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이순열의 K-스타트업… 여성 창업가의 여건은 정말 나아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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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이순열의 K-스타트업… 여성 창업가의 여건은 정말 나아졌는가

연합뉴스 2026-06-05 14:00:0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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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이순열 큐네스티 대표 이순열 큐네스티 대표

[본인 제공]

창업 생태계는 분명 커지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24년 국내에서 새로 문을 연 기업은 118만2천905개였다. 이 가운데 기술을 밑천으로 삼는 '기술기반 창업'은 21만4천917개로, 전체의 18.2%를 차지했다. 경기 둔화로 전체 창업 수는 1년 전보다 줄었지만, 기술창업이 차지하는 비중만큼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인공지능(AI), 바이오, 기후, 지역의 문제를 푸는 로컬테크, 고난도 원천기술을 다루는 딥테크처럼 '돈도 벌고 사회문제도 푸는' 창업이 늘고 있다는 신호다. 문제는 이 성장의 통로가 여성 창업가에게도 똑같은 폭으로 열려 있느냐다.

◇ '입구'엔 보이는데, 투자 '테이블'에선 사라져

여성이 세운 회사의 '숫자'만 보면 상황은 나쁘지 않아 보인다. 여성기업을 돕는 제도도, 여성에게 특화된 창업 지원 사업도 꾸준히 생겼다. 그런데 투자 단계로 넘어가는 순간 그림이 완전히 달라진다.

스타트업 투자 정보를 모으는 '스타트업레시피'의 2024 투자 리포트를 인용한 보도를 보면, 2024년 여성 창업자가 이끄는 스타트업이 받은 투자금은 1천92억 원이었다. 1년 전(2천893억 원)보다 62% 줄었고, 3년 전(9천147억 원)과 비교하면 9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전체 벤처투자에서 여성 대표 스타트업이 차지한 비중도 2020년 8.0%에서 2022년 4.5%, 2024년 1.8%로 계속 내려앉았다. 창업을 시작하는 '입구'에는 여성이 보이지만, 정작 성장 자금이 오가는 '투자 테이블'에서는 빠르게 사라지는 셈이다.

투자의 '질'도 다르다. 2024년 투자 유치에 성공한 여성 스타트업은 114곳이었지만, 이 중 100억 원 이상을 받은 곳은 단 3곳뿐이었다. 투자받은 여성 스타트업의 절반은 사업 가능성을 막 검증하는 가장 초기 단계(시드·프리A)에 머물렀고, 본격적으로 회사를 키우는 자금이 들어오는 단계(시리즈B 이상)까지 올라간 곳은 2%에 그쳤다.

쉽게 말해 이렇다. 창업의 첫 관문은 일부 열려 있지만, 회사를 본궤도에 올리는 '큰돈'으로 이어지는 사다리는 매우 약하다는 뜻이다. 여성이 창업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더 적은 자본과 더 좁은 인맥을 만나는 구조가 드러난다.

이 격차를 창업자 개인의 능력 부족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사업을 평가하고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쪽의 성비(性比)부터 심하게 한쪽으로 쏠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통계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2023년 벤처투자회사(VC·스타트업에 돈을 대는 투자사) 회원사의 투자 심사 인력 1천597명 중 여성은 236명, 14.8%에 그쳤다. 투자사를 이끄는 여성 대표는 216곳 중 8곳, 3.7%에 불과했다. 일반 경영기획 인력의 여성 비중이 49.4%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투자를 결정하는 자리에 가까워질수록 여성은 빠르게 줄어든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창업자 쪽에만 있는 게 아니라, 자본을 나눠 주는 구조 안에도 깊이 박혀 있는 것이다.

창업 아이템은 결국 창업자 자신의 경험과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여성 건강, 돌봄, 육아, 안전, 고령화, 생활 서비스, 지역의 불편 같은 분야는 실제 수요가 분명한데도 오랫동안 '작은 시장'으로 과소평가돼 왔다.

평가자의 경험과 인맥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어떤 문제는 사소한 틈새시장으로 보이고 어떤 고객의 불편은 '개인적인 일'로 축소되기 쉽다. 반대로 기술 중심 창업에서도 여성 연구자와 여성 창업자가 적게 들어오면 문제를 정의하고 제품을 설계하는 폭 자체가 좁아진다. 이는 여성 창업가만의 손실이 아니다. 투자자가 새로운 시장을 뒤늦게 발견하게 만드는, 생태계 전체의 손실이다.

◇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지표와 제도'

해법의 방향은 이미 제시돼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신산업 분야 여성 창업 활성화 방안'에서 중소기업창업법 개정과 지원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분석했고, 2023년 국회 정책토론회에서도 이공계 여성 인력 확대, 기술교육, 네트워크 강화가 과제로 제시됐다. 여성을 위한 창업 교육은 '배려'가 아니라 기술창업의 인재 풀 자체를 넓히는 정책이다. 대학과 연구실, 직장, 지역 창업기관에서 여성이 창업을 경험하고 투자자·시장과 만나는 길을 더 촘촘히 깔아야 한다.

심사와 투자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창업경진대회나 정부지원사업 심사장에 가 보면 여성 심사위원이 한 명뿐이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예비창업패키지·초기창업패키지처럼 '첫 관문'이 되는 사업일수록 평가자의 시선이 다양해야 한다. 초기 아이템은 아직 숫자로 다 증명되지 않은 만큼, 생활 속 변화와 불편을 읽어내는 안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심사위원의 다양성은 구색 맞추기가 아니라, 좋은 기업을 놓치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다.

무엇보다 공개가 필요하다. 주요 창업지원사업은 여성 창업기업의 신청률, 선정률, 후속투자 유치율, 민간투자 연계(TIPS·정부가 민간 투자와 연결해 자금을 보태 주는 제도) 비율을 성별로 나눠 공개해야 한다. 정확히 어느 단계에서 격차가 벌어지는지를 알아야 정책도 정교해진다. 정책의 성과는 '창업자 수'가 아니라 '단계의 이동'으로 확인돼야 한다. 예비창업에서 초기창업으로, 다시 민간투자와 후속투자, 해외 진출로 올라가는 길에서 성별 격차가 줄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투자업계 내부의 경력 사다리도 함께 살펴야 한다. 여성 심사역을 뽑는 것으로 끝나면 부족하다. 투자할 돈을 모으는 일(펀드 결성), 자금을 대는 출자자 관리, 투자 결정 회의 참여, 투자금 회수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 파트너와 대표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여성 창업가를 곁에서 돕는 멘토가 아니라, 직접 투자를 결정하는 '의사결정권자'가 늘어난다.

◇ 다양한 사람이 앉을수록 더 넓은 시장

여성 창업가가 많아지는 것만큼, 여성 심사역·여성 파트너·여성 펀드 운용자가 많아지는 일도 중요하다. 투자 테이블에 앉는 사람이 다양해야 더 다양한 아이템이 이해되고, 더 넓은 시장이 발견된다.

투자할 돈을 모으고 거래(딜) 정보를 나누는 일이 공식 절차뿐 아니라 비공식 인맥을 통해 이뤄지는 현실도 돌아볼 대목이다. 특정 문화를 싸잡아 비난할 일은 아니지만, 기회가 '아는 사람끼리'의 친밀함에 지나치게 기대지 않도록 더 투명하고 열린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 여성 창업가 문제는 여성 정책의 좁은 의제가 아니다. 투자자가 누구의 문제를 시장으로 인정하고, 누구의 경험을 전문성으로 해석하며, 누구에게 다음 기회를 연결하느냐의 문제다. 여성 창업가 지원은 특혜가 아니라, 벤처 생태계가 더 많은 가능성을 놓치지 않기 위한 구조 개선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지표와 제도다. 여성 창업가의 수, 투자금, 단계별 생존율, 심사위원 구성, 그리고 자금을 운용하는 이들의 실제 의사결정권까지 한데 모아 꾸준히, 공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여성 창업가의 여건이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순열 공익법인 임팩트투자 NGO 큐네스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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