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알몸이었나, 상황 바뀌면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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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알몸이었나, 상황 바뀌면 드러나

더리더 2026-06-05 10:13:4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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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리더의 생각]문제 분석 참신할수록 시일 지난 뒤 ‘복기’할 필요 있어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내려앉을 때에야 날개를 편다.”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이 ‘법철학’에 쓴 문장이다. 미네르바는 로마 신화 속 지혜의 여신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테나다.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는 아테나를 ‘빛나는 눈’을 지닌 여신이라고 표현했다. 올빼미는 큰 눈으로 어둠 속에서도 사물을 잘 분간한다는 점에서, 무지의 어둠 속에서 지혜의 빛을 밝히는 아테나를 상징하게 됐다. 그래서 아테나가 등장하는 그림은 손이나 어깨에 올빼미를 올려놓거나 올빼미가 아테나 곁에서 나는 모습으로 묘사됐다. (이 경구에서 ‘올빼미’는 ‘부엉이’로도 쓰인다.)

위 경구에서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진실을 상징한다. 헤겔은 진실이 드러나는 시기를 이 새의 행태와 연결하는 수사법을 구사했다. 상황이 한창 시끄러운 중에는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다. 사실과 허구가 마구 뒤섞이는 가운데 분석도 많고 주장도 분분하다. 해가 진 이후 올빼미가 활동에 나서는 것처럼, 진실은 상황이 가라앉은 연후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헤겔은 이런 생각에 ‘황혼이 내려앉을 때에야 날개를 편다’는 멋진 표현을 덧붙였다. 헤겔의 말은 대개 사건이나 시대는 종결된 뒤에야 평가가 가능해진다는 의미로 활용된다. 또는 인간은 너무 늦게서야 온전한 이해에 도달한다는 뜻으로 인용되기도 한다.

◇“인구밀도가 출산율에 영향” 주장의 공허함
지난 몇 년간 출산율이 사상 최저를 연거푸 경신할 때, 원인 분석이 백가쟁명식으로 쏟아졌다. 그중 하나를 복기한다. 높은 인구밀도 때문에 출산율이 낮아졌다는 주장이다. 한국 출산율 문제는 아직도 심각하다. 다만 더 악화되지 않는 가운데 약간 개선되는 추세는 보이고 있다. 수도권과 대도시의 높은 인구밀도가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한국 출산율이 상당히 반등했다는 점에서 이 원인 분석은 사실과 동떨어진 것이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편의상 인구밀도가 출산율의 주요 변수라는 주장을 ‘인구밀도론’이라고 칭한다. 이 주장의 원조는 2000년에 발표된 ‘한국 합계출산율의 결정 요인으로서의 인구밀도’ 논문이다. 이 논문은 출산을 “생태학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며 각 시·도의 출산율이 인구밀도와 반비례한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초저출산 현상의 원인들로 고려돼온 경제, 사회, 복지, 부동산, 고용, 사교육 등 다양한 사회구조적인 요인들과 관련된 변수들이 통제된 후에도, 실질적인 인구밀도를 의미하는 ‘인구 1인당 주거, 상업, 공업 지역 면적’이 합계출산율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주고 있는지 경험적 분석을 시도하였다”고 설명한다.

이 논문이 누락한 변수가 있다. 인구밀도가 높은 곳의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그것을 출산에 이르는 의사결정에 반영하는가이다. 인구밀도가 높으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기를 기피하는지, 결혼 등 자녀를 낳고 양육할 가정적 환경을 갖추더라도 출산을 하지 않는지 그 관계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 연구를 이어받아 한국은행이 2023년 11월에 발표한 보고서는 이를 사람들이 느끼는 ‘경쟁압력’이라는 변수를 넣어 보완했다. 한은 보고서는 인구밀도가 경쟁압력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경쟁압력을 많이 느끼는 청년일수록 희망 자녀 수가 유의하게 낮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한은 보고서는 인구밀도라는 변수를 주요하게 다뤘으나, 이 변수 하나에 집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원조’ 연구보다 문제를 온전하게 인식하고자 했다. 이 보고서는 “초저출산은 청년들이 느끼는 높은 ‘경쟁압력’과 고용·주거·양육 측면의 ‘불안’과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인구밀도로 인한 경쟁압력 외에 실질적인 주요 변수를 꼽았다.

즉, “비정규직이 늘면서 양질의 일자리를 향한 취업 경쟁이 심화된 것으로 평가되며 주택가격도 급등하여 전반적으로 청년의 경쟁압력이 높아지고 고용 및 주거 여건이 과거보다 악화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한은 보고서는 해결 방안도 현실적이다. 이 보고서는 “고용·주거·양육 측면의 불안과 경쟁압력을 낮추기 위한 지원과 대책이 필요하며 동시에 그 근저에 있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노동시장 이중구조, 높은 주택가격, 수도권 집중)을 개선하는 구조정책을 추진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의 지원과 대책 중 수도권 집중 개선을 제외하면 기존 저출산 대책과 동일하고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수도권 집중 개선은 두 가지 측면에서 비현실적이다. 첫째, 수도권 집중을 개선하는 데에는 다른 저출산 대책에 비해 훨씬 큰 행정력과 예산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효율적이지 않다.

둘째, 서울의 인구밀도와 출산율 추이는 인구밀도가 높아지면 출산율이 떨어지고, 인구밀도가 낮아지면 출산율이 올라간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서울의 평방킬로미터당 인구밀도는 2019년 1만5000명 대로 떨어진 이후 2025년까지 계속 낮아졌지만, 출산율도 나란히 하락했다. 2024년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58명으로 2023년의 0.55명보다 소폭 상승했으나, 이 한 해 통계는 인구밀도 변수를 뒷받침하기에는 약하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한 사례
원조 논문과 한은 보고서는 인구밀도와 출산율이 인과관계라고 본다. 이는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한 사례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차이를 배우지 않는 연구자는 없다. 예를 들어 빙과류 소비와 열사병 발생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빙과류 소비량이 연중 절정에 이르는 시기에 열사병 환자도 집중된다. 두 변수는 인과관계는 아니다. 즉, 빙과류를 많이들 먹어서 열사병이 많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두 변수를 함께 움직이는 요인은 더위다.

그러나 현실을 분석하는 작업에서는 양자를 혼동하는 사례가 흔히 보인다. 인구밀도는 출산율과 상관관계일 수는 있으나 인과관계는 아니다. 인구밀도와 출산율이 상관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데, 관련이 있을 때에는 높은 인구밀도가 주거비용과 양육비용, 양육여건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인구밀도가 이미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거나 더 올라가는 추세에서도 주거와 양육의 부담에 별 변화가 없다면 출산율은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정책으로 다룰 변수는 인구밀도가 아니라 주거와 양육이다.

이 원고를 작성하는 중에도 상관관계가 인과관계처럼 읽힐 소지가 있는 자료가 보도됐다. 한 신문은 “18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모(母)의 교육정도별 출산통계’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고졸 이하 여성이 낳은 아이는 3만7698명으로 4년 전인 2020년(5만1661명)에 비해 27% 감소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는 같은 기간 대학교 이상 학력을 보유한 여성이 낳은 아이가 8.4% 감소한 것과 비교해보면 크게 감소한 수치”라고 비교했다.

이 통계는 저학력이 저출산으로 이어진다는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저학력은 저소득으로 이어지고, 저소득이 저출산을 낳는 경향이 있다고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이 관계에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은 ‘고졸’ 여성에 대한 대학 교육의 문호와 지원 확대가 아니라, 출산 및 육아와 관련해 ‘저소득’ 여성을 지원하는 방안이어야 한다.

최근 출산율 반등은 결혼과 출산, 양육을 지원하는 종합적인 대책이 효과를 거둔 결과라고 이해할 수 있다. 종합적인 대책이 더 알차게 자리 잡아 전달되는 경우 출산율 상승이 추세로 자리 잡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출산율 상승은 일시적인 반등에 그칠 것이다. 현재의 종합 대책에 인구밀도를 추가할 자리는 없다. 인구밀도론이 한때 유행에 그친 듯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다시 주장하건대, 수도권과 대도시의 인구밀도를 낮추는 일은 비현실적이다. 예컨대 청년층에게 주거를 더 공급하기 위한 용적률 제한 완화는 인구밀도를 높이지만 출산율도 올릴 수 있다.

“물이 빠지면 누가 수영 팬티를 입지 않고 있었는지 보인다.” 투자자 워런 버핏이 한 말이다. 주식시장이 호황일 때는 다들 수익을 올린다. 주가지수가 크게 빠지면 누가 불황에도 덜 깨지는 우량주를 보유하고 있는지, 누가 속절없이 추락하는 주식을 갖고 있는지 드러난다.

이 말을 응용하면, “상황이 바뀐 다음에는 누가 설명력이 약한 주장을 했는지 잘 보인다”가 된다. 이 글은 출산율이 다소 상승한 상황에서 과거 제기된 인구밀도론을 복기해봤다. 저출산을 인구밀도 하나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색다르긴 했으나 무리였다.

논의를 일반화하면, 사회 현상이 어느 한 변수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한 변수로 사회 현상을 분석하려는 접근은 대부분 설명력도 실행력도 낮을 수밖에 없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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