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날의 역설…경쟁·불안에 갇힌 청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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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봄날의 역설…경쟁·불안에 갇힌 청춘들

투데이신문 2026-06-05 15:04:1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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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임규리 인턴기자】태양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달짝지근한 꽃내음이 온 거리에 번지는 계절, 봄. 봄을 뜻하는 영어 단어 ‘스프링(Spring)’은 ‘새싹이 솟아오르는 계절’이라는 어원을 지닌다. 용수철(Spring)이 한순간에 튀어 오르듯 단단하게 굳어있던 땅속에서 움츠렸던 생명이 기지개를 켜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영랑 시인은 이러한 봄을 ‘찬란한 슬픔의 계절’이라 노래했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의 찬란함이 누군가에게는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는 까닭이다. 주변의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도약할 때 홀로 멈춰 서 있는 이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정서적 낙차는 다른 계절보다 훨씬 가혹하게 다가온다. 이런 계절의 특성으로 인해 봄철에 극단적 선택이 두드러지는 현상을 학계에서는 ‘스프링 피크(Spring Peak)’라 부른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양상이다.

#. 취업준비생 정모(24)씨는 창밖의 봄 날씨가 완연해질수록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상태가 길어지면서 소속된 곳이 없다는 불안감과 이유 없는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씨는 “가만히 있으면 도태될 것 같다는 공포에 운동 등으로 생활 루틴을 만들어봤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어 쉽게 지치곤 한다”고 토로했다. 특히 SNS에 봄맞이 소풍이나 대학 축제, 페스티벌 사진이 넘쳐나는 요즘은 자신의 처지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정씨는 “근래 주변의 화사한 분위기를 보면 나만 멈춰있는 것 같아 우울감이 몇 배는 더 심해진다”고 털어놨다.

#. 올해로 3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최모(27)씨는 이번 봄 뒤늦게라도 전문 심리상담센터를 찾아 치료받기로 결심했다. 매년 봄철마다 찾아오는 원인 모를 무기력증을 그저 ‘계절을 타는 것’이라며 애써 외면해 왔지만 올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감정이 밑바닥을 쳤기 때문이다. 최씨는 “남들은 봄의 온기를 곧잘 즐기는데 홀로 방구석에서 눈물을 흘리는 날이 반복되니 이제는 정말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더 이상 혼자 앓아눕지 않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무너진 마음의 건강을 되찾아보려 한다”고 다짐을 전했다.

투데이신문은 정씨와 최씨같은 청년 세대의 그늘에 주목했다. 이들은 인생의 봄날을 통과하고 있으면서도 계절의 봄 앞에서는 한없이 우울해진다. 달마다 피어나는 꽃들처럼 정해진 시기에 취업과 독립 등 주어진 과업을 매끄럽게 해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 속에서 청년들의 마음은 날마다 가라앉고 있다.

생명의 계절에 찾아오는 역설, ‘스프링 피크’

2014년부터 2024년까지의 계절별 전체 자살자 수를 나타낸 그래프. 봄철 자살자수가 겨울철보다 약 19% 많다. ⓒ투데이신문
2014년부터 2024년까지의 계절별 전체 자살자 수를 나타낸 그래프. 봄철 자살자수가 겨울철보다 약 19% 많다. ⓒ투데이신문

실제 통계 또한 봄철에 겪는 심리적 고통이 개인의 특수한 사정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서 제공한 사망원인통계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2024년까지 계절별 전체 자살자 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봄철 자살자수는 겨울철보다 19%가량  많았다.

2014년부터 2024년까지의 월별 청년 자살자 수를 나타낸 그래프. ⓒ투데이신문
2014년부터 2024년까지의 월별 청년 자살자 수를 나타낸 그래프. ⓒ투데이신문

같은 데이터 내 대상자를 청년으로 좁혀 월별로 분석한 그래프를 보면 청년 자살수는 3월이 두드러지게 높았고 그다음 5월과 4월이 뒤를 이었다. 청년층 역시 봄철에 극단적 선택이 집중되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경희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아라 교수는 “2000년부터 2019년까지 분석한 국내 데이터에서도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사망은 봄철, 특히 5월 전후에 높아지는 양상이 뚜렷하게 보고된 바 있다”며 “스프링 피크 현상이 오랜 기간 지속된 흐름”이라고 짚었다.

이어 “봄에는 일조량, 기온, 낮의 길이가 빠르게 변하면서 수면-각성 주기와 생체리듬이 흔들릴 수 있다”고 분석하면서도 “단순히 생물학적 영향뿐 아니라 이 시기에 집중되는 사회학적 스트레스 또한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제언했다.

청년을 가두는 고립의 벽

봄은 모두에게 똑같이 찾아오지만 어떤 이에겐 생명력을, 어떤 이에겐 절망감을 준다. 이러한 명함의 차이를 만드는 요인을 전문가들은 계절의 변화와 맞물린 정신적 취약성 측면에서 찾는다.

이 교수는 “겨울 동안 우울감과 무기력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봄의 환경 변화로 인해 초조함과 불안감이 동반되면 자살 위험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저에 우울증, 양극성 장애 등 기분장애, 불안장애, 불면, 심한 고립감 등이 있는 사람들은 봄에 더 취약해진다”며 “특히 양극성 장애 환자 등 기분 불안정성을 심하게 겪는 이들은 봄철에 충동성이 올라가는 경향을 보인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봄 자체가 직접적인 원인이라기보다는 정신적 취약성을 지니고 있던 이들이 계절의 변화와 사회적 환경의 변화를 동시에 맞닥뜨릴 때 겪는 정서적 낙차가 더 큰 원인이 된다는 뜻이다.

특히 청년들의 경우 취업, 경제적 독립, 대인관계 문제, 또래 비교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등 우울을 유발하는 구조적 환경에 직면해 있다. 이 교수는 “청년들은 SNS나 메신저를 통해 늘 세상과 연결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힘들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깊은 관계’는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청년층의 고립이 ‘연결 속 외로움’ 및 소속감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2024년 국가데이터처 통계에 따르면 ‘2023 응급실 자살시도 동기’ 중 20대는 정신장애·증상 직접 관련 항목이 37.9%, 30대는 31.9%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18세 이하를 제외하고 타 연령대에서 30%를 넘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정신건강 문제가 청년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양상이 드러난다.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배정희 교수는 우리나라 청년들의 우울과 고립이 사회구조적 불안과 무기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배 교수는 “한국 사회는 개인 고유의 특성과 창의성보다 획일적 성공 기준을 어려서부터 내면화하도록 요구한다”며 “부모와 사회로부터 사랑받고 싶다는 ‘인정욕구’,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 노력해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무기력’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의 청년 우울증 진료인원 추이. 청년 우울증 환자 수는 9년만에 약 3.16배 증가했다. ⓒ투데이신문
2014년부터 2023년까지의 청년 우울증 진료인원 추이. 청년 우울증 환자 수는 9년만에 약 3.16배 증가했다. ⓒ투데이신문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우울증 진료인원 추이’ 그래프를 보면 청년들의 정신적 위기는 수치로 증명된다. 2014년 11만명 수준이던 청년 우울증 환자는 2023년 36만명을 넘어서며 9년 만에 약 3.16배 급증했다.

전체 연령대와 대조해 봐도 청년층의 증가세는 독보적이다. 위 자료에 따르면 2014년에는 전체 우울증 환자 중 청년 비중이 5명 중 1명 정도(19.56%)였으나 2023년에는 3명 중 1명가량(34.63%)으로 급격히 상승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우울증 진료에 대한 문턱이 낮아졌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청년들의 정신건강에 심각한 경고등이 커졌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회적 거리두기’의 후유증

“코로나로 1, 2학년 때 대학 축제 한 번 제대로 못 즐겨본 게 아쉽다. 캠퍼스 라이프를 누리지도 못한 채 취업 전선에 내몰린 기분이다. 우리 세대는 대학 생활도, 청춘도 100% 즐기지 못한 채 ‘고립’에만 익숙해진 것 같다.” 

취업준비생 정씨의 토로다.

실제로 위 그래프는 팬데믹(2020년)을 기점으로 청년 우울증 진료 인원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팬데믹 이전인 2014년부터 2019년까지는 매년 평균 2만1074명 늘어났으나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4년간은 매년 평균 3만5353명씩 폭증했다. 증가 속도가 이전보다 1.7배 빨라진 것이다.

이에 팬데믹 시절 사회적 거리두기와 고립 기조가 청년들의 정신건강에도 치명적인 내상을 입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배 교수는 “실제 청년 사회·경제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코로나 시기에 사회적 관계망이 유의미하게 축소됐다”며 “현재는 일상을 조금씩 회복해 가는 과정이지만 약 3년간 강제로 단절됐던 경험이 청년들의 소통방식에 부정적인 잔흔을 남겼다”고 말했다.

팬데믹 기간 고립에 익숙해진 청년들이 코로나 종식 이후에도 타인에게 의지하고 고민을 나누기보다 모든 문제를 홀로 해결하려는 성향이 강해졌다는 진단이다. 배 교수는 “최근 AI 챗봇 등 비대면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이러한 청년들의 고립과 각자도생의 삶의 방식을 더욱 심화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팬데믹 시기 청년들의 정신건강 문제는 늘었지만 대면 진료의 접근성 악화로 상담과 치료 접근성은 낮은 경향을 보였다”며 “그 여파가 외로움과 경제적 불안, 생활 리듬 붕괴와 맞물리면서 우울과 자살 위험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마음의 치유 넘어 ‘관계를 잇는 사회’로

전문가들은 청년의 우울과 고립을 개인의 취약한 마음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양질의 일자리 부족, 극심한 경쟁 교육, SNS를 통한 끊임없는 비교 문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청년들을 위기로 몰아넣는 ‘구조적 배경’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자체 역시 이러한 위기를 인지하고 심리상담 지원을 꾸준히 확대해 왔다. 배 교수는 “정부 지원을 통해 진입장벽을 낮춘 심리상담 서비스는 위기 청년들을 조기에 발견하는 데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2019년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한 자살시도자 응급의료체계 모형 개발 연구에 따르면 응급실을 찾은 자살시도자 가운데 사후관리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받은 경우의 자살 사망률은 그렇지 않은 경우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조기 개입이 생명을 살리는 안전망이 된 셈이다.

그러나 단순히 개별적인 상담 서비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배 교수는 “약한 우울감이나 외로움을 느끼는 대다수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일상적으로 지역사회 안에서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는 장소와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마음의 치료를 넘어 애초에 고립되지 않도록 관계를 잇는 일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관계망을 떠받칠 토대다. 배 교수는 “청년들이 실제로 모일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을 확보하는 데는 상당한 예산이 필요 국가와 공공이 책임지고 맡아야 한다”며 “현재 전국 청년센터가 보편적 서비스로 자리 잡아가고 있기는 해도 일회성·정적 프로그램에 머무는 만큼 한계도 분명하다”고 조언했다. 운동과 문화·예술 활동, 주체적 사회참여같이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즐기며 관계를 넓힐 수 있는 프로그램과 서로 다른 가치관을 안전하게 포용하는 문화가 함께 정착돼야 한다는 것이 배 교수의 진단이다.

근본적으로 청년들이 마주한 현실의 무게를 덜어줄 필요가 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마이크로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6개월 이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장기 실업자’ 10만8000명 가운데 청년층이 6만1000명으로 절반이 넘는 56.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 장기 실업자 규모가 4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것이다. 무너진 마음을 돌보는 정책과 그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줄 사회·경제적 조건의 개선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움츠렸던 생명이 일제히 기지개를 켜며 솟구치는 계절 ‘스프링(spring)’은 매년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 빛나는 계절이 누군가에게 또다시 ‘잔인한 슬픔’으로 반복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이제 우리 사회가 짊어져야 할 책무다. 청춘(靑春)이라는 푸른 봄을 통과하는 청년들이 더 이상 계절의 봄 앞에서도 외롭게 멈춰 서 있지 않도록 마음의 치유와 삶의 조건 개선을 함께 이어가는 촘촘한 대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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