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2권을 펼쳤다. 박만호(朴萬浩, 1936~) 항목 마지막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진 박만호 요한은 강기훈 재판이 엉터리라는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1, 2, 3심에서 모두 가톨릭 신자인 판사들이 재판을 해서 모두 유죄가 나왔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사법부의 신뢰에 사형판결을 내리고도 부끄러움과 뉘우침을 모르는 박만호 요한에게 예수님은 '저들을 사하여 주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다'라고 하실지, 아니면 '먼저 회개하라'고 말씀하실지 생각해볼 일이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이 이토록 직접적인 언어를 쓰는 경우는 드물다. 그만큼 이 인물이 남긴 것이 크고 깊었다는 뜻이다.
1936년 경북 의성 출생, TK 법조 카르텔의 3관왕
박만호는 1936년 2월 15일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태어났다. 경북중학교, 경북고등학교, 서울법대를 거쳐 1961년 제1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경북중·경북고 4년 선배에는 5공·6공의 대표적 정치검사 박철언, 정치판사 손진곤이 있었다. 박만호는 1981년 재경 경우회 이사를 맡았는데, 경우회는 경북고 출신 법조인들의 비밀모임이었다. 한국 엘리트 법조계에서 경북고·서울법대·TK 인맥이 어떻게 촘촘하게 엮여 있는지를 박만호의 이력이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는 법원에서 출세코스로 꼽히는 세 자리를 모두 차지했다. 서울형사지법 수석부장판사,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서울민사지법 수석부장판사. 이 세 자리를 모두 거친 판사가 없었기에 '3관왕'이라 불렸다. 그리고 1991년 9월 대법관에 임명됐다.
세계사 속의 동류, '확신범'의 계보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유형의 인물이 떠오른다. 독일의 법학자 카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다. 나치정권에 부역한 뒤에도 자신의 법이론이 옳았다고 끝까지 주장했다. 그는 패전 후에도 자신이 틀렸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법이론의 권위자가 독재의 부역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부역이 당사자에게는 '확신'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슈미트는 보여주었다.
박만호가 1992년 유서대필 사건에서 강기훈(1964~)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2015년 재심에서 무죄가 나온 뒤에도 "나는 재심 결과에 개인적으로 승복하지 않는다"고 말한 장면은 슈미트의 불복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확신범은 증거가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다.
1984~1986년, 서울형사지법 수석부장판사, '법원의 공안부장'
서울형사지법 수석부장판사 자리는 '법원의 공안부장', '출세 길의 노른자위'로 불렸다. 중요한 공안사건의 판결 결과를 사전에 수석부장판사에게 보고해야 하는 구조였다. 개개인이 독립된 사법기관인 법관의 고유권한에 수석부장판사가 개입하는 것이었다. 박만호는 1984년 8월 이 자리에 앉았다.
그가 재직한 1985년 한 해 동안 발부한 구속영장의 수는 기록적이었다. 1985년 6월 29일 경찰이 전국 9개 대학을 기습 수색할 때, 박만호는 당직 판사가 아닌 수석부장판사로서 비밀영장을 새벽에 발부했다. 신병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전 비밀영장을 대량 청구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1985년 9월 10일에는 전 민청련 의장 김근태(1947~2011)에 대한 비밀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김근태는 이때부터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이근안(1941~2026)에게 23일간 전기고문을 포함한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박만호는 『반헌법행위자열전』의 기록대로 "고문 기술자들이 편안하게 고문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2014년 재심에서 김근태 사건은 무죄가 선고됐다.
1985년 11월 21일,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 점거농성에 참여한 학생 191명 전원에 대해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만호는 영장 담당 판사들을 불러 모아 "검찰이 기소 단계에서 선별 처리한다고 하니 최대한 검찰 뜻을 들어주고 정말로 기각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이 설 때는 나에게 의견 조정을 구하라"고 말했다. 명백한 직권남용이었다. 191명 전원에게 영장이 발부됐다.
이 자리에서 안기부의 협조 압력을 일선 판사들에게 전달하는 역할도 했다. 야당 국회의원 발언을 수록한 책의 출판사 대표를 즉결심판에 넘겼을 때 담당 판사 조재연이 무죄를 선고하자, 안기부는 즉각 박만호에게 항의했고 법원은 "면목 없다"며 "향후 대책 수립 적극 협조를 다짐"했다. 안기부 보고서가 그 장면을 고스란히 기록했다.
1985년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 사형과 무기징역
박만호는 서울형사지법 수석부장판사 재직 시절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조작사건인 구미 유학생 간첩단사건의 1심 재판장을 맡아 양동화·김성만에게 사형, 황대권 등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전두환의 구체적 지시("각하 지시 사항")를 통한 수사개입이 문서로 확인된 유일한 간첩조작사건이었다.
2020년 2월 14일,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35년이 걸렸다. 재판부는 "법원과 재판에 대해 느꼈던 절망과 좌절이 이 판결로 작은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라며 사과했다. 박만호는 이 재심 결과에 대해 어떤 말도 남기지 않았다.
1992년 유서대필 사건, 항소심 판결문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베낀 판결
박만호 이력의 정점은 1992년 7월 24일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상고심 판결이다. 1991년 5월 분신으로 숨진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의 유서를 강기훈이 대신 썼다는 검찰의 조작에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했다. 주심은 박만호였다.
이 판결에는 여러 문제가 있었다. 유죄의 핵심근거인 필적감정을 담당한 국과수 직원 김형영은 당시 이미 다른 사건에서 뇌물을 받고 허위감정서를 작성한 혐의로 구속 중이었다. 검찰에 유리한 필적비교는 "육안으로도 뚜렷이 구별된다"면서 변호인 쪽에 유리한 필적은 "감정을 거치지 않아 판단할 수 없다"는 논리적 모순도 있었다. 보통 6개월에서 1년이 걸리는 대법원 판결이 3개월 만에 나왔다. 고시동기 변호사 김창국은 "항소심 판결을 그대로 베낀 대법원 판결"에 좌절했다고 했다. 실제로 2심 판결문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베껴 썼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언론은 이 판결에 대해 '진실의 마지막 보루'가 돼야 할 법원이 '스스로에게 내린 사형선고'라고 비판했다. 2015년 재심에서 강기훈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24년이 걸렸다. 박만호는 그 결과에 "개인적으로 승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997년 5·18특별법은 무효, 전두환을 끝까지 감쌌다
1997년 4월, 전두환(1931~2021)·노태우(1932~2021)에 대한 유죄를 확정한 '12·12 및 5·18 사건' 상고심 대법원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박만호는 "5·18특별법은 무효"라는 소수의견을 냈다. 나아가 군사반란 및 내란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면서 유일하게 반대의견을 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검찰의 불기소 입장을 마지막까지 지지한 것이다.
수석부장판사 시절 구미 유학생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강기훈 유죄를 확정하고, 5·18 처벌에 반대한 사람. 노동자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인정한 판결이 전무한 사람. 그런데 한편으로 박종철(1965~1987) 고문치사 은폐책임자들을 유죄로 파기환송하고, 경찰서 보호실 불법구금 관행에 쐐기를 박는 판결을 내린 사람. 이 모순들이 한 사람 안에 공존했다. 다만 그 모순의 무게가 균형을 이루지 않았다는 것이, 『반헌법행위자열전』이 그의 이름을 수록한 이유다.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카를 슈미트의 법이론은 지금도 법학교재에 실린다. 그러나 반드시 나치부역의 역사와 함께 실린다. 뛰어난 법률가가 독재에 복무할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가르치기 위해서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박만호의 "5·18특별법은 무효"라는 소수의견을 떠올렸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가 2024년 12월 3일 밤에 다시 돌아온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반드시 다른 옷을 입고 귀환한다.
강기훈이 재심 최후진술에서 한 말을 박만호에게 들려주고 싶다.
"진정한 용기는 잘못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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