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침묵에 잠겼던 지하 세계가 마침내 문을 열었다. 제주 대표 세계자연유산인 이곳은 2023년 12월 동굴 입구 상층부에서 낙석이 발생하면서 전면 통제됐다. 안전 점검과 보강 작업을 마치고 2년 5개월 만에 방문객을 맞이한 제주 명소를 만나보자.
제주 만장굴.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제주 동부에 자리한 만장굴이다. 이곳은 2023년 낙석 사고로 전면 통제되며 수많은 여행객에게 큰 아쉬움을 남겼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단순한 임시방편식 보수를 넘어 구조적 안정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약 2년 5개월간 종합정비사업을 추진했다.
총 121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이번 대규모 정비를 통해 노후화된 목재 데크는 전 구간 내구성이 뛰어난 스테인리스 구조물로 전면 교체됐다. 또 겨울철 결빙과 해빙이 반복되며 약해진 입구 암반 벽면에는 정밀 고정 장치와 보호망이 촘촘하게 더해져 안전성을 확보했다. 내부 조명 역시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멸종위기종 생물과 이끼류를 보호할 수 있는 저온·저전력 LED 스마트 조명 시스템으로 전면 교체됐다.
만장굴은 한라산 화산 활동이 남긴 거대하고 완벽한 흔적이다. 특히 제주의 척추를 이루는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의 핵심 축으로, 거문오름에서 분출한 엄청난 양의 현무암질 용암이 해안가로 흘러내려 가는 과정에서 거대한 지하 통로가 만들어졌다.
총길이 7.4km에 달하는 만장굴은 단일 용암동굴로는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내부 폭이 최대 18m, 높이 23m에 달한다. 만장굴은 독보적인 학술 가치와 천연의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으며, 200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의 핵심 구성 요소로 이름을 올렸다.
만장굴은 현재 일부 구간만 일반 관람객에게 개방돼 있다. 천장이 자연적으로 함몰돼 생긴 제2입구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약 1km의 내부 구간이다. 탐방로를 따라 들어서면 무더위가 무색해질 만큼 서늘하고 축축한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동굴 내부 기온은 계절과 관계없이 항상 11~15도 안팎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여름철에는 가벼운 겉옷을 준비하는 게 좋다.
관람객들은 개방 구간을 걷는 동안 수십만 년 동안 자연이 정교하게 빚어낸 천연의 지질 예술품들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특히 동굴 벽면에 수평의 줄무늬로 선명하게 남아 있는 용암유선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용암유선은 동굴 내부를 흐르던 뜨거운 용암의 높이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용암유선을 지나 통로 중간쯤 이르면 만장굴의 가장 유명한 상징물이자 관광객들의 대표적인 포토존인 거북바위가 나타난다. 흘러내리던 용암 표석이 바닥에 굳어진 이 지형은 신기하게도 제주도의 모양을 쏙 빼닮아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동굴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만장굴의 정수인 높이 7.6m의 거대한 용암석주다. 천장 상층굴에서 뚫린 구멍을 통해 아래 하층굴 바닥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던 액체 상태의 용암이 그대로 굳어 기둥을 이루고 있다. 이는 전 세계 용암동굴 중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그 압도적인 형태와 기백은 대자연의 가늠할 수 없는 힘을 실감하게 만든다.
만장굴. /제주시 공식 블로그, AI
만장굴은 탐방로 환경개선과 안전시설 설치 공사를 마무리하고 지난달 30일부터 일반 관람을 재개했다. 올해는 만장굴을 처음 세상에 알린 부종휴 선생 탄생 100주년이자 만장굴 발견 80주년이 되는 해다. 도는 이를 기념해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특별전과 세미나를 열고, 만장굴 현장에서도 재개방 기념행사를 진행한다.
렌터카나 승용차로 방문할 경우, 제주국제공항을 기점으로 번영로와 비자림로를 거쳐 구좌읍 방면으로 이어지는 잘 정비된 지방도를 따라 달리면 약 50분 만에 동굴 입구에 위치한 주차장에 닿을 수 있다.
대중교통 이용객일 경우, 제주공항 시외버스 터미널이나 제주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동주선 일주 버스(101번 번개버스 등)를 타면 된다. 이후 '만장굴 입구' 정류장에서 하차한 뒤, 동굴 내부 주차장까지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지선버스(711-1번 등)로 환승하면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다.
스릴 만점의 모험, 김녕미로공원
김녕 미로공원. / trabantos-shutterstock.com
만장굴 매표소에서 차로 3분 거리에 자리한 김녕미로공원은 한국 최초의 미로공원이다. 제주대학교에서 오랜 기간 재직했던 미국인 교수가 1983년부터 직접 나무를 심고 가꿔 1995년에 문을 열었다.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미로 디자인에 고스란히 녹여낸 독창적인 공간으로, 제주도의 가지런한 음영을 빼닮았다. 또 미로의 벽면을 이루고 있는 초록색 나무들은 사계절 내내 푸른 빛을 잃지 않는 렐란디(Leylandii) 편백나무류로 구성돼 있다. 여행객들은 진한 피톤치드 향을 맡으며 여유를 즐길 수 있다.
미로의 구불구불한 통로 속에는 제주의 상징인 조랑말과 송곳니를 드러낸 뱀과 돛단배의 형상이 정교하게 숨겨져 있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3m 높이의 빽빽한 나무 장벽 사이를 이리저리 헤매며 목적지인 구름다리 위의 종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묘한 스릴을 선사한다.
미로공원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50분까지 운영되며, 입장 마감은 오후 6시까지다. 입장료는 성인 9900원, 청소년 8800원, 어린이 7700원이다.
위대한 어머니들의 기록, 제주해녀박물관
제주해녀박물관. / 제주시 공식 블로그, AI
만장굴에서 번영로와 일주동로를 타고 해안가 방향으로 약 10여 분을 달리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제주해녀박물관이 나타난다. 구좌읍 하도리 일대는 과거부터 제주 전체에서 가장 많은 해녀가 활동했던 해녀의 본향으로 알려졌다. 해녀박물관은 이들의 숭고한 역사와 거친 숨비소리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2006년 건립됐다.
해녀들의 일상적인 주거 공간과 전통 의식주 문화를 재현해둔 제1전시실을 비롯해 물질할 때 입던 전통 옷과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할 때 쓰던 테왁과 망사리 등을 전시해둔 제2전시실, 일제강점기 시절 해녀들이 주도적으로 일으켰던 대규모 항일운동의 기록을 담은 제3전시실까지 다양한 자료를 만날 수 있다.
제주해녀박물관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일이다. 입장료는 성인 1100원, 청소년 5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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