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인물열전] (23)'최초 흑인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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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물열전] (23)'최초 흑인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

연합뉴스 2026-06-06 08: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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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 해결 헌신한 '미스터 유엔'…평직원서 수장 돼 노벨평화상까지

국제문제 적극 개입…인권·개발·평화 '통합 의제' 제시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나확진 특파원 = "오늘 이 자리에서 코피가 남긴 유산과 그가 살핀 수백만 명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가 자주 강조했던 말을 떠올립니다. '발전 없는 평화는 없고. 평화 없는 발전도 없으며, 인권 없는 평화와 발전 또한 없다.' 그는 이것이 유엔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믿었습니다."

2018년 9월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이 별세했을 때, 그의 재임 중 유엔인권최고대표로 함께 일한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은 유엔 총회 추모연설에서 이처럼 그를 기렸다.

가나 출신인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은 반평생이 넘는 44년간 유엔에 몸담아 '미스터 유엔'으로 불렸다. 지역분쟁 해결과 세계평화에 헌신하면서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1938년 영국 식민지였던 가나 쿠마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인 '코피'는 '금요일에 태어난 소년'이라는 뜻이다.

어렸을 때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고 그의 아버지는 유력한 부족장을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19세이던 1957년 가나 독립을 경험한 뒤 미국으로 유학해 미네소타주 매캘러스터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60년대 초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도 받았다.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1962년 세계보건기구(WHO)의 예산·행정담당관으로 유엔에 첫발을 들였다. 이후 유엔 내 아프리카 경제위원회(ECA), 유엔난민기구(UNHCR), 제네바 유엔사무소 등에서 풍부한 실무경험을 쌓았다.

1990년대 탈냉전 이후 확대된 여러 국제분쟁 중재에 참여하기도 했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때 유엔사무총장 특사로 나서 이라크에 억류된 유엔 요원과 서방 인질 900명의 석방을 끌어냈다.

1993년 평화유지활동(PKO) 사무차장으로 임명됐으며 1994년 르완다 집단학살, 1995년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 대량학살 등 지역분쟁 해결에 노력했다. 하지만 르완다와 보스니아와 관련해선 당시 유엔의 구조적 한계 속에서 대응 실패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아난은 1997년 이집트 출신인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사무총장에 이어 제7대 유엔사무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외부 정치인이 아닌 유엔 내부 직원으로서 최고위직에 오른 첫 사례가 됐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두 번째이자 첫 흑인 유엔사무총장이었다.

아난은 유엔 수장이 된 이후 조직개혁에 앞장섰다. 방대한 유엔 사무국 조직을 통폐합하고, 유엔본부 직원도 대폭 감축하며 인력 효율화를 꾀했다.

에이즈 확산 방지 등에 노력하면서 2015년까지 빈곤퇴치, 질병예방 등 구체적인 목표를 담은 새천년개발목표를 제시했다. 특히 아프리카에 대한 선진국의 지원을 촉구했다.

2001년 코피 아난 당시 유엔사무총장과 유엔을 대표한 한승수 당시 유엔총회의장이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하는 모습 [국가기록원 제공.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2001년 코피 아난 당시 유엔사무총장과 유엔을 대표한 한승수 당시 유엔총회의장이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하는 모습 [국가기록원 제공.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2001년에는 세계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00주년을 맞은 노벨평화상을 유엔과 공동 수상했다.

역대 유엔사무총장 가운데 재직 중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은 그가 유일하다.

노벨위원회는 당시 "아난 총장은 평화와 안전을 위한 유엔의 전통적인 책임을 강조하면서 인권에 대한 유엔의 의무도 강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에이즈, 국제 테러리즘과 같은 새로운 도전에 대처해 왔으며, 유엔이 가진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아난은 앞서 1998년 제4회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돼 방한,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면담하기도 했다.

1998년 10월 23일 청와대를 방문해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대화하는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1998년 10월 23일 청와대를 방문해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대화하는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2002년 유엔사무총장 재선에 성공한 아난은 2006년 12월 마침내 유엔사무총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아난 전 총장은 당초 '관리형 총장'으로서 국제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취임하자마자 유엔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동티모르 분리독립 분쟁 등 국제문제에 적극 뛰어들었다.

이에 따라 그의 재임 기간 유엔의 역할이 확대되고 위상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친미 성향'으로 알려졌지만 2000년대 초반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강하게 반대하면서 미국 정부와 갈등을 빚은 일화가 유명하다.

2003년 3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되자 "유엔과 국제 사회에 모두 슬픈 날"이라며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의 민간인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듬해인 2004년에는 영국 BBC 방송과 인터뷰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이 없는 이라크 침공이 국제법에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이런 그를 가리켜 안토니우 구테흐스 현 유엔사무총장은 "코피 아난이 유엔이었고, 유엔이 곧 코피 아난이었다"고 그의 장례식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아난 전 총장은 퇴임 이후에도 분쟁 해결과 평화 임무에 헌신했다. 2012년 2월에는 유엔과 아랍연맹에 의해 시리아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공동 특사로 임명돼 5개월 동안 활동했다.

또 2007년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제안해 설립한 세계 원로정치인 모임 '엘더스'(The Elders)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가 모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아난 전 사무총장이 국제무대에서 실질적인 결정권을 가진 미국 등 강대국을 설득하지 못하면서 구체적 성과가 크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국제인권단체인 '위협받는 사람들의 모임'은 아난이 르완다 집단학살과 보스니아의 대량학살 희생자들에 대한 지원 제의를 거부했다며, 아난이 노벨평화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아난의 아들 코조가 과거 탈세 등 범죄 혐의에 휘말린 점도 그의 도덕성에 타격을 줬다.

하지만 다자주의를 통해 국제 문제를 해결하려 한 아난의 노력은 오늘날 유엔의 근간으로 남아있다. 그는 인권을 유엔 의제의 중심으로 끌어올렸고 개발과 평화, 안보 문제를 별개가 아닌 통합 의제로 정착시켰다.

2018년 9월 가나서 열린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장례식 2018년 9월 가나서 열린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장례식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ra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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