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더봄] 꽃차 한 잔의 예방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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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 더봄] 꽃차 한 잔의 예방경제학

여성경제신문 2026-06-05 10:00:00 신고

한 잔의 꽃차에는 농촌의 밭과 도시의 찻잔이 함께 들어 있다. 메리골드의 노란빛, 패랭이의 분홍빛, 민트의 초록빛이 어우러진 작은 잔 속에서 농업의 미래와 건강의 문화, 그리고 농촌관광의 가능성이 천천히 우러난다. 예방경제학은 거창한 제도가 아니라 이런 한 잔에서 시작된다. /김성주
한 잔의 꽃차에는 농촌의 밭과 도시의 찻잔이 함께 들어 있다. 메리골드의 노란빛, 패랭이의 분홍빛, 민트의 초록빛이 어우러진 작은 잔 속에서 농업의 미래와 건강의 문화, 그리고 농촌관광의 가능성이 천천히 우러난다. 예방경제학은 거창한 제도가 아니라 이런 한 잔에서 시작된다. /김성주

노란 꽃 한 송이가 눈을 지킨다

사람들은 꽃 앞에서 참 솔직해진다. 봄이면 벚꽃 아래에서 셀카를 찍느라 길이 막히고 여름이면 연꽃 연못 앞에서 갑자기 시인이 된다. 가을이면 국화 축제장으로 우르르 몰려가 향기를 들이마신다. 철마다 꽃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사실 계절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야생화 매니아다. 도시의 꽃은 그들에게 너무 흔하다. 새벽 산길을 오르고, 비탈에 무릎을 꿇고, 풀숲을 헤치며 들꽃 한 송이와 마주한다. 그 한 송이를 보려고 백 리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꽃은 눈으로만 소비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꽃은 말려지고, 우려지고, 향으로 번진다. 찻잔 속에서 일상의 회복을 돕는 웰니스 자원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농업 현장에서는 치유 자원이자 소득원으로도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그 중심에 메리골드가 있다. 메리골드는 노란빛과 주황빛이 선명한 꽃이다. 루테인과 지아잔틴의 원료 식물로 알려지면서 '눈에 좋은 꽃차'로 이름을 굳혔다. 꽃차 시장에서 가장 대중적인 꽃 가운데 하나다.

보령 미친서각마을의 체험관 풍경이다. 손님이 들어서면 앞치마를 두른 주인 부부가 가장 먼저 내어주는 것은 설명이 아니라 메리골드 한 잔이다. 노란빛 차 한 잔이 농촌의 환대와 낭만을 동시에 전한다. 끌과 망치로 글씨를 새기는 서각 체험 사이로 차의 향이 천천히 번진다. /김성주
보령 미친서각마을의 체험관 풍경이다. 손님이 들어서면 앞치마를 두른 주인 부부가 가장 먼저 내어주는 것은 설명이 아니라 메리골드 한 잔이다. 노란빛 차 한 잔이 농촌의 환대와 낭만을 동시에 전한다. 끌과 망치로 글씨를 새기는 서각 체험 사이로 차의 향이 천천히 번진다. /김성주

나도 눈이 침침해지면 커피 대신 메리골드차를 꺼낸다. 메리골드차를 마시러 일부러 보령의 미친서각마을을 찾기도 한다. 미친서각마을은 서각예술로 유명한 마을이다. 마을의 서각 체험관에 들어서면 먼저 메리골드차를 내어준다. 부드러운 노란빛의 차 한 잔이 손님에 대한 환대와 농촌의 낭만을 함께 전해 준다. 끌과 망치로 나무판에 글씨를 새기는 서각 체험 사이에 차 한 잔을 마시는 여유가 끼어든다. 그리고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물론 이것이 '꽃차 한 잔이 질병을 치료한다'는 뜻은 아니다. 꽃차는 치료제가 아니다. 건강한 생활습관을 돕는 일상의 음료다. 꽃차를 선택하는 행위는 건강에 대한 나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치료에 앞선 예방의 영역이다.

병이 난 뒤 병원을 찾는 것과 병이 나지 않도록 오늘을 관리하는 것은 같은 '건강'이지만 전혀 다른 경제다. 전자는 사후 치료의 비용이고 후자는 예방의 투자다. 경제학에는 이 둘의 차이를 정밀하게 따지는 분야가 있다. 바로 예방경제학(Economics of Prevention)이다.

예방경제학, 병원 가기 전의 경제학

예방경제학은 질병이 발생한 뒤 치료에 투입되는 비용보다 질병을 막기 위한 사전 투자가 훨씬 효율적이라는 경제학적 관점이다. 1970년대 미국의 경제학자 마이클 그로스먼(Michael Grossman)은 건강을 하나의 자본으로 보는 '건강 자본 모델'을 제시했다. 건강은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투자하고 축적하는 것이라는 시각이다.

병원비·수술비·약값은 무너진 건강을 복구하는 사후 비용이다. 반면 걷기, 수면, 식습관 관리, 스트레스 해소는 건강 자본을 쌓는 예방 투자다. 예방경제학은 이 두 가지를 단순한 건강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선택의 문제로 바라본다. 그렇다면 꽃차 한 잔은 어디에 속할까. 두말할 것도 없이 예방 투자 쪽이다.

건강 자본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잠을 자고, 걷고, 좋은 음식을 먹고, 스트레스를 줄이며 자기 몸의 신호를 살피는 생활이 반복될 때 조금씩 축적된다. 꽃차의 가치는 성분표에만 있지 않다. 찻잔을 준비하고, 꽃잎이 뜨거운 물속에서 천천히 피어오르는 모습을 바라보고, 향을 맡으며 잠시 멈추는 그 시간 자체가 건강 자본을 돌보는 행위다. 메리골드 꽃차 한 잔은 거창한 처방이 아니지만 일상이 무너지지 않게 붙들어주는 작은 예방 투자다.

여기서 개념 하나가 더 등장한다. '가치재(merit goods)'다. 가치재란 개인에게도 이롭고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지만 시장에만 맡겨두면 충분히 소비되지 않는 재화와 서비스를 말한다. 교육, 건강검진, 예방접종, 문화예술이 대표적이다. 사람들이 당장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소비를 미루지만 나중에 사회 전체가 그 비용을 치르는 것들이다. 꽃차는 바로 이 가치재의 성격을 갖는다. '그냥 맛있는 차'가 아니라 웰니스 산업의 영역에 속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너지기 전에 들였어야 할 비용

예방의 경제는 찻잔 속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요즘 그 교훈을 아주 비싸게 다시 배우고 있다.

지난 5월 GTX-A 삼성역 지하 공사 현장에서 기둥에 들어가야 할 철근 178t이 누락된 사실이 드러났다. 도면에는 두 줄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한 줄만 들어갔다. 같은 달 서소문에서는 철거 중이던 고가차도가 무너져 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미 D등급 진단을 받은 노후 시설이었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막을 수 있었다. 균열도 보였고, 등급도 매겨졌고, 시공 오류도 알았다. 그런데 보강은 미뤄졌고 보고는 늦춰졌다. 사후에 들어갈 비용과 사전에 들였어야 할 비용을 저울에 올리면 답은 늘 같다. 미리 했어야 했다. 그것도 사람 목숨까지 얹지 않고.

여기서 예방경제학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예방을 가능하게 하려면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사고가 나면 현장 작업자에게만 멍에를 씌우고 끝나는 일이 많다. 그러나 보고가 묵살된 자리, 보강 예산이 깎인 자리, 등급 진단을 무시한 자리에는 늘 더 위쪽의 의사결정자가 있다. 최고 의사결정자가 책임을 지지 않는 사회에서 예방은 자라지 않는다. 책임이 위로 올라갈수록 예방의 가치는 아래에서 단단해진다. 이것이 예방경제학이 말하는 또 하나의 진실이다.

건강도, 도시도, 농촌도 다르지 않다. 예방은 지루하다. 사고는 뉴스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뒤늦게야 예방의 값을 깨닫는다. 꽃차 한 잔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고가 나기 전에 마시는 차. 무너지기 전에 들이는 비용. 찻잔 속에도 인프라의 교훈이 우러나고 있다.

주황빛 메리골드가 무리 지어 피어난 농촌의 밭. 도시 소비자가 만나는 한 잔의 꽃차는 이곳에서 시작된다. 농부가 꽃을 심고 거두는 1차 산업, 가공을 거치는 2차 산업, 체험과 관광으로 이어지는 3차 산업이 한 송이 꽃에서 출발한다. 6차산업의 교과서가 펼쳐지는 풍경이다. /김성주
주황빛 메리골드가 무리 지어 피어난 농촌의 밭. 도시 소비자가 만나는 한 잔의 꽃차는 이곳에서 시작된다. 농부가 꽃을 심고 거두는 1차 산업, 가공을 거치는 2차 산업, 체험과 관광으로 이어지는 3차 산업이 한 송이 꽃에서 출발한다. 6차산업의 교과서가 펼쳐지는 풍경이다. /김성주

꽃밭에서 찻잔까지, 농촌이 빚어내는 웰니스

가치재로서의 꽃차는 도시 소비자의 찻잔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 출발점은 농촌의 밭이다. 누가 꽃을 심고, 말리고, 우려낼 것인가. 여기서 꽃차는 또 다른 옷을 갈아입는다. 6차산업의 옷이다.

농촌에서 꽃차는 6차산업, 즉 농촌융복합산업과 잘 맞는다. 1차 농산물 생산에 그치지 않고 2차 가공, 3차 체험·관광으로 영역을 넓혀 소득을 높이는 방식이다. 밭에서 꽃을 수확해 말리면 가공품이 된다. 찻잔에 우려내면 음료가 된다. 여기에 꽃차 만들기, 블렌딩 교육, 다도 체험, 치유농업 프로그램이 결합되면 서비스 상품이 된다. 하나의 꽃이 1차·2차·3차 산업을 순서대로 통과하는 것이다. 6차산업의 교과서 같은 사례다. 꽃 한 송이가 농촌의 다리 셋을 건너는 셈이다.

꽃차는 메리골드만이 아니다. 국화는 가을 정서와 전통 차문화를 품고 있다. 구절초는 향토성과 계절성을 갖춘 농촌 경관 자원이다. 캐모마일은 휴식과 수면 이미지로 이미 세계적 대중성을 확보했다. 장미는 향기·미용·선물경제와 연결된다. 연꽃은 사찰음식·명상·치유관광과 궁합이 좋다. 목련은 봄의 짧은 계절성을 역이용해 희소가치 있는 고급 꽃차를 만들 수 있다. 팬지와 비올라는 색채가 강해 블렌딩 체험과 교육 콘텐츠로 제격이다. 중요한 건 꽃의 효능을 과장하는 일이 아니다. 꽃마다 가진 색, 향, 계절, 이야기, 체험성을 어떻게 상품과 프로그램으로 엮느냐다.

꽃차는 경험재(experience goods)이기도 하다. 경험재란 직접 써보기 전에는 그 가치를 충분히 알기 어려운 상품이다. 영화도, 레스토랑도, 여행도 경험재다. 꽃차도 마찬가지다. 사진만 보고는 향을 알 수 없고, 설명만 듣고는 입안에 남는 여운을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꽃차의 가치는 체험 속에서 커진다.

농가에서 꽃을 보고, 직접 꽃잎을 고르고, 말린 꽃을 블렌딩하고, 차를 우려 마시는 과정은 단순한 구매보다 훨씬 깊은 기억을 남긴다. 한 봉지의 꽃차를 파는 것과 꽃차가 만들어지는 시간을 파는 것은 전혀 다른 경제다.

농촌 입장에서 꽃차는 작은 자원으로 큰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분야다. 대규모 시설이 없어도 시작할 수 있다. 지역의 경관과 계절을 담을 수 있다. 고령 농가, 여성 농업인, 소규모 농가도 참여하기 쉽다. 꽃밭은 방문객을 부르고, 꽃차는 체류 시간을 늘리며, 체험은 부가가치를 높인다. 여기에 지역 음식·숙박·치유농업·로컬푸드 매장·농촌 카페가 연결되면 꽃차는 하나의 상품을 넘어 지역 웰니스 관광의 매개가 된다.

다시 보령의 미친서각마을이 떠오른다. 메리골드 한 잔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서각 한 자루로 시간을 새기는 그 마을. 그곳에서는 노란 차 한 잔이 약 한 알을 대신한다. 예방경제학이 농촌에서 작동하는 가장 부드러운 방식이다

건강한 사회란 무너진 뒤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고치는 사회가 아니다. 무너지기 전에 생활 속에서 회복의 장치를 마련하는 사회다. 예방경제학은 거창한 제도 속에만 있지 않다. 하루를 잠시 멈추게 하는 찻잔 속에도 있다. 고가의 건강기능식품이나 화려한 웰니스 시설만이 답은 아니다. 때로는 농가에서 정성껏 말린 꽃차를 마시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이 더 근본적인 치유가 된다.

메리골드의 노란빛은 눈을 즐겁게 하고, 국화의 향은 가을을 불러오며, 연꽃의 맑은 기운은 마음을 가라앉힌다. 꽃은 들판에서 경관이 되고, 찻잔에서 회복이 되며, 농촌에서는 산업이 된다. 꽃차 한 잔은 작은 소비다. 하지만 그 안에는 농업의 미래, 건강의 문화, 농촌관광의 가능성이 함께 우러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sungzu@naver.com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한양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관광과 엔터테인먼트를 전공했다. 삼성에버랜드에서 오랫동안 '환상의 나라'를 설계하며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현재는 슬로우빌리지 대표이자 컨설턴트로 변신해 농촌에 행복의 마법을 부리는 중이다. 한국수달보호협회 수도권서부지회장으로서 생태 보호에 앞장서고 있으며, 한국사회적농업협회 부회장을 맡아 치유농업과 6차산업을 이끌고 있다. 사람과 생명이 함께 웃고, 모든 이가 즐거운 세상을 만드는 것을 유쾌한 사명으로 삼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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