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철도역이 생기기 훨씬 전, 조선의 길 위에는 역참이 있었다. 말이 쉬고, 공문서가 오가고,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던 행정 교통망이다.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은 오는 9월 27일(일)까지 4층 기획전시실Ⅱ에서‘안기역1485, 옛 안동으로 가는 플랫폼’ 전시를 개최한다. 전시는 조선시대 안동의 교통 거점이었던 안기역을 중심으로, 역참제도와 옛길, 그 길 위를 오갔던 사람들의 일상을 조명한다.
1485년 조선시대 국가 운영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의 완성과 함께 역참제도가 정비되었다. 이때 정비된 길과 역은 나라를 하나로 연결하는 중요한 기반이 됐다. 조선시대 안동을 중심으로 펼쳐진 안기도(安奇道)는 서울과 경북 북부지역을 잇는 주요 교통망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시대 안동을 중심으로 펼쳐진 안기도는 서울과 경북 북부 지역을 잇는 주요 교통망 가운데 하나였다. 안기역은 안기도의 중심 역으로 기능했다. 현재의 기차역과 성격은 다르지만, 조선 사회에서 안기역은 사람과 말, 공문서와 물자가 모이고 흩어지는 플랫폼이었다.
역참은 나라의 명령과 정보가 이동하는 길목이었다. 관리가 부임하고, 문서가 전달되고, 물자가 움직였다. 여행자와 사신, 관원도 역과 원을 거쳐 길을 이어갔다. 안기역을 살피는 일은 한 지역의 교통사를 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조선 안동의 행정, 일상, 문화가 어떤 길 위에서 움직였는지 확인하는 작업에 가깝다.
전시는 사라진 옛 역을 현재의 관람객 앞에 다시 세운다. 역터와 역로는 많은 곳에서 흔적을 잃었지만, 기록과 지명, 유적은 당시의 이동 경로를 붙잡고 있다. 유교문화박물관은 안기역을 매개로 조선 안동의 공간 질서를 설명한다.
조선시대 전국에는 40여 개소의 찰방역이 거점으로 운영됐다. 찰방역 아래에는 속역이 편제됐다. 안기역은 찰방역으로서 11개의 속역을 관할했다. 찰방은 역 업무를 총괄한 종6품 관직이며, 임기는 30개월이었다. 찰방은 역마와 인력, 문서 전달, 역 운영 전반을 살피는 자리였다. 길 위의 행정이 멈추지 않도록 관리하는 역할이었다. 안기역이 단순한 통과 지점이 아니라 안동 일대 교통망을 조직한 중심 역이었다는 점도 이 구조에서 확인된다.
'안기역지'에는 안기역을 거쳐 간 찰방들의 명단이 남아 있다. 퇴계 이황의 아들 이준, 의병장을 지낸 배용길, 서애 류성룡의 손자 류원지 등 안동 지역에서 이름 높은 인물들이 안기역 찰방으로 부임했다. 안기역은 관직 이력의 한 지점이면서 지역 인물사의 흔적을 품은 공간이기도 했다. 후대에는 단원 김홍도를 비롯해 화원과 의관 등 다양한 인물도 안기역에 부임했다. 화원이었던 김홍도의 이름이 안기역 주변 지명과 현재 공간에 남은 점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안동시내와 운안동 일대를 지나는 도로는 현재 ‘단원로’로 불린다. 옛 안기역이 있었던 일대에는 단원 김홍도 공원도 조성돼 있다.
전시는 안기역을 거쳐 간 사람들의 이름을 통해 지역의 기억이 어떻게 축적됐는지 보여준다. 찰방 명단은 행정 문서이지만, 안동의 학맥과 의병, 예술과 의술을 잇는 인물의 궤적이 남아 있다. 길은 사람을 이동시키고, 사람은 길에 이름을 남긴다. 안기역을 둘러싼 기록은 안동의 교통망이 지역 인물사와 분리되지 않았음을 말한다.
안동에는 창락역에 소속됐던 안교역, 옹천역, 선안역과 안기역에 소속됐던 운산역, 금소역, 송제역 등 6개소의 속역이 있었다. 현재 행정구역으로 보면 안교역은 풍산, 옹천역은 북후, 선안역은 도산, 운산역은 일직, 금소역은 임하, 송제역은 길안 일대와 연결된다. 옛 역과 역로는 시간이 지나며 사라진 곳이 많다. 흔적이 남은 곳은 유적지가 됐다. 흔적이 옅어진 자리에는 마을과 도로, 생활 공간이 들어섰다. 전시는 사라진 역터를 되짚는다. 역 주변의 문화유산을 살피며 옛길이 현재의 공간에 남긴 흔적을 보여준다.
일부 역터는 지금도 큰길이 지나는 교통 요지로 기능한다. 조선시대 길목이 현재의 도로망과 완전히 끊어진 것이 아니다. 삶의 공간 안에서 다른 모습으로 남은 셈이다. 여행자에게 숙박과 휴식을 제공했던 원의 흔적도 지명과 유적을 따라 확인할 수 있다. 안기역은 사라졌지만 기록은 남았다. 유교문화박물관은 '안기역지' 기록을 활용해 옛 안기역의 도면을 복원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관람객은 문헌 기록과 복원 그림을 나란히 보며 안기역의 규모와 구조를 짐작할 수 있다.
도면 복원은 사라진 건물을 상상으로 채우는 작업과 다르다. 기록에 남은 명칭, 공간 구성, 기능을 근거 삼아 역참의 구조를 되살리는 일이다. 관람객은 안기역이 어떤 시설을 갖췄고, 사람과 말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였는지 확인하게 된다. 전시는 기록과 현장을 함께 놓고 안동의 옛 교통 체계를 읽도록 구성됐다. 문서 속 이름으로 남은 역과 현재의 지명이 겹쳐질 때, 사라진 안기역은 박물관 안에서 다시 길을 얻는다.
안기역은 조선시대 안동과 다른 지역을 잇던 교통 거점이었다. 동시에 행정과 물류, 인물과 문화가 교차하던 장소였다. ‘플랫폼’이라는 표현은 현대의 역을 떠올리게 하지만, 안기역의 역할을 설명하는 말로도 어색하지 않다. 말이 대기하고, 문서가 전달되고, 사람이 쉬어가던 안기역은 조선 안동을 움직인 기반 시설이었다.
‘안기역1485, 옛 안동으로 가는 플랫폼’은 사라진 역 하나를 통해 조선시대 지역 사회의 작동 방식을 보여주는 전시다. 관람객은 옛 기록과 복원 도면, 역터와 지명을 따라가며 안동의 과거를 새로운 방식으로 마주하게 된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Copyright ⓒ 뉴스컬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