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라렌이 모나코에서 F1 통산 1,000번째 그랑프리를 맞는다.
2026 F1 제6전 모나코 GP는 맥라렌에게 단순한 시즌 여섯 번째 레이스가 아니다. 맥라렌이 F1 월드 챔피언십에서 치르는 통산 1,000번째 그랑프리이자 팀의 F1 역사가 시작된 장소로 돌아오는 상징적인 무대다. 맥라렌은 1966년 모나코 GP에서 창립자 브루스 맥라렌이 직접 M2B의 스티어링 휠을 잡고 F1 데뷔전을 치렀고, 60년 뒤 같은 장소에서 1,000번째 GP를 맞게 됐다.
이 기록은 페라리에 이어 F1 역사상 두 번째다. 맥라렌은 1,000번째 GP를 앞두고 통산 203승, 561회 포디엄, 177회 폴포지션, 드라이버즈 챔피언십 13회, 컨스트럭터즈 챔피언십 10회를 기록한 F1의 대표 명문 팀으로 자리했다. 숫자만 보면 화려한 역사지만 그 안에는 영광만큼이나 긴 부침과 재건의 시간도 함께 담겨 있다.
맥라렌의 첫 번째 황금기는 1970년대에 열렸다. 에머슨 피티팔디는 1974년 맥라렌에 첫 드라이버즈 챔피언십을 안겼고, 제임스 헌트는 1976년 니키 라우다와의 치열한 타이틀 경쟁 끝에 월드 챔피언에 올랐다. 이 시기의 맥라렌은 아직 오늘날의 대형 조직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레이스를 이해하는 실전 감각과 강한 승부 본능을 바탕으로 빠르게 F1 정상권에 자리 잡았다.
1980년대는 맥라렌이 F1의 중심으로 올라선 시기였다. 론 데니스 체제와 함께 팀은 기술, 조직, 드라이버 라인업에서 새로운 기준을 만들기 시작했다. 니키 라우다는 1984년 알랭 프로스트를 근소하게 제치고 챔피언에 올랐고, 프로스트는 1985년과 1986년 연속으로 드라이버즈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이 시기 맥라렌은 정밀한 팀 운영과 효율적인 레이스 전략, 강력한 머신 완성도를 결합한 팀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맥라렌의 황금기는 드라이버의 재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팀의 또 다른 축은 엔지니어들이었다. 1980년대 초 존 바너드가 주도한 카본 파이버 모노코크 혁신은 F1 섀시 설계의 기준을 바꾼 사건이었다. 맥라렌 MP4/1은 알루미늄 구조가 중심이던 시대에 카본 파이버 섀시의 가능성을 입증했고 이후 F1 경주차 설계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맥라렌이 명문으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피티팔디, 헌트, 라우다, 프로스트 같은 드라이버뿐 아니라, 그들이 한계를 밀어붙일 수 있는 경주차를 만든 엔지니어링 조직이 있었다.
그리고 1988년, 맥라렌은 F1 역사에서 가장 압도적인 시즌 중 하나를 만들었다. 아일톤 세나와 알랭 프로스트가 함께한 MP4/4는 16전 15승이라는 기록을 남겼고, 세나는 맥라렌에서 첫 월드 챔피언에 올랐다. 세나와 프로스트의 조합은 압도적인 성공과 내부 경쟁을 동시에 상징했다. 두 드라이버의 경쟁은 맥라렌을 전성기의 중심에 세웠지만 동시에 F1 역사상 가장 강렬한 라이벌리 중 하나로 남았다.
MP4/4의 압도적 성능도 드라이버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고든 머레이와 스티브 니콜스 등 엔지니어링 그룹이 만들어낸 낮은 차체 패키징, 혼다 터보 엔진과의 조화, 공력 효율, 기계적 안정성이 맞물리며 맥라렌은 한 시즌을 사실상 지배했다. MP4/4는 세나와 프로스트의 드라이빙을 통해 완성됐지만 그 출발점은 엔지니어링이었다. 이 차는 맥라렌이 ‘드라이버의 팀’인 동시에 ‘엔지니어의 팀’이라는 사실을 상징하는 머신이었다.
세나는 맥라렌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이름이다. 1988년, 1990년, 1991년 세 차례 월드 챔피언에 올랐고, 모나코에서는 통산 6승으로 역대 최다승 기록을 남겼다. 맥라렌과 세나, 그리고 모나코는 서로 분리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좁은 시가지 서킷에서 벽을 스치듯 달리던 세나의 주행은 맥라렌이 단순히 빠른 팀이 아니라 드라이버의 한계와 기술의 정점을 함께 상징하는 팀으로 기억되게 했다.
1990년대 말에는 미카 하키넨이 새로운 맥라렌의 얼굴이 됐다. 하키넨은 1998년과 1999년 연속으로 월드 챔피언에 올랐고, 맥라렌은 메르세데스 엔진 시대의 경쟁력을 앞세워 다시 정상에 섰다. 이 시기 맥라렌은 페라리와 미하엘 슈마허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하키넨의 냉정함과 속도, 메르세데스 파워유닛, 그리고 애드리안 뉴이가 이끈 공기역학 설계가 결합되면서 맥라렌은 다시 챔피언십을 가져왔다.
2000년대에는 루이스 해밀턴이 맥라렌의 새 시대를 열었다. 해밀턴은 2007년 데뷔 시즌부터 우승권 경쟁을 펼쳤고, 2008년 극적인 방식으로 월드 챔피언에 올랐다. 이는 현재까지도 맥라렌이 배출한 가장 상징적인 현대 F1 챔피언십 중 하나로 남아 있다. 해밀턴의 등장은 맥라렌이 여전히 젊은 재능을 발굴하고 정상으로 이끌 수 있는 팀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그러나 명문도 흔들렸다. 2007년 ‘스파이게이트’ 사건은 팀 이미지에 큰 타격을 남겼고, 이후 맥라렌은 점차 정상권에서 멀어졌다. 특히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이어진 혼다와의 파트너십은 기대와 달리 성능과 신뢰성 모두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한때 F1을 지배했던 팀은 중위권과 하위권 사이에서 고전했고 조직 내부의 분위기와 경쟁력도 크게 흔들렸다.
이 부침 역시 드라이버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파워유닛 선택, 차체 패키징, 공기역학 개발 방향, 신뢰성 관리, 팀 내부 의사결정 구조가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였다. 맥라렌의 하락은 명문 팀도 기술 방향과 조직 운영이 어긋나면 순식간에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전환점은 조직 문화와 정체성의 재정비에서 시작됐다. 잭 브라운 체제 이후 맥라렌은 팀 분위기를 바꾸고 브랜드의 상징인 파파야 오렌지를 다시 전면에 내세웠다. 단순한 색상 변경이 아니었다. 파파야의 복귀는 맥라렌이 과거의 명성을 무겁게 짊어지는 대신 자신들의 뿌리를 현대적으로 되살리겠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부활의 과정에서도 핵심은 기술 조직의 재정비였다. 맥라렌은 한때 파워유닛 선택과 차체 패키징, 개발 방향에서 흔들렸지만 이후 공기역학 개발과 운영 체계, 현장 판단 능력을 다시 정비하며 정상권으로 돌아왔다. 랜도 노리스와 오스카 피아스트리의 속도는 이 변화 위에서 빛났다. 현재의 파파야 부활은 드라이버 라인업만의 성과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차를 다시 빠르게 만든 엔지니어들의 회복이기도 하다.
부활은 단번에 완성되지 않았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재정적 압박을 겪었고 정상권 복귀까지는 여러 차례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그러나 팀은 점진적으로 경쟁력을 회복했다. 2021년 이탈리아 GP에서 다니엘 리카도가 우승하고 랜도 노리스가 2위를 해 원투 피니시를 완성한 장면은 맥라렌 부활의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이후 맥라렌은 다시 F1 정상권으로 돌아왔다. 2024년 컨스트럭터즈 챔피언십을 차지했고, 2025년에는 노리스가 드라이버즈 챔피언에 오르며 새로운 파파야 시대의 정점을 찍었다. 맥라렌 공식 헤리티지 기록에서도 노리스는 에머슨 피티팔디, 제임스 헌트, 니키 라우다, 알랭 프로스트, 아일톤 세나, 미카 하키넨, 루이스 해밀턴과 함께 맥라렌 월드 챔피언 계보에 이름을 올렸다.
2026년의 맥라렌은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는 팀이 아니라, 다시 우승을 노리는 현재진행형의 팀이다. 노리스와 피아스트리는 젊고 빠른 조합이며 팀은 기술과 운영 면에서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다. 모나코 GP를 앞두고 공개한 1,000번째 GP 기념 리버리 역시 이 메시지를 담고 있다. 금속성 파파야와 앤트러사이트를 조합한 MCL40의 특별 리버리는 첫 레이스, 우승, 챔피언십, 트리플 크라운, 피트스톱 기록 등 팀 역사의 주요 장면을 곳곳에 담았다.
맥라렌은 이번 1,000번째 GP를 위해 특별한 그리드 이벤트도 준비했다. 팀의 첫 F1 머신인 M2B와 1,000번째 GP 출전차인 MCL40이 모나코 그리드 위에 함께 놓이는 장면이다. 브루스 맥라렌이 직접 몰았던 첫 차와 노리스·피아스트리가 현재의 경쟁을 이어가는 차가 같은 장소에 선다는 것은,맥라렌의 60년 F1 역사를 한 장면으로 압축하는 상징이다.
모나코는 맥라렌에게 특별한 장소다. 이곳에서 F1 역사를 시작했고 이곳에서 수많은 승리를 쌓았다. 맥라렌은 모나코 GP에서 통산 16승을 거둔 최다승 팀이다. 세나의 시대, 프로스트의 시대, 하키넨과 해밀턴의 시대를 지나 지난해에는 노리스가 모나코 우승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000번째 GP를 모나코에서 맞는 것은 우연이지만 그 우연은 맥라렌 역사와 절묘하게 맞물린다.
맥라렌의 1,000번째 GP는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다. 한때 F1을 지배했던 팀이 어떻게 흔들렸고, 어떻게 다시 자신들의 색을 되찾았는지를 보여주는 이정표다. ‘맥라렌 네버 퀴츠’라는 문구가 의미를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팀의 역사는 승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추락했고, 버텼고,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드라이버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머신을 설계하고 고쳐온 엔지니어들이 있었다.
1966년 브루스 맥라렌의 M2B가 모나코 거리를 달렸을 때 그 여정이 1,000번째 그랑프리로 이어질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맥라렌은 F1의 가장 긴 이야기 중 하나를 써왔다. 그리고 이제 MCL40은 다시 모나코의 벽 사이를 달린다. 시작의 장소에서 맞는 1,000번째 GP는 맥라렌에게 과거의 완성이 아니라, 다음 1,000경기를 향한 새로운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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