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훈 더봄] "여보, 바람 피우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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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훈 더봄] "여보, 바람 피우지 마"

여성경제신문 2026-06-07 13:00:00 신고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제미나이 나노바나나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제미나이 나노바나나

뚱뚱보 최감량 씨가 모 방송국의 목숨을 건 ‘다이어트 100일 작전’에 참가 신청서를 제출한 것은 다니던 버스 회사에서 체중 과다로 권고사직을 당한 지 대여섯 달 지난 뒤였다. 해마다 실시한 건강 진단에서 3년 연속 부적합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버스 운전기사인 감량 씨는 몸무게가 무려 쌀 한 가마니 반도 넘는 130kg이었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했던 옛날이야 쌀 한 가마니 무게인 80kg이 넘게 나가면 장군감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했으나, 요즘은 게으른 사람대접은 그나마 양반 대접이고, 자기 관리조차 제대로 못하는 등신 취급까지 당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수십 명의 승객을 태우고 곡예 운전을 하다시피 도심을 누벼야 하는 시내버스 기사로 어느 회사에서 그를 살려 두겠는가. 130kg을 넘긴 그의 몸으로는 순간순간 닥쳐오는 위급 상황을 순발력 있게 대처하기는커녕 급커브를 돌기 위해 핸들을 조작하려면 늘어진 뱃살에 운전대가 파묻혀 몸이 먼저 돌아가기 일쑤였다.

언제인가부터 몇몇 단골 승객들은 버스가 운전기사의 몸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운전석 쪽으로 전복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눈치였다. 눈치 주는 정도라면 목숨을 걸고라도 회사에 끝까지 붙어 있었을 텐데, 아 그놈의 승객들이 이 버스를 타다가는 출근길에 언제 저승길로 직행할지 모르겠다며 전화까지 한 것이 회사에서 쫓겨난 결정적 화근이었다. 

그렇다고 감량 씨라고 해서 할 말이 없지는 않았다. 버스 기사로 취직할 때만 해도 그는 대한민국 남자의 표준 체중을 조금 넘기기는 했지만, 아내의 눈을 현혹하여 결혼까지 골인할 만큼 탄탄한 ‘몸짱’에 ‘얼짱’이었었다.

이런 남편을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차지했던 감량 씨 아내는 신혼 초부터 행여 밀려난 경쟁자들이 남편을 다시 유혹해 오지 않을까 불안·초조·긴장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오죽했으면 몸짱 얼짱 남편 감량 씨가 출근할 때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까지 쪼르르 달려 나와 “바람피우지 마!” 하는 소리가 매일 매일의 인사말이 되었다.

결혼 후 두 딸을 낳고 그 식솔들을 먹여 살리려 새벽밥을 허겁지겁 쑤셔 넣고 출근하면 오전 내내 버스 안에서 발 한 번 제대로 뻗지 못하고 앉아 있어야 하는 시내버스 기사 노릇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점심은 배차 시간에 쫓겨 선 채로 냉수 들이켜듯 국에 만 밥을 마셔대다 보니 소화는 제대로 될 것이며, 운행 중에 목이 탄다고 냉수인들 마음껏 들이켤 수가 있을까. 시흥동을 출발하여 동대문을 돌아 다시 시흥동 종점으로 되돌아오려면 세 시간 넘게 걸리는 긴 노선이었으니 중간에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것이 제일 큰 고역이었다. 

무슨 놈의 나라가 이리도 집회가 많은지 도심에 큰 집회라도 있어 교통이 막혀 버리면 오줌보와 똥집이 터져나가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뱃속에 쌀 반 가마니 정도의 기름 덩어리를 넣고 다니게 된 까닭이 제때 배설하지 못한 똥과 오줌 때문이라고 감량 씨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디 그뿐이랴. 감량 씨는 대소변 처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운행 중에는 물도 적게 마시고 밥도 고양이 밥만큼만 먹을 수밖에 없었으니, 한밤중에 집에 돌아와서야 양푼 가득 폭식을 일삼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직업병 중에도 아주 고약한 직업병인데 회사에서 격려는커녕 쫓아내고 말았으니 억울하고도 억울한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더구나 대형집회로 스트레스가 머리꼭지를 돌게 하는 날이면 ‘치맥’에 생맥주까지 한밤중 배달해 먹기도 했다. 

게다가 기어이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시댁 어른들의 성화에 셋째 아이까지 임신한 아내는 살길이 막막하다며 그 몸으로 직장을 찾아 나섰으니 별수 없이 감량 씨는 두 딸을 돌보며 전업주부 신세마저 감내해야 했다.

운동하며 몸무게를 두 자릿수로 낮추겠다고 아내 앞에서 열두 번도 더 맹세하고 빌고 애원하고 다짐하고 각서까지 쓰곤 했지만 언제나 작심삼일이었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몸은 천근만근 요지부동이었다.

늘어진 뱃살이 어찌 그리도 방바닥만 좋아하는지 아내 출근 뒤 두 딸을 유아원 셔틀버스에 태워 주고는 설거지고 청소고 빨래고 다 집어던져 놓고 방바닥에 벌러덩 누워 아침마당인지 아침 운동장인지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눈도 떼지 못하고 붙박이가 되어 버리는 것이 일과가 되어 버렸다. 

지상파 3사는 물론 종편까지 아침 프로그램은 감량 씨를 중독되게 하는데 안성맞춤이었다. 귀에 못 박히도록 아내가 운동, 운동 성화를 해댔지만 130kg의 바윗덩이 같은 몸뚱이를 끌고 나가 운동을 한다는 것은 죽기보다도 싫었다.

실직의 아픔보다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버스 속으로 출근하지 않고 아침 TV를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기쁨이 아직은 몇 배 더 달콤했다. 아내가 밥벌이 나가며 쏟아낸 불만 중에 TV 아침방송을 못 보는 것이 당당하게 끼어 있는 것이 십분 이해되고도 남았다. 

그런데 세상일이 모두 나쁘기만 하겠는가. 하나 나쁘면 하나는 좋은 것이 세상의 공평한 이치였다. 감량 씨 집안이라고 아흔아홉 가지 나쁜 일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 와중에도 한 가지 좋은 일이 생겼으니 감량 씨의 몸무게가 세 자릿수를 돌파하여 마침내 구들장 붙박이 신세로 전락하자 오랜 세월 감량 씨를 괴롭혔던 아내의 의부증이 눈 녹듯 사라졌다.

아내는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남편이 그 바위만 한 몸뚱이를 해서 어디를 싸돌아다니며 허튼짓하겠느냐며 확인 전화 한 통 걸지 않는 것이었다. 회사 사장님이 몸무게를 두 자릿수로 만들어 오면 두 말 않고 다시 채용하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제발 운동 좀 해라, 운동 좀 해라 성화를 해 대는 아내의 마음 한구석에 강 같고 바다 같은 평화가 깃들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구들장 붙박이 노릇을 하던 이 집 가장 감량 씨가 100일간의 목숨을 건 다이어트를 위해 가출을 결심하게 된 것은 여느 날처럼 두 딸을 유아원 셔틀버스에 태워 주려고 문을 나서려던 찰나 “아빠는 나오지 마. 애들이 놀려. 나더러 애들이 돼지 아빠 딸이래. 창피하단 말이야! 문밖에 나오지 마. 나 그럼 유아원 안 가”라는 울부짖음을 듣고 난 뒤였다.

머쓱해서 들어와 다시 늘어진 뱃살을 깔고 TV에 눈을 돌리자 매일 보아 왔던 ‘다이어트 100일 작전’에 응모할 시청자를 찾는다는 방송사 광고가 눈에 확 띄었다. 세 자릿수 몸무게 때문에 회사에서 쫓겨난 사정과, 이젠 딸들마저 돼지 아빠 때문에 유아원 등원을 거부하고 있다고 애교 섞인 과장까지 담은 사연을 적어 보냈더니 방송국에서 선발 통지문을 보내온 것이었다. 

100일 프로젝트는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일단 100일 동안은 단 하루의 외출도 없는 합숙을 해야 하며, 주어진 식단 외에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곳, 합숙소가 아니라 지옥이었다. 유격대 훈련보다도 ‘빡센’ 합숙소의 하루하루 일정을 끝내고 잠자리에 누우면 허기증에 천정에서 헛것이 보였다. 치맥에 생맥주, 양푼 비빔밥, 야식으로 주문해 먹던 돼지 족발들이 어지럽게 춤을 추었다.

거기다가 목 부팅, 척추 부팅, 뱃살 부팅에 하체 부팅까지 부팅도 가지가지여서 사람의 몸을 무슨 삶아 놓은 통돼지 다루듯 트레이너들이 엎었다 젖혔다 제멋대로 굴렸다. 총각 시절 부킹의 왕자가 이젠 부팅의 노예로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했지만 두 딸과 아내에게 기쁨을 안기고자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게다가 저염 식단까지 견디려니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지만 열두 명의 경쟁자 중 기어이 1등을 하여 거액의 건강장려금을 거머쥐는 것은 물론 두 딸을 셔틀버스 앞까지 당당하게 배웅을 해 주고 싶은 마음에 견뎌내었다.

건강장려금을 받고 재취업을 하면 아내가 무엇보다 기뻐할 것이다. 건강장려금은 지난 실직 기간의 수입을 만회해 줄 것이고, 재취업한 아내가 비정규직 일자리를 그만두고 편안히 출산하게 할 수 있기에 이를 악물고 이겨낸 끝에 감량 씨는 무려 50㎏ 감량에 성공하여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방송 카메라 앞에 섰다. 100일 동안 매일 쇠고기 한 근 정도의 몸무게를 줄이는 데 성공함으로써 당당히 1등을 거머쥐었다.  

돌아온 몸짱 최감량 씨는 전국에 방영되는 ‘다이어트 100일 작전’ TV 프로그램에서 1등 상품으로 건강장려금을 받고 눈물 콧물이 뒤범벅된 채 소감을 말하며 방청객들 속에서 가족들을 찾았다. 현란한 조명 속에 귀에 못 박히고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문구의 피켓이 눈에 띄었다. 

‘여보, 바람피우지 마!’

100일 만에 얼굴을 보는 아내도 두 딸과 함께 그 피켓 아래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여성경제신문 이진훈 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전 영동고 교사
mokleeyd@nate.com


미니픽션=아주 짧은 분량 속에 완결된 서사를 담아낸 초소형 소설을 말한다. '한 뼘 소설', '손바닥 소설(掌篇小說)', '플래시 픽션(Flash Fiction)' 등으로도 불리며 주로 설명은 생략하고 상징이나 묘사를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끝맺는다. 짧은 틀 안에 소설적 재미와 철학을 압축해 놓은 '문학의 에스프레소'라고 할 수 있다. 

이진훈 작가·교육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EBS와 고등학교에서 오랜 시간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며 후학을 양성했다. 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으로 <베이비 부머의 반타작 인생> 을 펴냈으며, 구상선생기념사업회 이사, (사)K문화독립군 부회장 등 다양한 문화 단체에서 중책을 맡고 있다. 한양도성의 역사와 철학을 담은 저술 활동을 전개하면서 <한양도성 文史哲  순성놀이> 를 발간했고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전례위원 경험을 바탕으로 <명절 차례와 기제사> 를 발간하는 등 전통문화 계승에도 힘쓰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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