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N] 고(故) 채정례 명인 유산… 제자들이 되살린 남도굿의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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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N] 고(故) 채정례 명인 유산… 제자들이 되살린 남도굿의 정수

뉴스컬처 2026-06-09 11:05:0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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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김굿 공연 모습. 사진=국립남도국악원
씻김굿 공연 모습. 사진=국립남도국악원

 

[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흰 무명천이 무대를 가르고, 북과 소리가 망자의 길을 연다. 국립남도국악원 교류공연 ‘씻김굿’은 떠나는 이를 배웅하고 남은 사람의 마음을 달래는 남도 의례의 시간으로 풀어낸다. 서남해안 지역에서 전승된 천도굿을 토대로 삼아 망자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편안히 건너가도록 돕는 의식이다.

한국 민속 신앙에서 망자가 이승의 감정을 덜어내야 순탄한 저승길이 열린다는 믿음이 있었다. ‘씻김굿’은 떠난 이의 한을 풀고, 가족과 마을 사람이 겪는 상실의 마음을 위로하는 절차를 품는다. 산 자에게는 죽음의 두려움을 마주할 힘을 주고, 망자에게는 마지막 길을 닦아주는 의례다. 국립남도국악원 연주단은 2013년부터 고(故) 채정례 명인(1925~2013)의 ‘씻김굿’을 전수받아 공연했다. 채정례 명인의 남도 예술은 소리와 춤, 무속 의례가 섞인 깊은 양식을 품고 있다. 무대 위 ‘씻김굿’은 남도굿의 정수와 예술적 밀도를 관객에게 전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공연은 ‘초가망석’으로 시작한다. 굿마당의 문을 여는 절차다. 망자의 혼을 모시고 의례의 질서를 세우는 초입이다. 죽은 이를 부르는 소리와 몸짓은 무대를 장례 의식의 공간으로 바꾸고, 관객에게 앞으로 펼쳐질 여정의 분위기를 예고한다. ‘손굿쳐올리기’는 현실의 액을 막고 굿마당의 안녕을 비는 절차다. 산 사람에게 남을 수 있는 재액을 걷어내고, 망자를 보내는 의식이 평온하게 진행되길 기원한다. 죽은 이를 위한 굿이면서도 남은 사람의 삶을 살피는 ‘씻김굿’의 성격이 드러나는 구간이다.

‘제석굿’은 복과 평안을 비는 의례다. 제석신에게 바치는 절차를 거쳐 산 사람의 마음을 달래고, 망자의 길에 복이 깃들기를 바란다. 장단과 소리는 엄숙함 속에서도 삶을 붙드는 기운을 품는다. ‘넋올리기’는 망자의 혼을 불러 올리는 중요한 순서다. 떠난 이를 무대 위로 모시고,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의 마지막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이별의 슬픔은 소리 속에서 구체적인 형상을 얻고, 가족과 공동체가 품은 마음은 의례의 말과 몸짓으로 풀린다.

‘희설’은 망자를 향한 말과 노래가 깊어지는 절차다. 애도와 위로, 기억과 사설이 교차하며 굿의 정서가 짙어진다. 떠난 이를 향한 마음은 개인의 슬픔에 갇히지 않고, 남도 의례 특유의 해학과 소리의 힘을 만나 관객에게 전달된다. 공연의 중심에는 ‘씻김’이 있다. 망자의 옷가지를 돗자리에 말아 세우고 향물, 쑥물, 맑은 물로 씻어내는 절차다. 물은 한과 고통을 덜어내는 상징이며, 흰 천과 깨끗한 물의 이미지는 망자가 새 길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씻김굿 공연 모습. 사진=국립남도국악원
씻김굿 공연 모습. 사진=국립남도국악원

 

‘고풀이’는 생전의 아픔과 응어리를 풀어주는 순서다. ‘고’는 매듭과 얽힘을 떠올리게 한다. 소리와 몸짓은 망자가 품었을 슬픔, 남은 사람이 붙잡은 죄책감, 공동체가 감당해야 할 이별의 무게를 풀어내는 역할을 한다. ‘길닦음’은 망자의 마지막 길을 닦아주는 절차다. 긴 무명천이 놓이고, 그 위로 저승길의 이미지를 펼친다. 떠난 이가 헤매지 않고 평온한 길을 걷기를 바라는 마음이 핵심이다. 관객은 죽음의 길을 상상하면서도, 산 자가 슬픔을 견디는 방식을 마주한다.

마지막 ‘액막음’은 남은 사람을 위한 기원으로 끝을 맺는다. 망자를 보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살아갈 이들이 재액을 피하고 평안을 얻기를 바라는 의식이다. ‘씻김굿’이 죽은 사람의 천도와 산 사람의 회복을 모두 품는 이유가 이 절차에서 선명해진다. ‘씻김굿’은 초가망석, 손굿쳐올리기, 제석굿, 넋올리기, 희설, 씻김, 고풀이, 길닦음, 액막음으로 이어지는 구성을 통해 남도 상례 의식의 깊이를 보여준다. 무대 위 흰옷, 무명천, 제물, 장단, 소리는 죽음과 삶을 따로 떼어놓지 않는 남도 예술의 감각을 전한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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