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사업장이 위치한 지방자치단체들의 재정 여건이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다.
기업 실적 호조에 따라 법인지방소득세 수입이 크게 늘면서 지자체들은 예산 확대와 각종 인프라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특히 SK하이닉스 본사가 있는 경기 이천시는 사상 처음으로 재정자립도 50%를 돌파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이 위치한 용인·화성·평택시 역시 세수 증가 효과를 누리며 지역 발전 계획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재정자립도는 지방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지방세와 세외수입 등 자체 수입이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한다. 재정자립도가 높을수록 중앙정부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재원으로 행정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크다는 뜻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올해 이천시의 본예산 기준 재정자립도는 55.13%를 기록했다. 2022년 44.58%, 2024년 34.56%와 비교하면 큰 폭으로 상승한 수치다. 이천시는 올해 총예산 1조2036억원 가운데 약 6635억원을 자체 수입으로 충당하면서 처음으로 재정자립도 50% 벽을 넘어섰다.
이는 인근 지자체와 비교해도 두드러진 성과다. 같은 경기 동남부권인 여주시의 재정자립도는 20.21%, 광주시는 31.12% 수준이다. 이천시가 상대적으로 높은 재정자립도를 기록한 배경에는 SK하이닉스의 실적 개선이 자리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매출 97조1467억원, 영업이익 47조2063억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인공지능(AI) 산업 확산과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증가가 실적을 견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기업 실적이 좋아지면 법인세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 납부하는 법인지방소득세도 함께 증가한다. 실제로 이천시 전체 세입 가운데 SK하이닉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60%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천시는 늘어난 세수를 바탕으로 올해 1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예산 규모를 1조7067억원까지 확대했다. 다만 시는 반도체 업황이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재정안정화기금 적립도 병행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경기 순환 산업이다. 수요가 급증하면 기업 실적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만, 경기 둔화나 공급 과잉이 발생할 경우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업황 부진이 이어졌던 시기에는 법인지방소득세 납부액이 사실상 없었던 해도 있었다.
이천시는 지역 경제 기여도를 인정해 지난 4월 SK하이닉스 사업장 인근 경충대로 일부 구간에 ‘에스케이하이닉스로’라는 명예도로명을 부여하기도 했다. 기업의 투자와 고용 창출이 지역 발전에 미친 영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을 품고 있는 경기 남부 지역도 비슷한 분위기다. 삼성전자 DS(Device Solutions) 부문 사업장이 위치한 용인시, 화성시, 평택시는 올해 법인지방소득세 증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특히 최근까지 우려됐던 삼성전자 노사 갈등이 정부 중재를 통해 봉합되면서 지자체들도 한숨을 돌리는 분위기다. 만약 장기 파업으로 생산 차질이 발생할 경우 기업 실적 악화는 물론 지방세 수입 감소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장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생산시설에서 발생하는 세수뿐 아니라 협력업체 입주, 일자리 창출, 소비 증가 등 다양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만들어낸다.
평택시는 반도체 관련 세수가 기존 500억원대에서 1500억원 수준까지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화성시 역시 증액분만 1000억원 안팎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용인시의 경우 증가 폭이 더욱 두드러진다. 삼성전자가 납부한 법인지방소득세는 지난해 229억원에서 올해 635억원으로 증가해 약 2.8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늘어난 세수는 철도 건설과 도로 확충, 교육시설 개선, 문화시설 조성 등 다양한 공공사업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자체 재원이 늘어날수록 지역 주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행정서비스의 범위도 넓어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세수 증가에 따른 과도한 지출 확대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반도체 산업 특성상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만큼 일시적인 세수 증가를 영구적인 재원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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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국내 지방정부들은 특정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경우 기업 실적 변화에 따라 재정이 크게 흔들리는 문제를 겪기도 한다. 기업이 성장할 때는 세수가 늘어나지만 업황 악화가 발생하면 재정운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재정 전문가들은 남는 재원을 단순 소비성 사업보다는 미래 경쟁력을 높이는 투자에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공지능(AI) 산업 기반 구축, 친환경 에너지 전환, 스마트 교통망 확충, 디지털 행정 시스템 개선 등이 대표적인 분야로 꼽힌다.
최근 지방정부들이 데이터센터 유치와 첨단산업단지 조성, 전력망 확충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기업이 창출한 세수를 다시 미래 산업 기반 조성에 투자해 지속 가능한 성장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의 호황이 기업 실적 개선을 넘어 지방재정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품은 지역들은 늘어난 세수를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다만 업황 변동성이 큰 산업 특성을 고려해 미래를 위한 투자와 재정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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