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윤석문 작가의 어떤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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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초대석> 윤석문 작가의 어떤 소망

일요시사 2026-06-09 09:44:1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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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안은 경계 위에 쌓인다. 이제는 젊다고도, 그렇다고 늙었다고도 할 수 없는 나이의 한 사람이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가느다란 선에 서 있다. 눈이 터진 곰 인형을 안고 현실과 이세계를 오가는 사람, ‘작가’ 윤석문을 만났다.

광주송정역에서 택시를 타고 30분 남짓 갔을까. 점점 외진 곳으로 간다 싶더니 택시는 3층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주변에 편의시설 하나 없는 고즈넉한 느낌의 건물에는 ‘광주시립미술관 청년센터’라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 바람에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 새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작업을 하기에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경계와 집

전화를 받은 윤석문은 허겁지겁 1층으로 내려왔다. 건물은 북향으로 지어져 한낮인데도 도통 해가 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3층에 자리한 윤석문의 작업실도 서늘했다. 작업실은 생각보다 넓었고 상상 이상으로 깨끗했다. 정갈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책상에는 수십 자루의 연필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작업 도구가 저마다의 자리를 차지한 상태였다.

지난달 29일 오후 광주시립미술관 청년센터에서 제공하는 레지던시에 입주 중인 윤석문을 만났다. 윤석문은 올해 서른아홉 된, 현실이 주는 불안함에 몸부림치는 청년 작가였다. 먹고사는 문제가 숨을 조이고 꿈꾸는 이상은 멀기만 한 상황에서 윤석문이 잡은 건 ‘창작이라는 동아줄’이었다.

윤석문의 일과는 단순하다. 아침에 일어나 집에서 아침을 먹고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작업실에 온다. 7~8시간가량 작업 후에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고 잔다. 주말을 제외하고 5일 내내 똑같이 반복한다. 작업이 정말 되지 않을 때는 아예 손을 놓아버리고 산책하러 가거나 영화를 보고 잠을 자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 이틀을 넘기는 법은 없다.

윤석문은 스스로 ‘강박’에 가깝게 시간을 관리한다고 말했다. 그는 “계약직으로 일한 적도 있는데 창작을 병행하는 게 정말 힘들었다. 낮에 8~9시간 일하고 저녁에 창작하려니 집중도 잘 되지 않고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데미지가 컸다. 창작에 좀 더 몰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디 가서 작가라는, 창작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내 삶의 시간과 에너지를 최소한 직장인들처럼 일정 시간 궁둥이 붙이고 작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러면 스스로 예술가라는 소리를 듣기 부끄러운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 부분을 증명하고 싶어서 일과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석문이 선택한 방법은 ‘덜 쓰면서 살자’였다. 작업을 하지 않는 주말에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고 주중에는 일정 수준의 창작 시간을 확보하는 것, 그게 윤석문이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곡기를 줄이고 좁은 굴로 들어가 참선하는 수도승이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윤석문이 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했다. 윤석문은 곰 인형을 소재로 작업한다. 2014년 늦은 밤에 길을 걷다가 발견한 버려진 곰 인형은 윤석문의 페르소나가 됐다. 더러워지고 망가진 채 길에 누워 있는 곰 인형에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는 뜸해지고 그나마 있던 관계마저 희미해지던 자신을 투영했다.

강박적인 시간 관리로
현실과 작품 거리 줄여

쨍한 색감, 팬시한 느낌을 주던 화풍은 서른넷, 다섯을 지나면서 변화했다. 색은 단조로워졌고 곰 인형에는 구멍이 생겼다. 현실이 아닌 듯한 푸르스름한 배경은 망가진 세계, 디스토피아를 상징한다. 윤석문은 “만화 캐릭터처럼 표현하다 보니 지나치게 다듬어진 느낌이 있었다. 처음 (곰 인형을) 발견했던 당시 모습처럼 ‘버려진 인형’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 이곳저곳을 터트려 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윤석문이 곰 인형에 만든 상처와 구멍은 이야기의 통로로 작용했다. 그는 “(곰 인형에 생긴) 구멍들이 뭔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통로가 아닐까, 하고 열어뒀다”고 말했다. 윤석문은 그 통로를 통해 사회와 소통하고자 했다. 경계와 집, 그가 현재 천착하고 있는 주제로 작업해 사회와의 동시성을 유지하고자 한 것이다.

윤석문은 “경계라는 걸 어떻게 표현할까 하다가 예전에 읽은 소설에서 세계관을 빌렸다. 완벽하게 통제되고 갇혀 있는 사회인데, 그곳에 있으면 인간성을 상실하게 되고 외부에 관해 생각할 수 없다. 그 세계에서 모순을 발견하고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내용으로 작업했다”고 전했다.

집에 관한 생각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광주에서 아파트가 무너지는 등 각종 집과 관련한 사고를 보면서 “인간이 욕심부리다가 결국은 그것 때문에 엉뚱한 사람이 다치고 죽고 내몰리는 상황을 은유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계속해서 형태나 용도가 바뀌고 있는 집을 보면서 그 미래나 거주하고 싶은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윤석문이 보여준 작품은 ‘어떤 소망’으로 눈이 휑하게 뚫린 곰 인형이 이글루를 짓는 모습을 담았다. 그는 “곰 인형이 매일 얼음덩어리를 힘들게 구해와서 이글루를 짓지만 녹아버린다. 현실에서 집을 구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아득한 일 아닌가. 동시에 (집은)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이글루라는 공간을 이용해 중의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에스키모인들에게 이글루는 정주의 공간이 아니다. 수렵, 채집 활동을 하다가 마을로 돌아오기 전 잠시 머무르는 공간이다. 이처럼 집이라는 게 영원히 정주하는 공간이 아니고 내 소유물도 아니지만 잠시 이곳에서 휴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작업했다”고 덧붙였다.

이글루의 형태가 봉분과 닮은 점도 언급했다. 요즘 시대에 집을 산다는 건 큰 빚을 동시에 떠안는다는 의미다. 윤석문은 “집을 소유하지만, 그로 인해 생긴 부채를 갚아나가는 과정에 많은 노동, 인생 대부분 시간을 부동산에 쓰는 모습을 보면서 무덤에 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전했다.

다정한 시선

윤석문은 사회가 조금 더 다정해졌으면 좋겠다는 뜻을 비쳤다. 그러면서 “취약한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부분을 우리 사회 구성원이 알고 이해의 폭을 넓혔으면 좋겠다. 그런 부분을 작업에 담아 이야기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아직 많이 부족하고 작업 속도도 느리지만 좀 더 좋은 방향을 찾아 노력하려 한다. 내가 표현하는 방식과 현실과의 거리감이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게 하고 싶다”며 환히 웃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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