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는 데 5분도 안 걸리는 사람이 있다. 지금 당장 무조건 식습관을 고쳐야 한다. 빠른 식사가 단순한 생활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비만,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병을 부르는 '성인병의 씨앗'이라는 사실이 여러 연구에서 거듭 확인되고 있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한국인의 평균 식사 시간을 조사한 결과(고려대안산병원 건강검진, 2016년)를 보면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5분 미만으로 식사를 마치는 사람이 8%, 5~10분이 44%로 가장 많았고, 10~15분은 36%, 15분 이상은 10%에 불과했다. 절반에 가까운 한국인이 1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한 끼를 해치우고 있는 셈이다. 직장인이라면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점심시간은 1시간인데 이동하고, 줄 서고, 자리 잡고 나면 실제 밥 먹는 시간은 10분 남짓. '빨리빨리' 문화가 식탁 위에도 고스란히 내려앉은 결과다.
문제는 그 10분이 몸무게를 바꾼다는 데 있다. 같은 병원의 건강검진 자료(2013년)에 따르면 식사 시간이 15분 이상인 남성의 평균 체중은 68.5㎏인 반면 5분 미만인 남성은 72.1㎏으로 3.6㎏ 더 무거웠다. 여성의 경우 격차는 더 벌어진다. 15분 이상 식사하는 여성은 평균 57.5㎏, 5분 미만인 여성은 63㎏으로 무려 5.5㎏ 차이가 났다. 밥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만으로 체중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5분 이내로 식사를 마치면 15분 이상 식사할 때보다 평균 110㎉를 더 섭취하게 된다는 연구 결과가 그 답을 준다. 밥 3분의 1공기에 해당하는 열량이다. 매일 그 차이가 쌓이면 어떻게 될지는 굳이 계산하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이 현상의 핵심에는 '포만감 호르몬'이 있다.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혈당이 서서히 오르고, 그 신호가 뇌에 전달돼 '배가 부르다'는 느낌이 생기기까지 약 20분이 걸린다. 포만감을 조절하는 호르몬 렙틴은 식사 시작 후 15~20분이 지나야 비로소 분비된다. 5분 만에 밥을 끝내버리면 뇌는 아직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보내는 중이다.
빠르게 식사하면 혈당이 갑자기 치솟으면서 인슐린 분비가 과도하게 자극된다. 칼로리가 필요 이상으로 흡수되고 고지혈증이 생기며 중성 지방이 증가해 혈중 지질 수치도 올라간다. 인슐린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혈당이 다시 급격히 떨어지면서 금방 허기가 지는 악순환도 시작된다.
실제 수치가 이를 뒷받침한다. 식사 속도와 성인병의 관계를 분석한 고려대안산병원 건강검진 자료(2013년)에 따르면 5분 미만으로 식사하는 사람은 15분 이상 식사하는 사람보다 고지혈증 발생 위험이 1.8배, 고혈압은 2배, 비만은 3배 높았다. 단 10분 차이가 만들어내는 격차치고는 놀라운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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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연구만이 아니다. 해외 연구들도 같은 결론을 가리키고 있다. 일본에서 2형 당뇨병 환자 약 6만 명을 6년간 추적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빠르게 먹는 사람은 보통 속도로 먹는 사람보다 비만 위험이 29% 높았고, 천천히 먹는 사람과 비교하면 격차는 더 벌어졌다. 15개 관찰 연구를 종합한 메타분석에서는 빠른 식사자의 체질량지수(BMI)가 천천히 먹는 사람보다 평균 1.78㎏/㎡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리투아니아 연구팀이 2형 당뇨병 환자 234명과 비당뇨 대조군 468명을 비교한 연구에서는 빠른 식사가 2형 당뇨병의 독립적 위험 요인으로 처음 확인됐다. 일본 일반 인구를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연구에서는 빠르게 먹는 남성의 당뇨병 발생률(5.4%)이 전체 남성 평균(4.5%)보다 높았고, 여성도 3.3% 대 2.6%로 빠른 식사 그룹에서 발병률이 더 높게 나타났다.
혈당 변동폭을 직접 측정한 실험 결과도 있다. 건강한 젊은 여성 19명을 대상으로 같은 음식을 10분과 20분에 걸쳐 먹게 한 뒤 혈당 변화를 비교한 결과, 10분에 먹었을 때 혈당 변동폭이 훨씬 크게 나타났다. 아침·점심·저녁 모든 식사에서 빠르게 먹은 날 혈당 최고치가 유의미하게 높았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는 건강한 젊은 사람들에서도 빠른 식사가 2형 당뇨병과 비만 위험을 높일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결국 이 모든 문제의 배경으로 지목된 것이 짧은 식사시간이다. 직장인 대다수가 1시간의 점심시간을 갖지만 이동·대기 시간을 빼면 실질적인 식사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빨리 먹는 게 습관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얘기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급식 시간이 빠듯한 초중고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빨리 먹기'를 몸에 익히면, 성인이 돼서도 그 습관이 그대로 이어진다. 중국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전국 조사에서도 빠른 식사가 복부 비만 및 전반적 비만과 양의 상관관계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빠른 식사의 폐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한 번에 많은 양을 입에 넣지 말고 30번 정도 씹는 습관을 들이라고 권한다. 식사 중간에 물을 한두 모금 마시거나 음식을 먹는 사이 잠깐 젓가락을 내려놓는 것도 속도를 늦추는 데 효과적이다. 식사 순서도 중요하다. 채소를 먼저 먹고 단백질, 탄수화물 순으로 섭취하면 앞서 형성된 음식물 층이 탄수화물 흡수 속도를 늦춰 혈당이 급격히 오르는 것을 막아준다. 이처럼 사소한 식습관 변화만으로도 식후 급격한 혈당 상승을 의미 있게 억제할 수 있다.
천천히 먹기는 비용도 들지 않는다. 약을 먹을 필요도 없고 헬스장에 등록할 필요도 없다. 그저 10분을 더 쓰는 것으로 비만과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의 위험을 동시에 낮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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