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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신문경 기자] ‘블루 자이언트(Blue Giant)’. 우리말로는 ‘청색 거성’을 뜻한다. 온도가 뜨거워 붉은 빛을 넘어 푸르게 빛나는 별이다. 재즈에서는 압도적인 연주를 펼치는 재즈 플레이어를 비유하는 표현으로도 쓰인다. 이시즈카 신이치의 유명 재즈 만화 ‘블루 자이언트’ 역시 그 의미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푸른색은 흔히 차갑고 고요한 이미지로 여겨진다. 그러나 가장 뜨거운 불꽃 역시 푸른색이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조용한 골목에 자리한 독립 서점 ‘쏘블루(So Blue)’는 바로 그 역설에서 출발한 공간이다. 10평 남짓한 작은 공간 안에는 파랑색 커버의 책과 파랑색과 연관된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서가를 채우고 있다. 창가에는 연희동 거리를 바라볼 수 있는 책상이 놓여 있고, 입구 바로 옆 벽면에는 방문객들이 각자 떠올린 ‘파랑’에 관한 메모가 빼곡하다. 카운터 위에는 푸른 라벨의 위스키병이 줄지어 서 있다. 채도와 명도가 다른 푸른빛을 겹겹이 쌓아 올린 공간이다.
쏘블루를 이루는 것은 색만이 아니다. 서점 주인인 양민우 대표가 오랫동안 품어온 취향과 가치관이 스며 있다. 그가 생각하는 ‘파랑’의 의미 역시 삶의 태도에 가깝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요시노 겐자부로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꼽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원작으로도 알려져 있다. 열다섯 소년 코페르가 외삼촌이 남긴 노트를 통해 삶의 태도와 인간다움을 배워가는 이야기다. 양 대표는 주변 사람들에게만 100권 넘게 선물했을 정도로 이 책을 아낀다고 전했다.
“제게 ‘푸른 불꽃’ 같은 삶을 꿈꾸게 한 책이에요. 사람들은 파랑색을 우울하고 차가운 색으로 생각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불꽃 중 가장 뜨거운 색은 파랑색이거든요. 열정적으로, 자기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태도가 제가 생각하는 파랑색의 의미죠.”
양 대표는 인터뷰 내내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책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일견 ‘문청(文靑)’처럼 보였다. 조용하고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자신의 믿는 삶의 방향에 관해 이야기할 때만큼은 단단한 확신이 느껴졌다. 그의 안에는 뜨거운 온도로 타오르는 푸른 열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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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직장을 관두고 자영업을 시작하는 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예전에는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일했다. 직장을 다니는 것과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중 ‘안정’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고용이나 임금의 안정도 중요하지만, 결국 내가 행복한 삶이 더 안정적인 삶 아닐까 싶었다. 솔직한 선택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은 생각에만 머무른다. 나는 고민하는 시간을 오래 가지고 싶지 않았다. 한 번 직접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쏘블루를 운영하면서 정말 행복하다. 이 행복을 경험하지 못한 채 살아갈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여러 브랜드와 협업도 하고, 모임도 활발히 열고 있다. 인연은 어떻게 이어졌나?
△결이 맞는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방향이 만족도도 높고 결과물의 완성도 또한 좋다.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된 협업도 많다. 어느 늦은 시간 서점에 손님 한 분이 들어왔었다. 그분이 독립 출판한 책의 표지도 파랑색이라고 했다. 마침, 한 권 가지고 있어 바로 책을 보여주셨고, 무척 마음에 들어 입고했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바람이 부는’이라는 책인데, 일본 잡지에도 소개했다. 사진을 파랗게 인화하는 기법인 ‘사이아노타입(Cyanotype)’ 워크숍도 우연에서 출발했다. 서점을 방문한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열게 된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 중, 파랑과 연결할 수 있는 콘텐츠가 있다면 함께 무언가를 기획하게 된다.
-작가를 우연히 만나다니. 연희동이라서 가능했던 부분도 있겠다. 대부분은 중심 거리를 선호하는데, 연희동에서도 골목 안쪽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지금은 이사 준비를 하고 있지만, 연희동 증가로에서 15년 넘게 살았다. 다른 동네에 비해 조용하다. 그 템포가 나와 잘 맞았다. 물론 지금은 예전보다 오가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쏘블루가 자리한 곳은 여전히 차분한 분위기가 남아 있다. 메인 상권이 아니라서 오히려 내 결대로 공간을 운영할 수 있다. 사실 지금보다 더 외진 곳을 고민했었다. 연희동의 궁동근린공원 근처 고지대다. 남산 타워와 63빌딩까지 보이며 연희동이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예약제로 운영하는 조용한 서점으로 기획했다. 알아보니 그 근처에 상가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없더라. 그래서 원래 애정이 있던 증가로에 문을 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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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블루’는 서점이면서 동시에 재즈 바의 역할도 한다. 처음부터 책과 음악의 결합을 구상했나.
△그렇다. 기획 단계부터 책과 음료, 재즈를 함께 두고 싶었다. 간판에도 ‘Book, Drinks, Jazz(책, 음료, 재즈)’라고 적었다. 나 역시 오래전부터 서점을 책을 파는 공간 이상으로 경험해 왔다. 서점에서는 재즈 공연도 할 수 있고, 음료를 즐길 수도 있다. 북토크나 워크숍도 가능하다. 책이 하나의 매개가 되어 다양한 문화를 연결하는 창구 역할을 하는 셈이다. 파랑색을 수집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재즈를 만나게 된다. ‘블루’라는 단어가 들어간 곡이나 아티스트 이름, 레이블도 많고, 정서적으로도 ‘블루(Blues)’의 감각이 연결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재즈다. 만약 파랑을 하나의 음악 장르로 표현한다면, 재즈에 가장 가깝다고 느꼈다. 지금도 재즈를 중심으로, 파랑과 연결된 카테고리를 계속 확장해 가고 있다.
-재즈의 즉흥성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유연함을 지향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스스로 완벽주의 성향도 있다고 했다. 두 감각이 공존하는 건가.
△완벽주의를 내려놓아야만 한다는 것을 느낀다. 예전에는 그 성향 때문에 템포가 느렸다. 그런데 이제는 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즉흥성이 중요하다고 해서 완벽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은 즉흥성과 완벽주의가 51대 49 정도의 비율로 섞여 있는 상태 같다.(웃음)
자영업은 직장 생활과 달리 결과가 눈앞에 바로 드러나고, 내가 만든 것이라는 감각도 분명하다. 다만 더 빠르고 적극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회사에는 이미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지금은 시스템 자체를 내가 만들어야 한다. 지나간 것을 후회하지 않고 내 안에서 생산해 바깥으로 내보내야 하는 것이다. 재즈 연주처럼 한번 세상 밖으로 나온 결과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그 점이 어렵다. 계속 크고 작은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다.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면서도 퀄리티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즉흥성과 완벽주의를 동시에 붙들게 만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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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핵심 키워드가 ‘파랑’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뜨거운 파랑색’이다. 우주에서 고온으로 완전히 연소하는 별은 파랗게 빛난다. 가스레인지 불꽃 역시 가장 뜨거운 부분이 파랑색 아닌가.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쏘블루에 와서 파랑색을 느끼고, 다시 삶으로 돌아갔을 때 잠깐이라도 떠올리면 좋겠다.
-책 큐레이션의 기준도 궁금하다. 표지가 파랑색이 아닌 것들도 보이는데.
△기준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표지가 파랑색 계열인 책. 두 번째는 내용이나 주제에 파랑과 관련한 키워드가 있는 책. 마지막은 직접적으로 파랑과 관련이 없더라도, 내가 추구하는 파랑색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책이다. 예를 들어 열정적으로 삶을 충만하게 살아가는 이야기 같은 것들이다. 물론 빨강이나 검정 등 너무 강렬한 색의 표지는 어느 정도 걸러내기도 한다.(웃음) 재즈 관련 도서는 파랑색 커버가 아니어도 들여놓는다. 재즈 자체가 파랑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쏘블루에서 모임이나 클래스를 열 때도 비슷하다. 자신의 분야에서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면 비유적으로 ‘고온의 푸른빛’을 띠고 있다고 생각해서 모시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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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역시 파랑색 라벨 위주로 큐레이션 했나.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위스키 업계에서는 ‘블루 라벨’이 어느 정도 퀄리티를 갖췄다는 상징처럼 쓰이기도 한다. 숙성 연수가 높거나 고급 블렌디드 위스키에 많이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조니 워커 블루 라벨’이 그렇다. 서점에 들인 술은 내가 좋아하는 술 위주다. 재즈 감상회나 콘서트에서 곁들임으로 제공한다. 낮에 책과 함께 한 잔 즐기러 오는 손님도 있다.
-술을 좋아하는 편인가.
△‘취권’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웃음) 포션처럼 한 잔씩 마신다. 정말 힘든 날 한 잔 마시면 ‘리프레시’되는 느낌이 있다. 감사하게도 손님들이 많이 찾아주신다. 정신없이 바쁠 때도 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는 공간에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사실 자체가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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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색과 재즈를 오래 좋아하기 위해 일부러 남겨두는 거리감 같은 것도 있나.
△너무 이론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래 좋아하려면 결국 직관적인 호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파랑색의 역사나 상징체계를 먼저 공부하기보다는, 그냥 ‘어떤 파랑색이 좋은가’를 먼저 느끼는 식이다. 재즈도 마찬가지다. 음악사나 사조를 공부하기 전에 그냥 듣기 좋은 연주를 먼저 찾는다. 손님들에게도 너무 어렵거나 학문적인 방식보다는,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즐기는 경험을 전하고 싶다. 책 큐레이션도 비슷하게 운영한다.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소개하기보다는 표지가 아름답거나, 내용이 아름다우면 선택한다.
-지금도 재즈 음악이 흐르고 있다. 플레이리스트를 구성할 때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면.
△그날의 공기와 기분을 먼저 생각한다. 같은 곡도 날씨나 컨디션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들린다. 손님의 연령대나 옷차림을 보고 다음 곡을 바꾸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더 마음에 드는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어서 신경을 쓴다. 곡 사이의 연결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재즈 감상회를 할 때도 곡 제목이나 앨범의 의미를 이어서 하나의 흐름처럼 구성한다. 제롬 컨(Jerome Kern)작곡, 조니 머서(Johnny Mercer) 작사의 ‘I’m Old Fashioned‘라는 곡 다음에는 콜 포터(Cole Porter)가 작곡한 ’Everytime We Say Goodbye‘라는 곡을 묶는 식이다. ’I‘m Old Fashioned’가 ‘나는 사랑에 대해서 촌스러운 사람이다’라는 내용이라면, ‘Ev’ry Time We Say Goodbye‘는 ’우리는 매 순간 이렇게 이별한다‘라는 내용이다. 이렇게 의미를 묶어 스토리텔링 한다. 때로는 악기별로 묶거나 연주자에 따라 선정하기도 한다.
-특별히 좋아하는 연주자나 앨범이 있나.
△재즈 기타리스트인 그랜드 그린(Grant Green)의 연주를 좋아한다. 기타인데도 색소폰처럼 둥글고 부드러운 울림이 느껴진다. 그도 연주할 때 색소폰의 소리를 듣고 반영한다고 했다. 특히 1965년 발매된 ’Idle Moments‘라는 음반을 좋아한다. 제목 그대로 나른하고 한가한 순간을 표현한 앨범인데, 출근하자마자 첫 곡으로 틀어놓는 날이 많다. 오늘은 쳇 베이커(Chet Baker)의 앨범 ’Albert‘s House’를 재생해두었다. 커버에 파랑색이 들어가 있다. 사실 평단의 혹평을 받은 앨범이다. 쳇 베이커가 폭력 사건 이후 치아를 잃으면서 예전 같은 연주를 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 먹먹하고 불완전한 울림이 좋아서 자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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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음악과 책을 하나 페어링해 본다면.
△마쓰이에 마사시의 ‘거품’은 시골 재즈 카페를 배경으로 한 청춘 소설이다. 책 안에 재즈와 연주자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재즈 색소포니스트 스탠 게츠(Stan Getz)와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Bill Evans)의 곡 ‘Grandfather’s Waltz‘가 소설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책의 내용이 쏘블루의 분위기와도 닮아 있어서 출판사와 협업도 진행했다. 플레이리스트 NFC 키링을 제작하고, ’거품‘을 주제로 한 재즈 콘서트도 기획했다.
-요즘 사람들의 책 소비 패턴은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우선 직관적으로 모양새가 매력적인 책들이 많이 선택받는다. 패브릭 하드 커버에 사진이 들어가 있는 책이 많이 판매된다. ’예쁜 책‘을 소비한다는 점에서 나도 그중 하나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서점이 이제는 구경만 해도 되는 공간처럼 여겨지는 흐름도 있다. 지금의 도서 문화가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상생을 위해 좋은 방안을 찾고 싶다는 뜻이다. 쏘블루에서는 사람들을 많이 모으기 위해 마케팅 활동도 한다. 이 공간에서 책을 구매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고 싶다. 결국 마음을 움직이는 요소가 필요하다.
-앞으로 쏘블루가 어떤 공간으로 남기를 바라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공간이자 브랜드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결국 스스로 행복해지고 싶어 시작한 일이지만,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을 때 잠시나마 여기에서 느꼈던 감각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 경험이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언젠가는 나처럼 자신만의 공간이나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실무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 책을 큐레이션 하는 방법, 공간을 브랜딩하는 방법 같은 것들 말이다. 무언가를 하고 싶지만 아직 결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라는 작은 자극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고되고 쉽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전하고 싶다.
■쏘블루
고즈넉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골목에 자리 잡은 독립 서점 ’파랑‘을 주제로 책을 큐레이션하고, 재즈와 위스키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북토크와 사진 워크숍, 재즈 공연까지 열리며 책을 매개로 다양한 문화를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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