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시위대 아니라 유권자"…참정권 외치던 개표소 앞 커진 '부정선거'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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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시위대 아니라 유권자"…참정권 외치던 개표소 앞 커진 '부정선거' 목소리

아주경제 2026-06-09 19:03:21 신고

3줄요약
"빵도 있어요. 빵 드세요."

9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 나무 그늘 아래 마련된 천막 옆에서 자원봉사자가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빵과 생수를 건넸다. 옆에는 얼음물과 커피가 쌓여 있었다. 자원봉사자는 "물 받아도 돼요. 물하고 간식 되게 많아요"라고 말했다. 

지난 주말 수만 명이 몰렸던 현장은 평일 오전답게 다소 한산했다. 하지만 경기장 출입구 곳곳에는 태극기를 든 시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출입구를 따라 돗자리가 깔렸고, 시민들은 양산을 펴거나 부채를 흔들며 더위를 버텼다.

확성기에서는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 투표! 수개표!" 등의 같은 구호가 반복됐다. 
 
9일 오전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폴경기장 앞에서 성조기와 태극기 등을 든 참가자들이 부정선거 재투표 등의 구호를 위치고 있다 사진원은미 기자
9일 오전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성조기와 태극기 등을 든 참가자들이 '부정선거', '재투표' 등의 구호를 위치고 있다. [사진=원은미 기자]

지난 3일 지방선거 당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경기장 인근에서는 닷새째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진상 규명과 재선거를 요구하며 개표소 일대를 지키고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를 넘어서자 현장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졌다. 출입구 앞에 드문드문 보이던 참가자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전 10시 30분을 전후해 인파가 늘었고, 오전 11시께에는 기자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보다 체감상 두 배 가까이 사람이 많아졌다. 경찰도 추가 인력을 투입하거나 교대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참가자들은 자신들을 '시위대'라고 부르는 것부터 경계했다.

태극기를 들고 있던 70대 송파구 주민은 기자가 "시위에 참여했느냐"고 묻자 손사래를 쳤다.

"시위가 아니에요. 자발적으로 모여서 국민주권과 참정권을 외치는 겁니다."

그는 "지금 내가 나이가 70인데, 왜 나왔겠느냐"며 "젊은 학생들이 그렇게 나오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현장에는 노년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20대 직장인과 취업준비생, 중장년층,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뒤섞여 있었다. 나무 그늘에서는 청년들이 생수 상자를 나르고 있었고, 출입구 앞에서는 노년층 참가자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었다.

경기도에서 왔다는 20대 직장인 유모씨는 야간 근무를 마치고 곧바로 현장을 찾았다.

유씨는 "정치 이념을 떠나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당한 문제라고 생각했다"며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바로잡고, 다시 나아가면 된다고 생각해 참여했다"고 언급했다.

동생과 함께 처음 현장을 찾았다는 김민정씨(26)도 비슷한 이야기를 건넸다.

김민정씨는 "정치에 관심이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번 사태는 전국적으로 재선거를 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온라인에서는 집회가 변질됐다거나 내부 분열이 있다는 이야기도 봤는데, 직접 와보니 구호도 통일돼 있고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집회가 시작됐던 초반과 비교하면 현장의 공기는 분명 달라진 모습이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 직후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리던 말은 '참정권 침해'였다. 이날도 참가자들은 투표권 침해 문제를 거론했지만, 확성기와 손팻말에서는 '부정선거'와 '재선거'라는 단어가 더 자주 보였다.

출입구 주변에는 '부정선거 재선거' 문구가 적힌 팻말이 세워져 있었고, 일부 참가자들은 성조기를 흔들고 있었다. 곳곳에서 "수개표"를 외치는 목소리도 들렸다.

다만 이런 흐름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30대 참가자는 "언론사들이 극우 프레임을 짜지 않느냐"며 "그런 프레임이 씌워지지 않도록 순수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다. 정치적인 의도와 상관없이 부정선거와 당일 투표를 외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성조기보다 태극기를 사용하자는 이야기를 나누는 참가자들도 볼 수 있었다. 집회가 특정 정치 세력이나 기존 보수 단체 집회로 비치는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였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음료를 마시기 위해 커피차에 줄을 서있는 모습 사진원은미 기자
9일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음료를 마시기 위해 커피차에 줄을 서있는 모습 [사진=원은미 기자]

집회가 닷새째 이어지면서 현장은 하나의 장기 체류 공간처럼 변해 있었다.

의료지원소에는 각종 의약품과 아이스팩, 반창고, 생리대가 정리돼 있었다. 목에 '의사'나 '약사' 명찰을 건 자원봉사자들이 참가자들을 맞았다. 한쪽에는 분리수거함이 놓여 있었고, 플라스틱과 일반 쓰레기를 따로 버리도록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커피차와 물품 보관 공간도 마련됐다. 이곳에는 '전국에서 보내주신 물품을 나눠드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봉사 중'이라는 안내문 아래 생수와 간식 상자가 쌓여 있었다.

한 자원봉사자는 "직접 물품을 가져다주는 분들도 있고, 쿠팡이나 배달로 보내주는 분들도 있다"며 "익명으로 지원해 주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주말에는 정말 2만~3만 명이 있었지만, 평일 오전에는 직장인들이 출근하고 학생들은 학교에 가니까 사람이 적은 것"이라며 "저녁이 되면 퇴근한 사람들이 다시 와서 주차장까지 꽉 찬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참가자들이 서로 음식을 나누고 물을 건네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반려견과 함께 나온 시민도 있었고, 가족 단위 참가자도 있었다. 한쪽에서는 돗자리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며 쉬는 사람들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구호를 외치며 출입구를 지키는 참가자들이 자리를 지켰다.
집회 한 켠에 마련된 의료지원소 약사들이 명찰을 목에 걸고 각종 의약품과 아이스팩 등을 정리해 놓았다 사진원은미 기자
9일 집회 한 켠에 마련된 의료지원소 모습. 약사들이 명찰을 목에 걸고 각종 의약품과 아이스팩 등을 정리해 놓았다. [사진=원은미 기자]

물론 긴장감도 존재했다.

오전 중 한 참가자가 확성기를 든 시민에게 "똑바로 걸으라"고 말하자 상대방이 "다리가 아파 신발을 제대로 못 신었다"고 맞받으며 언성이 높아졌다. 다행히 주변 참가자들이 구호로 잠재우면서 상황은 금세 정리됐다.

정오가 가까워질수록 나무 그늘 빈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출입구 앞에 모인 사람들도 늘어났다. 태극기를 든 참가자들은 다시 확성기 앞으로 모여들었다.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 투표! 수개표!"

같은 구호가 반복됐지만,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입장은 조금씩 달랐다.

누군가는 참정권 침해를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재선거를 주장했다. 부정선거 의혹을 말하는 참가자도 있었고, 정치적 색깔을 입히지 말아 달라고 말하는 시민도 있었다.

다만 한 가지는 같았다. 현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참가자는 자신을 정치 세력보다 "유권자"라고 소개했다는 점이다. 

참정권 침해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시작된 집회는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구호와 새로운 얼굴들을 품고 있었지만, 적어도 이들이 스스로를 규정하는 단어는 여전히 '유권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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