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정상회담에서 핵 폐기 논의가 완전히 자취를 감춘 배경에는 양국의 상이한 전략적 셈법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워싱턴 전문가 집단에서 쏟아지고 있다. 허드슨연구소 아태안보 의장인 패트릭 크로닌은 시진핑 국가주석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각자의 계산을 숨긴 채 동북아 역학 구도를 자국에 유리하게 재편하려는 공동 의지를 과시했다고 진단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크로닌 의장은 9일 서면 답변을 통해 이번 회담의 핵심 메시지로 '결속'을 꼽으며, 이 연합전선이 워싱턴과 그 우방들을 겨냥한 잠재적 대항마로 기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자신감이 커질수록 북중, 나아가 러시아를 포함한 삼각 협력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희석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공동 발표문 어디에서도 핵 포기 관련 문구가 발견되지 않은 점에 대해 크로닌 의장은 베이징이 미국 영향력 차단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고 풀이했다. 평양 입장에서는 강대국이 비핵화를 거론하지 않을 때마다 '영구 핵보유국' 주장에 힘이 실린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정상 외교의 목표는 핵 보유 국가로서 위상을 대내외에 각인시키려는 김 위원장의 의도가 관철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외교·법 집행·군사 교류를 새롭게 의제화한 것에 대해서는 표면적인 안보 협력 확대 신호로 읽힌다고 크로닌 의장은 평가했다. 초보적 수준의 합동 훈련이나 중국 주관 샹산포럼에 대한 북한 고위급 참석 확대 정도가 예상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전략 메시지 조율과 김정은 체제 유지에 필수적인 물자 공급에 방점이 찍힐 공산이 크다고 덧붙였다. 또한 최근 평양이 모스크바에 밀착하는 상황에서도 시 주석이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은 한반도에서 중국이 러시아보다 우위에 있음을 푸틴 대통령에게 시위하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해석했다.
한미경제연구소 엘런 김 학술국장 역시 양국 간 전략 공조가 한층 깊어졌다고 진단했다. 이번 회담이 평양에 대한 영향력을 재확인하려는 베이징의 행보인 동시에, 러시아를 포함한 연대 강화와 미일 압박에 대한 균형추 확보라는 복합적 목표를 담고 있다는 설명이다. 핵 폐기 언급 부재는 중국이 역내 전략 이익 증진을 새로운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음을 방증한다고 김 국장은 짚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원했던 것은 중국의 사실상 핵 보유국 인정이었고, 베이징의 침묵이 이를 대신해줬다는 평가다. 이러한 침묵은 의도치 않게 서울로 하여금 중국과의 전략적 가치 관계를 재검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브루킹스연구소 앤드루 여 한국석좌는 이번 회담이 지역 질서에서 평양의 영향력 확대를 부각하는 무대가 됐다고 분석했다. 시 주석이 올해 첫 해외 방문지로 북한을 택한 것 자체가 동북아에서 평양의 전략적 비중이 커졌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비핵화가 10년 전처럼 베이징의 최상위 의제가 아니라는 점도 이번 회담을 통해 드러났다고 여 석좌는 덧붙였다.
로버트 랩슨 전 주한미국대사 대리는 양국이 경제 협력 확대를 공언한 부분에 대해 기존 대북 제재 체제와의 충돌 여부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겉으로는 시 주석이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북미 대화가 재개되려면 결국 핵 문제가 핵심 조율 과제로 남는다는 점은 모든 당사자가 인지하고 있다고 랩슨 전 대사 대리는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유산 구축을 위해 베이징의 도움 유무와 관계없이 김 위원장과의 추가 회담을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도 유지했다. 다만 시간과 기회가 점차 소진되고 있고 행정부 안팎에서 반대 기류가 존재하는 만큼 북미 정상회담 실현까지는 여전히 적잖은 장애물이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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