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지만 유독 걱정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회의실의 미묘한 공기, 상대방의 말투 변화, 애매한 이메일 한 줄 등 남들은 무심히 지나치는 작은 신호에서도 이들은 잠재적 위협을 기민하게 읽어낸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성향을 '위험 회피(Harm Avoidance)' 기질이라 부른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이는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물려받은 소중한 유산이다. 풀숲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을 때 "바람이겠지" 하고 넘긴 조상보다 "맹수일지 몰라"라며 움찔했던 조상이 살아남아 우리의 선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헛놀란 쪽의 대가는 잠깐의 헛수고였지만 방심한 쪽의 대가는 곧 죽음이었다. 즉 걱정이 많은 사람은 겁쟁이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의 후손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예민함은 그 자체로 결함이 아니다. 다만 맹수가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과도하게 활성화된 위험 회피 기질은 종종 이익보다 손해를 불러온다. 우리의 한정적인 인지 자원이 '일어나지 않을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느라 방전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협을 감지하는 뇌의 편도체는 좋은 일보다 나쁜 일에 훨씬 더 강하고 빠르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부정 편향' 탓에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재난을 염려하느라 현재의 귀중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오류에 빠진다. 만약 당신도 끝없는 걱정 때문에 일상이 소모되고 있다고 느낀다면 이제 이 통제 불능의 불안을 다스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불안을 다스리는 카네기의 처방
데일 카네기는 <자기관리론> 에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걱정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위해 '기록을 살펴보라'라는 매우 단순하고도 실천적인 처방을 제시했다. 막연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을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걱정하는 이 일이 평균의 법칙에 비추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과연 얼마인가'를 냉정하게 따져보라는 것이다. 자기관리론>
카네기가 제시한 이 조언은 약 80년 뒤 최신 임상심리학에 의해 그 타당성이 정밀하게 증명되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의 임상심리학자 루카스 라프레니에르(Lucas LaFreniere) 미셸 뉴먼(Michelle Newman) 연구팀은 '걱정이 많은 사람은 위협을 부풀려 본다'는 심리치료의 오랜 전제를 일상 속에서 직접 수치화해 검증해 보기로 했다.
연구진은 임상적으로 범불안장애를 겪는 참가자 29명을 대상으로 열흘 동안 하루에도 수차례씩 자신을 괴롭히는 걱정거리를 스마트폰에 즉각 기록하게 했다. "발표를 망칠 것 같다" "그 사람이 나에게 화가 났을 것이다"처럼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두려움이 처음으로 기록으로 남았다. 그리고 약 한 달에 걸쳐 연구진은 그 걱정들이 실제로 일어났는지를 추적하여 실제 결과와 대조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참가자들이 기록한 걱정 예측 중 무려 91.4%가 끝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참가자 약 네 명 중 한 명은 자신이 적어 둔 걱정이 단 하나도 현실이 되지 않은 그야말로 발생률이 0%였다는 사실이다. 머릿속에서 그토록 생생하게 펼쳐졌던 파국이 현실에서는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실제로 현실이 된 나머지 걱정 중에서도 약 3분의 1은 처음 두려워했던 것보다 나은 결과로 끝났다. 이 실험 결과는 '걱정의 기만을 폭로하다(Exposing Worry's Deceit)'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발표되었다.
불안을 주도권으로 바꾸는 3단계 훈련
남들보다 더 많이 걱정하는 기질 자체는 쉽게 바뀌지 않으며 굳이 바꿀 필요도 없다. 세상에는 비상구를 먼저 확인하고 위기를 앞서 감지하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예민한 기질에 '객관적인 사실 확인'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는 데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막연한 불안을 통제 가능한 리스크로 전환하면 불필요한 인지 자원의 낭비를 막고 상황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다. 나아가 위험을 먼저 감지하는 예민함은 오히려 치밀한 위기관리 능력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그렇다면 대부분 빗나가고 마는 거짓 경보를 가려내고 진짜 위협만을 추려내는 역량을 기르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카네기의 원칙을 업무 현장에 적용하는 3단계 훈련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불안을 객관적 데이터로 외부화하라(걱정의 수치화).
핵심은 내면의 모호한 불안을 시각적이고 구체적인 수치로 밖으로 꺼내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두려움은 실제보다 과장되기 쉽지만 이를 정확한 수치로 변환하는 순간 객관적으로 통제 가능한 크기로 줄어든다.
앞선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의 실험을 자신의 업무 일상에 직접 적용해 보라. 걱정이 떠오를 때마다 한 줄로 적고 '이 일이 일어날 객관적 확률'을 숫자로 적은 뒤 시간이 지나 실제 결과를 그 옆에 대조해 보는 것이다. 이 기록이 쌓이면 우리가 평소 얼마나 위협을 부풀려 왔는지를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축적된 데이터로 깨닫게 된다. 어제의 데이터가 오늘의 과잉 불안을 누그러뜨린다.
둘째, 내면의 극복 경험을 복기하라(대처 능력의 발견).
확률을 따져도 불안이 가시지 않는다면 두려움의 진짜 뿌리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나는 그것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낮은 자기효능감(Self-efficacy)에 있다. 이때는 스스로 버텨내고 통과해 온 과거 위기들의 목록, 즉 '내면의 극복 기록'을 살펴야 한다.
우리는 위기의 공포는 생생히 기억하면서 정작 그것을 헤쳐 나온 자신의 유능함은 쉽게 잊는다. 실적 악화 핵심 인력의 이탈 실패한 프로젝트처럼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일들을 우리는 어떻게든 지나왔고 그래서 지금 여기 있다. 걱정이 최악의 장면에서 멈춰 선다면 상상의 테이프를 한 발만 더 돌려보라.
'그 일이 벌어진 다음 날 아침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대안을 찾고 수습에 나서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우리를 마비시키던 불안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바뀐다. 앞선 연구가 보여주듯 설령 걱정하던 일이 벌어지더라도 현실은 종종 우리가 상상했던 파국보다 훨씬 덜 치명적이다.
셋째, 진짜 위험은 시스템에 위임하라(감정과 대비의 분리).
물론 앞선 연구에서 91.4%의 걱정이 허구로 밝혀졌더라도 나머지 8.6%는 실제로 일어난다. 또한 발생 확률이 1% 미만일지라도 일단 발생하면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중대 리스크도 분명히 존재한다.
카네기의 원칙은 맹목적인 낙관주의가 아니다. 실재하는 위험에 대해서는 오히려 철저한 '대비(Preparation)'를 갖추라는 의미다. 위기 대응 매뉴얼을 구축하고 플랜 B를 세우며 이중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단 그렇게 철저히 시스템을 구축했다면 이후의 위험 관리는 개인의 감정이 아닌 '시스템'에 위임해야 한다. 대비를 마친 후에도 불안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리스크 통제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반복하는 비효율적인 습관일 뿐이다.
오지 않은 불행 당겨쓰지 않기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행복한 순간에도 '이 평온함이 언제 깨질지 모른다'며 불안해한다. 심지어 미리 최악을 상상하고 바짝 긴장해 있어야만 막상 진짜 위기가 닥쳤을 때 덜 상처받을 것이라 믿으며 스스로를 몰아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오지 않은 불행의 고통을 미리 당겨쓴다고 해서 실제의 충격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온전히 누려야 할 현재의 기쁨과 에너지만 소진될 뿐이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짊어지운 그 무거운 방어막을 조금 내려놓아도 좋다. 마음이 늘 불안하다면 그 예민함을 자책하거나 억지로 뿌리 뽑으려 하지 마라. 대신 앞서 제시한 3가지 훈련법을 기억하자. 내면의 두려움을 명확한 데이터로 팩트 체크하고 과거의 수많은 위기를 통과해 온 자신의 대처 능력을 신뢰하며 진짜 위험은 감정이 아닌 시스템으로 방어하는 것이다.
오지 않을 재난을 염려하느라 현재를 저당 잡히는 대신 위기를 먼저 보는 능력으로 차분히 미래를 준비하고 다시 고개를 들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 당신을 짓누르던 그 예민한 불안은 이처럼 객관적인 훈련을 거치는 순간 비로소 남들보다 앞서 위기를 감지하고 주도적으로 대비하는 당신만의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 위험 회피(Harm Avoidance): 잠재적인 위험이나 처벌을 피하기 위해 조심스럽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기질을 뜻한다.
☞ 편도체: 뇌 안에서 분노, 공포 등 다양한 감정을 조절하고 처리하는 아몬드 모양의 작은 부위다.
☞ 범불안장애: 일상생활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과도하고 통제하기 힘든 불안과 걱정이 지속되는 정신 질환이다.
☞ 자기효능감(Self-efficacy): 특정한 문제를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여성경제신문 김승중 심리학 박사·마음의 레버리지 저자
spreadksj@gmail.com
김승중 심리학 박사 / 리더십 코치
광운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양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GS건설 재무팀을 거쳐 데일카네기코리아에서 17년간 교육컨설팅본부장으로 근무하며 삼성, 현대, LG, SK 등 주요 대기업의 리더십 개발 프로젝트를 기획·총괄했다. 국제 공인 마스터 트레이너로서 수백명의 강사를 양성한 전문가다. 현재는 리더십·코칭 전문 컨설팅 회사 TGW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임원과 핵심 리더들이 아는 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고, 그 변화가 조직 전체로 확산하도록 돕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인생의 내공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 <마음의 레버리지> 가 있으며, 월간마음건강 고정 필진으로 활동 중이다. 마음의> 인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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