에 더 빨리 일어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그는 월드컵 개막 전에 복귀에 성공했다. 1년 전만 해도 월드컵 출전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18세 풀백은 이제 우즈베키스탄의 새로운 희망으로 주목받고 있다. 빠른 성장세와 강한 정신력을 보여준 카리모프는 이번 대회를 통해 세계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알릴 기회를 얻게 됐다.

압두코디르 후사노프(맨체스터시티). 게티이미지코리아
압두코디르 후사노프(맨체스터시티). 게티이미지코리아

▲ 언성 히어로: 도스톤벡 함다모프

함다모프는 오랫동안 우즈베키스탄 축구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선수다. 그는 연령별 대표팀을 모두 거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2012년 AFC U16 아시안컵 우승 멤버였으며, 2018년에는 AFC U23 아시안컵 우승에도 기여했다. 분요드코르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함다모프는 2015년 AFC가 선정한 올해의 유망주상을 수상하며 아시아 최고의 재능 가운데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2018년 러시아의 안지 마하치칼라로 이적하며 유럽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러시아 무대에서는 9경기 출전에 그치며 자리 잡지 못했다. 이후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파흐타코르에서 커리어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두 차례에 걸친 파흐타코르 생활 동안 리그 우승 5회와 우즈베키스탄컵 우승 3회를 차지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대표팀에서는 한동안 입지가 흔들리며 선택을 받지 못하는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파비오 칸나바로 감독 부임 이후 다시 중용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대표팀 전력의 중요한 한 축으로 평가받고 있다. 어린 시절 천재로 불렸던 그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다시 월드컵 무대에 도전하게 됐다. 풍부한 경험과 검증된 실력을 갖춘 함다모프는 우즈베키스탄의 첫 월드컵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된다.

▲ 기억해야 할 선수

엘도르 쇼무로도프: 우즈베키스탄 대표팀 주장인 엘도르 쇼무로도프는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한 선수다. 또한 우즈베키스탄 선수 최초로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득점한 선수로도 이름을 남겼다. 1995년 우즈베키스탄 최남단 지역인 자르쿠르간에서 태어난 쇼무로도프는 축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아버지와 두 명의 삼촌, 그리고 형까지 모두 축구 선수였다. 그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집에서 소와 양을 많이 키웠다. 친구들과 사촌들 모두 축구를 좋아했다. 부모님들은 늘 '먼저 가축을 돌본 뒤 경기장에 가라'고 말씀하셨다"고 회상했다. 6세 때 지역 축구학교에 입학한 쇼무로도프는 12세가 되자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약 300km 떨어진 무보라크로 이주해 마샬 아카데미에 입단했다. 그의 어린 시절 가장 특별한 기억 중 하나는 브라질 축구의 전설 히바우두와의 만남이다. 2008년 히바우두가 부뇨드코르에 입단한 뒤 우즈베키스탄에서 첫 경기를 치렀을 때, 상대는 마샬이었다. 당시 어린 쇼무로도프는 선수 입장식에서 히바우두와 함께 그라운드에 들어서는 마스코트 역할을 맡았다. 쇼무로도프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 나를 데리고 경기장에 들어갔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팀은 첼시였다. 7살 때 삼촌에게 첼시 유니폼을 선물받은 것이 계기였다. 그는 "언젠가 페르난도 토레스와 디디에 드로그바를 만나 사인을 받는 것이 꿈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 축구의 상징적인 존재가 된 쇼무로도프는 주장 완장을 차고 역사상 첫 월드컵 본선 무대에 나서는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풍부한 경험과 득점력을 갖춘 그는 이번 대회에서도 우즈베키스탄 공격의 중심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이고르 세르게예프: 우즈베키스탄 최고 명문 구단 파흐타코르 역사상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한 공격수다. 기사 작성 시점 기준으로 그는 파흐타코르에서 262경기에 출전해 145골을 기록했다. 또한 리그 우승 5회, 컵대회 우승 3회를 경험했고 두 차례 리그 득점왕에도 올랐다. 33세의 베테랑 공격수인 세르게예프는 다양한 해외 무대를 경험했다. 중국과 아랍에미리트, 카자흐스탄, 태국에서 활약했으며 카자흐스탄의 토볼에서는 리그 우승을, 태국의 BG 빠툼 유나이티드에서는 리그컵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의 커리어는 한때 끝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2024 카타르 아시안컵 호주전에서 무릎 인대를 심하게 다쳤고, 많은 이들이 선수 생활이 사실상 끝났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세르게예프는 포기하지 않았다. 2025년 친정팀 파흐타코르로 복귀한 그는 그해 우즈베키스탄 리그에서만 20골을 터뜨리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부상 복귀 후 첫 골을 넣은 뒤에는 다친 무릎에 입을 맞추는 세리머니를 펼쳐 많은 팬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그는 당시 "축구에서 승리한 뒤 느끼는 감정은 어떤 돈으로도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올해 1월에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이란 명문 페르세폴리스로 이적했다. 하지만 한 달 뒤 전쟁 발발로 리그가 중단되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수많은 부상과 시련을 극복하고 다시 정상급 무대로 돌아온 세르게예프는 우즈베키스탄 축구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골잡이다. 월드컵 본선에서도 풍부한 경험과 결정력을 바탕으로 팀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압보스벡 파이줄라예프: 우즈베키스탄 축구가 가장 자랑하는 젊은 스타 중 한 명이다. 22세에 불과하지만 이미 두 차례 우즈베키스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17세의 나이로 프로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어린 시절 시르다리야에 있는 가족의 품을 떠나 타슈켄트로 향했다. 파흐타코르 유소년 아카데미에 입단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그를 돌본 사람은 삼촌이었다. 삼촌은 파이줄라예프를 친아들처럼 보살피며 축구 선수의 꿈을 지원했다. 하지만 2021년, 파이줄라예프가 프로 데뷔를 앞두고 있던 시기에 삼촌은 세상을 떠났다. 파이줄라예프는 지금도 골을 넣을 때마다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세리머니를 펼친다. 자신을 키워준 삼촌을 기리는 의미다. 그는 "경기장에 들어설 때마다 관중석을 바라보며 삼촌이 와 계시길 바란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파이줄라예프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2023 AFC U20 아시안컵이었다. 시리아전에서 터뜨린 환상적인 프리킥 골은 우즈베키스탄은 물론 아시아 축구팬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해 8월 그는 러시아 명문 CSKA 모스크바로 이적하며 유럽 무대에 도전했다. 당시 주변의 시선은 회의적이었다. 파이줄라예프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거기서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곧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부 지도자들조차 같은 생각을 했다"며 "오히려 그런 이야기가 더 큰 동기부여가 됐다. 지금은 내가 스스로를 증명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러시아에서 2년 동안 활약하며 러시아컵과 슈퍼컵 우승을 경험했다. 이후 튀르키예의 바샥셰히르로 이적했고, 구단 역사상 최고 이적료를 기록한 영입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창의적인 패스와 뛰어난 기술, 그리고 경기 흐름을 바꾸는 능력을 갖춘 파이줄라예프는 우즈베키스탄 공격의 핵심 자원이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첫 본선 무대에 나서는 우즈베키스탄의 가장 위협적인 공격 무기 중 한 명으로 활약할 전망이다.

아보스벡 파이줄라에프(우즈베키스탄). 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인스타그램 캡처
아보스벡 파이줄라에프(우즈베키스탄). 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인스타그램 캡처

 

▲ 예상 선발 라인업: 5-2-3

웃키르 유수포프 - 호지악바르 알리조노프, 우마르 에슈무로도프, 압두코디르 후사노프, 루스탐 아슈르마토프, 셰르조드 나스룰라예프 - 오타벡 슈쿠로프, 오딜존 함로베코프 - 압보스벡 파이줄라예프, 엘도르 쇼무로도프, 오스톤 우루노프

▲ 우즈베키스탄 팬들이 월드컵에서 보여줄 특징

우즈베키스탄 팬들은 2024 파리 올림픽을 통해 처음으로 세계 규모의 축구 대회 원정 응원 문화를 경험했다. 당시 수많은 팬들이 프랑스로 향해 대표팀을 응원했고, 우즈베키스탄 축구 역사상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상당수의 팬들이 대표팀의 첫 월드컵 도전을 함께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즈베키스탄 팬들은 열정적이지만 질서정연한 응원 문화로 유명하다. 어느 나라를 방문하더라도 폭력이나 소란을 일으키지 않는 팬들로 평가받으며, 현지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응원가로는 "티무르의 후예들이 왔다, 바부르의 후예들이 왔다"라는 노래가 있다.이 노래는 중앙아시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 군주로 꼽히는 티무르(Timur)와, 인도 무굴제국의 창시자인 바부르(Babur)의 후손들이 도착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단순한 응원가를 넘어 우즈베키스탄의 역사적 자부심과 민족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노래로 여겨진다.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은 만큼, 우즈베키스탄 팬들은 경기장 안팎에서 강한 열정과 자부심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둘 경우, 이번 대회는 우즈베키스탄 축구 문화가 세계 무대에 본격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글= 나르줄라 사이둘라예프(챔피오나트아시아)
편집= 김동환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풋볼리스트, 아시안컵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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