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는 12·3 비상계엄 내란으로 인해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가 떨어진 상태에서 출범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관세전쟁이 한창인 와중에 임기를 시작해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마주해야 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열흘여 만에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해 '정상 외교' 복원을 알렸으며, 지난 1년간 14개국을 방문하고 50개국 이상과 정상회담을 실시하는 등 숨 가쁜 외교 일정을 소화했다.
대미 관계에 있어서는 역대 정부 중 최단기간 한미 정상 상호 방문이 이뤄졌고, 미국의 관세 압박을 3500억 달러 대미투자로 방어하는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핵추진잠수함 도입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라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시진핑 중국 주석도 11년 만에 국빈 방한했다. 지난 정부에서 악화한 일본과의 관계도 셔틀외교를 복원, 7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처럼 취임 1년 만에 적지 않은 외교 성과를 거뒀지만 북한의 대남 적대화 기조로 대북 관계 개선에는 결과물을 얻지 못했다.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서 '한국의 귀환' 알려
14개국 방문·50개국 이상 정상회담…경주APEC 성공 개최
이재명 대통령의 첫 해는 비상계엄으로 흔들린 국정을 정상화하는 데서 출발했다. 국제사회 신뢰 회복은 곧 외교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되었고, 대통령은 취임 열흘 만에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해 "민주 한국의 귀환"을 알리며 멈춰 섰던 정상외교를 조기에 복원했다.
지난 1년간 대통령은 캐나다, 일본, 미국, 말레이시아,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남아프리카공화국, 튀르키예, 중국,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 베트남 등 주요국을 방문했다. 50개국 이상과 정상회담을 소화하며 외교 무대를 적극적으로 누볐다.
9월 뉴욕 UN 총회에서는 기조연설을 통해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강조했고, 폴란드·이탈리아·우즈베키스탄 등과 연쇄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이어 말레이시아 아세안 정상회의, 경주 APEC 정상회의, 남아공 G20 정상회의까지 다자외교 일정을 이어가며 한국 외교의 존재감을 확장했다.
지난해 10월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는 이재명 정부 외교의 상징적 성과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경주를 방문해 각각 한미·한중 정상회담을 진행했고, 부산에서는 미중 정상회담까지 열렸다. 한국이 미중 양국 정상의 회담 무대를 제공했다는 점은 외교적 위상 강화의 중요한 장면이었다.
'마스가'로 관세협상 타결…핵잠 도입 및 전작권 전환 한미 공감대
이재명 정부의 최대 현안은 미국의 관세 압박을 풀어내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전 세계를 상대로 대규모 관세를 부과하고 투자 확대를 요구하면서, 한국은 산업 경쟁력과 안보를 동시에 지켜내야 하는 난제를 안게 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출범 후 역대 최단 기간인 147일 만에 한미 정상 간 상호 방문을 성사시켰다. 지난해 8월 워싱턴DC 정상회담에 이어 10월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 다시 만난 양국 정상은 대미 투자 3,500억 달러라는 조건으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조정하기로 합의했다. 농축산물 분야 추가 개방을 제외한 점은 국내 산업계에 안도감을 주었고, 경쟁국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합격점' 평가를 받았다.
특히 1,500억 달러 규모의 조선업 협력은 미국 내 쇠퇴한 조선업을 부흥시키겠다는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구호와 맞물려 상징성을 키웠다. 한국은 미국 조선업 재건을 돕는 대신 관세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
관세 협상 과정에서 한미는 핵추진잠수함 도입과 전작권 환수 문제에서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핵잠 운용을 위해 필요한 농축·재처리 권한을 미국으로부터 일부 확보한 것은 의미 있는 성과다. 이는 지난해 10월 29일 경주 한미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조인트 팩트시트(JFS)'에 명시됐다.
한미 범정부 대표단은 지난 2일 팩트시트 이행을 위한 회의를 열고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건조 방안을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그 결과 "핵잠(핵추진잠수함)을 한국에서 건조한다는 것에는 큰 변화가 없다"라고 청와대가 5일 밝혔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여러 분야별 대표들이 와서 농축 재처리 문제, 핵잠 문제 논의가 있었고, 엄브렐러(핵우산) 협의도 있었다"라며 "앞으로 논의를 가속화해서 진전시켜 보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전작권 전화에 대해선 정부는 올해 가을 한미안보협의회의(SCM) 전에 전환 로드맵을 마련하고, 임기 내 전작권을 넘겨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 내 핵 비확산 기조가 여전히 강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안보 합의를 최대한 진전시키겠다는 방침이다.
한중 관계 복원…한일 셔틀외교 재개
지난 정권에서 얼어붙었던 한중 관계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빠른 속도로 복원됐다. 11년 만의 시진핑 주석 국빈 방한과 9년 만에 이뤄진 한국 대통령의 국빈 방중은 양국 관계 정상화의 상징적 장면이었다.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정상 간 소통을 재개하고 외교·경제 채널을 복원하는 데 집중했으며, 경색됐던 관계는 점차 안정세를 찾아갔다.
특히 서해 잠정조치수역(PMZ)에 설치됐던 중국 구조물 관리시설을 수역 밖으로 이동시키는 성과는 양국 간 신뢰 회복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중국과의 협력 채널 확대는 경제·공급망·문화 교류 복원으로 이어졌고, 중국의 한한령 완화 분위기와 인적 교류 회복은 관계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한일 관계 역시 변화의 흐름을 탔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퇴임과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취임 이후에도 양국은 갈등보다 협력에 무게를 두며 안보·경제 공조를 이어갔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는 양국 정상의 고향을 상호 방문하는 등 7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셔틀외교'를 복원했다.
과거사 문제를 앞세우기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 외교 압박, 중동 정세 악화로 인한 에너지 협력 강화 필요성 등 양국의 공동 이익이 걸린 사안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정세가 펼쳐진 것도 관계 개선의 중요한 배경이었다.
한중·한일 관계 복원은 이재명 정부 외교의 중요한 성과로 꼽힌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 중동전쟁 대응 등 불확실성이 큰 외교 환경 속에서 주변국과의 관계 안정은 한국 외교의 전략적 공간을 넓히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과제도 남아 있다. 중국과의 관계는 공급망·안보 이슈에서 언제든 긴장이 재발할 수 있고, 한일 관계 역시 과거사 문제와 국내 정치 변수에 따라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선제적 대북 관계개선 노력…北, 적대적 2국가론 유지
윤석열 정부의 강경 일변도 대북정책과 '평양 무인기 사건' 이후 남북관계는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았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대북정책 기조를 전환했지만, 여전히 풀기 어려운 퍼즐로 남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출범 직후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고 광복절 기념사에서 △북한 체제 존중 △흡수통일 불추구 △적대행위 불추진이라는 '대북정책 3원칙'을 공식화했다. 이는 남북관계의 긴장을 완화하고 대화의 문을 열기 위한 신호였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단기간 해결이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하며 △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END 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이는 현실적으로 이행 가능한 조치부터 시작해 신뢰를 쌓겠다는 접근이다. 윤석열 정부 시절 발생한 '평양 무인기 침투' 사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유감'을 표명하며 대화 재개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며 헌법에 영토 조항을 신설했다. 지난 3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공인하고 무자비하게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위협했다. 이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한국 정부의 유화적 접근을 사실상 거부한 셈이다.
그럼에도 최근 북한 여자축구팀의 방남 사례는 국제사회 다자 틀 속에서 비정치적 교류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스포츠·문화 분야에서 작은 접촉이 이어진다면 남북관계 개선의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이는 정치적 대화가 막힌 상황에서 '우회적 교류'가 돌파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관세·안보 세부 논의 교착…중동위기, 외교력 시험대
이재명 정부 출범 1년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성과와 과제가 교차한 시기였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 중동전쟁 대응, 북핵 문제 관리 등 굵직한 현안 속에서 '실용외교'라는 기조가 시험대에 올랐다. 그러나 대외적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실용외교의 진정한 시험은 이제부터라는 분석이 나온다.
먼저 한미 간 관세 협상은 여전히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조선·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전략적 투자 프로젝트 추진 방향을 논의하고 있지만, 대미 투자금 운용 방식에 대한 이견이 남아 있다. 특히 온라인 플랫폼법과 쿠팡 사안이 협상에 변수를 던지며, 안보 협상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11월 발표된 팩트시트 이후 국가안보실은 핵잠·원자력 등 분야별 태스크포스를 꾸려 미국과 협의에 나섰지만, 킥오프 회의는 반년이 지난 6월에야 열릴 예정이다.
미국은 대미 투자 이행 속도에 불만을 드러내며 협상단 구성을 지연했고, 쿠팡 사안을 안보 분야 합의와 연계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안보 협상이 대부분 마무리되더라도 인도·태평양 전략의 틀 속에서 미국의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확대' 압박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촉발한 이란 전쟁 같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어, 한미 동맹 관리에는 섬세한 접근이 요구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전쟁 이후 동맹 관계 재설정을 시사한 점도 한국 외교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중동 위기는 정부 외교력의 또 다른 시험대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한국 선박들이 발이 묶였고, 지난 4일에는 HMM 나무호가 공격받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정부는 군 수송기와 전세기를 투입해 교민 대피를 지원하고, 이란·미국 등과 연쇄 협의를 벌이며 선박 안전 확보와 통항 재개에 총력을 기울였다.
나무호 피격 사건 조사 결과, 공격에 사용된 무기가 이란산 누르 계열 대함미사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주한이란대사를 초치해 항의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으며, 호르무즈 해협 내 한국 선박과 이란 체류 국민의 안전을 고려해 대응 수위를 조율하고 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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