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6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가 종료되는 순간,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예상치 못한 폭탄이 터졌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 뉴스1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투표 종료 직후 페이스북에 "이 시간만 기다렸다, 민주당을 흠집 낼 수 없어서"라며 "이 시각부터 정청래를 당대표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우리 호남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오만한 당대표에 의해 호남인은 철저히 외면받았다"며 "광주·전남 시도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우롱한 정청래 당대표는 호남팔이를 집어치우고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직격했다. 이어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 민주당 지도부 교체에 모두 함께 연대투쟁 하겠다"고 밝혔다.
전북지사 선거에서 낙선한 김관영 지사 역시 지난 4일 선거 캠프 해단식에서 정 대표 책임론에 가세했다. 민주당 이원택 후보에게 패배한 김 지사는 자신의 득표율 41.78%를 언급하며 "단순한 득표율이 아니라 정청래 세력에 대한 도민의 심판"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번 선거를 '전북도민과 정청래 지도부의 대결'로 프레이밍하며 "다가오는 8월 전당대회에서 도민의 뜻을 다시 보여줄 것"이라고 예고했다.
호남 광역단체장들의 동시다발적 공세는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전반적 승리를 거뒀음에도 내부 균열이 심각한 수준임을 드러내는 신호탄으로 읽힌다.
숫자로 보는 6·3 지방선거 성적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이번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12곳, 국민의힘은 4곳에서 각각 승리했다. 국민의힘은 서울·대구·경북·경남을 수성했다.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민주당 116곳, 국민의힘 94곳이 승리했으며 무소속 10명, 조국혁신당 2명이 당선됐다. 광역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 409명, 국민의힘 246명이 배출됐고,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 1,184명, 국민의힘 947명이 각각 당선됐다. 비례대표 광역의원은 민주당 62명, 국민의힘 49명, 조국혁신당 4명, 진보당 1명 순이었다.
수치만 놓고 보면 민주당의 압도적 승리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에 광역단체장 12곳을 내줬던 것과 비교하면 완전히 반전된 결과다. 조승래 사무총장도 "완전히 반대가 됐기에 승리라고 생각한다"고 평했다.
그러나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울 패배'가 갖는 무게
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 가장 뼈아프게 받아들이는 대목은 서울시장 선거 패배다. 서울은 수도이자 전국 각지 출신 유권자들이 모이는 정치 바로미터로, 매 선거의 상징적 승패를 가르는 핵심 승부처다.
이뿐만이 아니다. 민주당은 격전지로 꼽힌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경기 평택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도 모두 패배했다. 첫 민주당 시장 탄생을 기대했던 대구 시장 선거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울산시장과 부산시장 선거는 간신히 이겼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본투표 다음 날 페이스북에 "6·3 지방선거 승리의 외양은 화려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에서 석패했다면 완승이라 할 수 없다"고 썼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패배는 아닐지언정 실패는 맞다. 전체적으로 결과가 좋았음에도 승리라 일컫기 민망하다"며 "조금이라도 책임을 통감하는 언사는 없다"고 비판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6·3지방선거 결과' 관련 기자회견에 입장하고 있다. / 뉴스1
박지현 "압승 가능했는데 졌다"…대통령 지지율도 못 살렸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정청래 대표가 6·3 지방선거 결과에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 전 위원장은 "이번 선거는 민주당이 승리한 선거가 아니다. 압승할 수 있었던 선거"라고 규정하며 "대구와 서울, 경남 모두 이길 수 있었지만 졌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단 1%도 활용하지 못했다"며 지도부의 전략 실패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그는 "이번 선거는 이재명 정부 출범 1년을 평가받고 미래로 나아가는 시간이어야 했는데, 정청래 지도부는 거꾸로 갔고 미래에는 관심이 없었다. 국민의힘 장동혁 지도부의 무능에만 기댄 채 국민 삶과 미래를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박 전 위원장은 "민심을 읽지 못한 정치가 잘못"이라며 "호남정치를 혁신하고 청년을 키우고 민생에 집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정 대표를 향해 "혹 희생양을 찾으실 거냐, 소수정당 탓을 하실 거냐, 우경화된 2030 탓을 할 것이냐"고 물으며 "문제는 권력만 바라본 낡은 정치를 고집한 정청래 대표"라고 직격했다.
당권파의 반격 "아쉬움이 있다고 승리가 아닌 건 아니다"
당권파는 책임론을 일축하는 입장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4일 기자회견을 통해 "전국적으로 민주당에 큰 승리를 안겨주신 국민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이번 선거 결과를 승리로 규정했다. 다만 "서울을 탈환하지 못해 아프다"고 했다.
조 사무총장도 기자들과 만나 "아쉬움이 있다고 해서 승리가 아닌 건 아니다"라며 방어적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 같은 당권파의 기조는 당내 비주류 및 비판 세력의 반발을 더욱 자극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공천 과정의 불공정성 논란, 호남 홀대 논란, 주요 격전지 패배가 한꺼번에 쌓이면서 누적된 불만이 선거 종료와 동시에 공개 분출되는 양상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선대위 지도부가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개표종합상황실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 공동취재-뉴스1
8월 전당대회, 차기 당권 경쟁 본격화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전당대회 당권 경쟁의 신호탄이 됐다.
차기 당권 대항마로 꼽히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인천 연수갑 재보선에 당선됐다. 그는 지난 4일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전북 공천 논란 등을 거론하며 "지도부 책임 문제를 따질 필요도 없이 바로 전당대회가 있기 때문에 거기서 평가를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정 대표 체제 종식을 전당대회에서 결판 짓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또 다른 대항마로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거론된다. 김 총리는 지방선거 전부터 상임위 단위 만찬 등을 통해 당내 인사들과의 접촉면을 넓혀왔으며, 정치권에서는 이를 당권 도전을 위한 사전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방선거 직후 총리직 사퇴 후 당권 도전에 나설 가능성이 점쳐진다.
호남 광역단체장들의 연대투쟁 선언, 송 전 대표의 당선 복귀, 김 총리직 사퇴 가능성이 맞물리며 민주당 8월 전당대회는 정청래 체제 유지냐 교체냐를 두고 역대급 내홍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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