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이예서 기자】 엔씨와 엔비디아의 20년 동맹이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오는 7일 서울에서 엔씨 김택진 대표와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의 회동이 예정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구체적인 장소와 의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회동 소식이 전해진 직후 엔씨 주가가 급등하며 시장의 기대감이 반영됐다. 업계는 이번 만남을 단순한 게임 기술 협력을 넘어 피지컬 AI와 로보틱스 분야로 양사 관계가 확장되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젠슨 황 CEO의 이번 방한은 SK, LG 등 국내 주요 그룹사들과 연계된 일정이 중심이다. 이 가운데 엔씨 김 대표와의 만남은 별도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사 대표와의 개별 회동이 공식 방한 일정에 포함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가 이번 만남에 주목하는 이유는 엔씨와 엔비디아가 차세대 AI 시장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엔씨는 2025년 AI 전문 자회사 NC AI를 출범시킨 데 이어 올해 초 국내 기업·대학·지자체 등 53개 기관이 참여하는 ‘K-피지컬AI 얼라이언스’를 공개했다. 생성형 AI를 넘어 로봇이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목표다. 관련 기술은 향후 반도체 물류, 제조, 공항, 제철소 등 다양한 산업 현장에 적용될 전망이다.
NC AI의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설립 6개월 만에 정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기술 역량을 인정받았고,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이 주관하는 ‘피지컬 AI 모델 학습을 위한 월드 파운데이션 모델(WFM) 기술개발’ 과제도 수행 중이다. 뿐만 아니다. 현대로템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국방과학연구소의 피지컬 AI 기반 로봇 시스템 국책 과제까지 수주하며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엔씨는 이번 협력 논의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적 강점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 자체 거대언어모델(LLM) ‘바르코(VARCO)’를 비롯해 AI 기반 모션·음성 합성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20년 이상 MMORPG를 운영하며 축적한 대규모 실시간 데이터 처리 경험과 물리 시뮬레이션 역량도 갖추고 있다. 이 같은 자산은 피지컬 AI 개발 과정에서 핵심 기반 기술로 활용될 수 있다는 평가다.
엔비디아 역시 유사한 방향에서 전략을 확장하고 있다. 자율주행, 산업용 로봇, 디지털 트윈을 중심으로 생태계 구축을 강화하며, AI 반도체 기업을 넘어 현실 세계와 AI를 연결하는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 중이다. 이 과정에서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고 가상 환경을 구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게임 산업이 새로운 협력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게임은 AI 기술을 실제 서비스로 구현하고 이용자 경험으로 연결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산업”이라며 “엔비디아 역시 기술 활용 범위를 넓히기 위해 게임사들과 지속적으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동양대학교 김정태 게임학부 교수는 김 대표와 젠슨 황 CEO의 회동을 “상당히 상징적인 만남”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AI 기술의 수익화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게임은 이를 실제 수익 모델로 연결할 수 있는 대표적인 킬러 콘텐츠”라며 “김 대표는 한국 온라인 게임 산업의 토대를 만든 인물 중 한 명인 만큼 이번 회동이 갖는 의미도 크다”고 말했다.
양사의 상호 보완적 강점도 주목된다. 김 교수는 “엔비디아는 GPU와 AI 인프라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콘텐츠를 직접 서비스하는 기업은 아니다”라며 “반면 엔씨는 MMORPG 운영 경험과 대규모 이용자 데이터를 다루는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어 엔비디아에도 필요한 파트너”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협력 방식으로는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AI 기반 게임 개발은 물론 피지컬 AI 플랫폼, 산업용 인프라, 로보틱스 분야 공동 연구까지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관측이다. 김 교수는 “대규모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MMORPG 환경에 특화된 기술 개발이 이뤄질 수 있고, 차세대 게임 서비스에 최적화된 인프라 협력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양사의 인연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엔씨와 엔비디아는 ‘리니지Ⅱ’와 GeForce FX를 중심으로 전략적 제휴를 맺고 공동 마케팅과 기술 협력을 시작했다. 이후 ‘아이온’, ‘블레이드&소울’, ‘쓰론 앤 리버티’를 거쳐 최근 차기작 ‘신더시티’까지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신더시티’는 엔비디아 RTX 플래그십 타이틀로 선정됐으며 DLSS 4 멀티 프레임 생성, 레이 리컨스트럭션 등 최신 그래픽 기술이 적용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엔씨와 엔비디아는 20여년간 관계를 이어온 파트너로, 이번 만남은 양사의 폭넓은 협력 관계를 재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게임과 AI의 접점이 넓어지고 있는 만큼 새로운 사업 기회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GPU 기반 그래픽 기술로 시작된 20년의 인연은 이제 피지컬 AI와 로보틱스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업계는 이번 회동으로 국내 게임사가 단순한 기술 수요처를 넘어 AI 시대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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