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드] 올해 1분기 한국 경제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호조와 설비투자 급증에 힘입어 실질·명목 지표 모두에서 이례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50년 만에 최고 수준을 보이며 1인당 국민총소득(GNI) 4만달러 진입 시점을 앞당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한국은행은 9일 1분기 실질 GDP 성장률(직전 분기 대비·잠정치)이 1.8%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지난 4월 발표된 속보치(1.7%)보다 0.1%포인트 상향 조정된 수치로, 2020년 3분기(2.3%) 이후 5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지난해 4분기 -0.1%로 다시 위축됐던 분기 성장률은 올해 들어 급반등하며 경기 회복세를 뚜렷이 드러냈다.
김화용 한국은행 국민소득부장은 “1분기 실질 GDP 성장률 0.1%포인트 조정은 연간 성장률을 0.1%포인트 높이는 영향이 있다”며 “8월 경제전망에서 변화된 여건을 반영해 전망치를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지난 5월 올해 실질 GDP 성장률을 2.6%로 제시한 바 있어, 이번 조정으로 연간 성장률 전망이 2.7% 이상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커졌다.
성장을 이끈 것은 수출과 설비투자였다. 1분기 수출은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품목을 중심으로 5.9% 증가했다. 이는 2020년 3분기(14.9%) 이후 5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수입도 기계·장비, 자동차 등을 중심으로 3.9% 늘어 2021년 4분기(4.0%)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설비투자는 기계류와 운송장비 투자가 늘면서 6.6% 급증했다. 2021년 1분기(9.2%) 이후 5년 만의 최고 증가율이다. 건물·토목 건설이 모두 늘어난 건설투자는 1.4% 증가했다. 민간소비는 의류 등 재화와 금융 등 서비스 소비가 함께 늘며 0.6% 증가했지만, 정부소비는 건강보험 급여비 지출 감소 영향으로 0.4% 줄었다.
속보치와 비교하면 설비투자 성장률이 1.8%포인트, 수출이 0.8%포인트 상향 조정됐다. 다만 차감 항목인 수입 증가율도 0.9%포인트 높아졌다. 부문별 성장 기여도를 보면 순수출(수출-수입)이 성장률을 1.1%포인트 끌어올렸다. 수입이 늘었지만 수출 증가 폭이 더 컸기 때문이다. 민간소비(0.3%포인트), 건설투자(0.2%포인트), 설비투자(0.6%포인트) 등 내수 부문은 합산 0.7%포인트를 기여했다.
산업별로는 제조업이 컴퓨터, 전자 및 광학기기, 1차 금속 등을 중심으로 3.9% 성장했다. 이 가운데 정보통신기술(ICT) 제조업은 15.4% 급증한 반면, 비(非) ICT 제조업은 0.9% 감소해 대조를 이뤘다. 전기·가스·수도업은 수도 및 원료 재생업 등을 중심으로 3.1% 늘었고, 건설업과 농림어업도 각각 2.2%, 4.3% 성장했다. 서비스업은 도소매, 숙박·음식업이 증가했지만 운수업 등이 줄어 전체적으로 0.6%의 소폭 성장을 기록했다.
눈에 띄는 것은 명목 지표의 ‘점프’다. 1분기 명목 GDP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10.5%로, 1976년 1분기(13.0%) 이후 50년 만의 최고치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17.1% 증가해 1995년 3분기(19.2%) 이후 30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김화용 부장은 “1분기 명목 GDP 성장률 상승은 국내 물가 상승이 아니라 수출 기업 수익성이 크게 개선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 영업이익 확대는 법인세 증가를 통해 재정 안정에 기여할 뿐 아니라, 미래 산업 육성과 구조개혁을 통한 잠재성장률 제고에 필요한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며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확충을 통해 내수 진작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명목 GDP의 빠른 확대는 부채 비율에도 영향을 미친다. 김 부장은 “국제결제은행(BIS) 등 국제기구에서도 가계부채나 정부부채 등을 명목 GDP 대비 비율로 측정해 국제 비교를 하고 있다”며 “명목 GDP 성장률 확대로 이 비율이 상당 폭 낮아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덧붙였다.
명목 국민총소득(GNI)도 크게 늘었다. 1분기 명목 GNI는 전 분기보다 11.0% 증가해 역시 5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명목 국외순수취요소소득이 9조2천억원에서 13조7천억원으로 증가하면서 명목 GDP 성장률(10.5%)을 웃돌았다. 실질 GNI 증가율은 9.2%로 사상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교역조건이 개선되고 실질 국외순수취요소소득이 8조2천억원에서 11조6천억원으로 늘어나면서 실질 GDP(1.8%)를 크게 상회했다.
총저축 여력도 확대됐다. 1분기 총저축률은 41.7%로 전 분기보다 5.7%포인트 상승해 1988년 4분기(41.9%) 이후 37년 3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민총처분가능소득 증가율(11.2%)이 최종 소비지출 증가율(1.2%포인트)에 비해 크게 높았기 때문이다.
이날 함께 발표된 2025년 국민계정(잠정)에 따르면, 2025년 1인당 GNI는 3만6천963달러로 전년보다 0.3% 증가했다. 원화 기준으로는 5천257만원으로, 증가율은 4.6%였다. 지난 3월 공개된 잠정치(3만6천855달러)보다 소폭 상향됐지만, 달러 기준 증가율은 0.3%로 동일했다.
김화용 부장은 “현재와 같은 높은 명목 증가세가 지속되면 올해 중 1인당 GNI가 4만달러에 근접할 것”이라며 “4만달러 달성이 2028년보다 앞당겨질 가능성이 커진 것은 분명하지만, 기업 실적과 원/달러 환율 흐름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한국은행은 2024년 연간 GDP 성장률 잠정치를 기존 2.0%에서 2.2%로, 2025년 성장률은 1.0%에서 1.1%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1분기 실적 개선과 수출·투자 회복세가 향후 성장 경로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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