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만 더봄] 2020년대, 정점에 선 K-팝이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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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만 더봄] 2020년대, 정점에 선 K-팝이 묻다

여성경제신문 2026-06-05 13:00:00 신고

팬데믹이 멈춘 무대, 그러나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2020년 봄, 세계가 멈췄다. 공항이 닫히고, 공연장에 불이 꺼졌다. 수십만명이 모여 함성을 지르던 K-팝 콘서트는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BTS의 월드투어는 취소되었고 블랙핑크의 공연 일정은 전부 지워졌다. 그 빈자리가 얼마나 컸는지 숫자가 말해준다. K-팝 공연 산업의 매출은 2020년 단 한 해에 90% 가까이 급감했다.

그러나 K-팝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팬데믹은 이 산업이 얼마나 빠르게 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되었다. 온라인 콘서트가 오프라인의 빈자리를 채웠다. BTS의 온라인 공연 는 전 세계 191개 지역에서 99만명이 동시에 접속했다. 티켓 한 장으로 안방에서 최전방 스탠딩석을 경험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BTS 온라인콘서트 티켓 /사진=김성만 
BTS 온라인콘서트 티켓 /사진=김성만 

플랫폼도 함께 진화했다. 위버스(Weverse)와 버블(Bubble) 같은 팬덤 전용 플랫폼은 아티스트와 팬이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공간이 되었다. 팬들은 월정액을 내고 좋아하는 가수의 일상 메시지를 받았다.

유료 소통이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잡았고, 기획사들은 공연 수익 없이도 플랫폼과 MD 판매만으로 수익 구조를 유지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팬데믹이 K-팝의 수익 모델을 완전히 재설계하도록 강제한 셈이었다. 위기는 재앙이었지만, 동시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도약대가 되었다.

세계가 K-팝 시스템을 수입하다

팬데믹이 걷히고 세상이 다시 열리자, K-팝은 더 넓어진 세계와 마주했다. BTS 멤버들이 하나둘 군 복무를 위해 무대를 비웠고, 블랙핑크는 그룹 활동과 솔로 활동을 병행하는 전략을 택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위기론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협업곡 는 2024년 전 세계 스트리밍 차트를 석권했다. 지민과 정국은 솔로로 빌보드 핫100 1위에 올랐다. 그룹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각각의 아티스트로서도 글로벌 팝스타의 자리를 증명한 것이다. K-pop이 키워낸 스타들은 이제 K-pop이라는 카테고리 밖에서도 홀로 설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로제·브르노마스 APT. CD 앨범 /사진=김성만 
로제·브르노마스 APT. CD 앨범 /사진=김성만 

4세대 걸그룹의 부상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뉴진스(NewJeans)·아이브(IVE)·르세라핌(LE SSERAFIM)·에스파(aespa). 이들은 기존의 강렬한 걸크러시 공식에서 벗어났다. Y2K 감성, 이지리스닝, 각자의 독창적인 세계관.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도 달랐다. 유튜브 쇼츠와 틱톡으로 노래가 먼저 퍼지고 팬덤이 나중에 만들어졌다. 가요 프로그램 1위보다 틱톡 챌린지 조회수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던져졌다. '한국인이 부르지 않아도, 한국어로 노래하지 않아도 K-팝인가.' 하이브의 캣츠아이(KATSEYE), JYP의 비춰(VCHA) 등 한국 기획사가 미국 현지 멤버로만 구성한 그룹들이 등장했다.

일본의 니쥬(NiziU), 동남아시아를 기반으로 한 그룹들도 속속 나왔다. K-팝은 이제 한국이라는 지리적 경계를 넘어, 하나의 시스템이자 방법론으로 세계에 이식되고 있었다. 'K-팝'에서 'K'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자본이 삼킨 예술, 거대 자본의 각축장

성장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 안의 균열도 깊어졌다. 2020년대 중반, K-팝 산업을 가장 크게 뒤흔든 사건은 음악이 아닌 경영권 분쟁이었다.

2023년 하이브(HYBE)의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이 업계를 들끓게 했다. 이수만 창업자의 지분을 둘러싼 공방,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의 경쟁 인수, 법적 공방까지. 30년 가까이 K-팝의 한 축을 담당해온 SM의 경영권이 자본 논리에 의해 재편되는 과정은, 이 산업이 이제 음악 산업이기 이전에 거대 자본의 각축장이 되었음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것은 2024년 하이브와 산하 레이블 어도어(ADOR)의 민희진 전 대표 사이에서 터진 공방이었다. 뉴진스를 탄생시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그를 품었던 거대 기획사의 충돌.

법정 공방과 기자회견, SNS를 통한 폭로가 뒤엉킨 이 사태는 전 세계 K-팝 팬들이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전개되었다. 핵심 쟁점은 단순한 계약 분쟁이 아니었다. 창작자의 독립성과 자본의 통제권 사이에서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서부터가 경영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K-팝의 고속 성장을 이끈 멀티 레이블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점이, 가장 화려한 성공의 한복판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글로벌 대형 레이블과의 합종연횡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SM과 소니뮤직·워너뮤직,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와 컬럼비아 레코드 간의 전략적 파트너십과 지분 인수. 빌보드 차트 진입이 '이벤트'가 아닌 '일상'이 된 시대에 K-팝 기획사들은 미국 현지 라디오 프로모션과 유통망 확보를 위해 글로벌 자본과 손을 잡았다. 음악은 더욱 세계화되었고 동시에 그 음악을 둘러싼 자본의 구조도 더욱 거대하고 복잡해졌다.

쌓이는 CD 더미와 사라지는 음악의 온도

2020년대 K-팝의 또 다른 그림자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드러났다. 바로 음반이었다. 디지털 스트리밍이 완전히 자리 잡은 시대에 역설적으로 실물 음반 판매량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초동(발매 첫 주 판매량) 100만 장은 기본이 되었고, 수백만 장을 돌파하는 앨범이 속속 나왔다.

그 비결은 음악이 아니었다. 랜덤 포토카드, 팬사인회 응모권, 멤버별 버전 앨범. 팬들은 원하는 포토카드를 얻기 위해, 혹은 팬사인회 응모 확률을 높이기 위해 같은 앨범을 수십 장씩 샀다. 음반은 음악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팬심을 측정하는 도구이자 굿즈 패키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 개봉조차 되지 않은 채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CD들이 쏟아졌다. 팬들 스스로 SNS에 산더미처럼 쌓인 폐기 음반 사진을 올리며 자조했다. 환경 오염이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고 일부 팬덤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커졌다.

개봉도 하지 않은 CD 더미 /사진=김성만  
개봉도 하지 않은 CD 더미 /사진=김성만  

이 현상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눈이 가는 곳이 있다. 음악 산업의 선배들과 음반산업 선진국 들이 걸어온 길이다. 영국과 미국의 음반 시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소장 가치 있는 음반'의 방향을 탐색해 왔다.

비틀즈와 핑크 플로이드의 리마스터 한정판, 데이비드 보위의 박스 세트, 테일러 스위프트의 '테일러스 버전' 시리즈. 이들은 팬들이 진심으로 간직하고 싶은 무언가를 음반 안에 담았다. 단순한 음악 재생 매체가 아니라, 아티스트의 세계관과 이야기가 구현된 오브제로서의 음반.

일본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정교하게 제작된 한정판 패키지, 라이너 노트의 깊이, 아티스트의 손길이 느껴지는 디자인. 일본 팬들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이유는 단순히 '더 많이 사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갖고 싶기 때문'이다.

K-팝 앨범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여기에 있다. 응모권과 랜덤 포토카드로 구매를 강제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소장 가치를 지닌 음반을 만드는 것. 아티스트의 음악적 여정이 담긴 깊이 있는 라이너 노트, 오랜 시간이 지나도 꺼내 보고 싶은 아트워크, 팬이 아닌 사람도 감탄할 수 있는 패키지 디자인.

그것이 팬의 지갑이 아닌 팬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반이다. 초동 수백만 장의 신기록보다 10년 뒤에도 서가에 꽂혀 있는 음반 하나가 더 오래 남는 것이다.

100년의 끝이 아니라, 다음의 시작

2020년대의 K-팝은 정점에 서 있다. 세계 최대 음악 시장인 미국에서 한국어로 부른 노래가 차트를 점령한다. 유럽의 스타디움을 가득 메우고, 중남미와 중동의 10대들이 한국어 가사를 외워 따라 부른다. 1926년 윤심덕이 오사카의 녹음실에서 유리 원반 위에 목소리를 새겼을 때 이런 미래를 상상한 사람이 있었을까.

K-팝의 시작과 현재 /AI 재현 
K-팝의 시작과 현재 /AI 재현 

그러나 정점에 선 자리는 동시에 가장 많은 질문이 쏟아지는 자리이기도 하다. K-팝이란 무엇인가. 한국인이 만들지 않아도, 한국어로 부르지 않아도 K-팝인가. 글로벌 팬덤은 단순한 소비자인가, 아니면 이 산업을 움직이는 공동 창작자인가. 자본과 창작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아티스트는 상품인가, 인간인가. 음반은 데이터인가, 기억인가.

틱톡과 숏폼 콘텐츠로 무장한 글로벌 팬덤은 이제 단순한 음악 소비자를 넘어섰다. BTS 팬덤이 미국 대선 집회 예매를 장악하고,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에 수백만 달러를 기부했다. K-팝 팬덤은 하나의 사회적 세력이 되었다. 기획사와 아티스트에게는 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사회적 책임과 문화적 감수성이 요구된다.

2020년대의 K-팝은 현재진행형이다. 완결된 역사가 아니라 쓰이고 있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시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양적 성장의 시대는 이미 왔다.

이제 K-팝이 마주한 과제는 크기가 아니라 깊이다. 더 많이 팔리는 음악이 아니라 더 오래 남는 음악. 더 많은 나라에 퍼지는 콘텐츠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의 마음에 뿌리 내리는 예술을 위해  다음 100년을 향한 질문은 그렇게 시작된다.

여성경제신문 김성만 음악프로듀서 공연기획자
musicman2@hanmail.net

김성만 음악프로듀서·공연기획자

중앙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Bassiano Accademia delle Arti에서 예술 매니지먼트 최고 과정을 수료했다. 삼성에버랜드 엔터테인먼트팀 음악감독과 전략기획팀을 거치며 대형 공연·전시·테마 콘텐츠의 음악 및 기획을 담당했다. 국내외 대형 문화행사를 비롯해 엑스포, 국가 기념행사, 테마파크, 영상·게임·드라마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숭실대학교, 수원여자대학교 대학원, 경민대학교 등에서 공연기획과 음악콘텐츠 프로듀싱을 강의했으며, 현재는 서울재즈아카데미(SJA)에서 후진 양성에 힘쓰는 한편 문화예술콘텐츠 기획·제작사 (주)바콘웨이브 대표로 활동 중이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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