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전국 16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12곳을 차지했다. 4년 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에 당했던 패배를 되갚으며,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치러진 전국 단위 선거에서 지방권력의 주도권을 가져오게 됐다.
하지만 민주당이 완승을 말하기에는 뼈아픈 결과도 적지 않았다. 최대 승부처였던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정원오 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막판 역전승을 거뒀고,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는 한동훈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경기 평택을 재선거에서도 국민의힘 유의동 후보가 민주당 김용남 후보와 조국혁신당 조국 후보를 꺾었다.
국민의힘은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서울과 대구·경북·경남 등 4곳을 지키는 데 그쳤다. 14곳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는 민주당이 9곳, 국민의힘이 4곳, 무소속이 1곳을 각각 차지했다.
국회 입성 한동훈, 승리 요인은
가장 큰 정치적 파장은 부산 북구갑에서 나왔다. 한동훈 후보가 민주당 하정우 후보와 국민의힘 박민식 후보를 모두 꺾고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당초 전재수 전 민주당 의원이 부산시장 선거로 옮기며 비게 된 지역에서 민주당은 하정우 전 AI미래기획수석을 전략 공천했고, 국민의힘은 이 지역에서 재선을 지낸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을 내세웠다. 보수표 분산 우려 속에 선거 막판 구도는 한동훈 대 하정우로 굳어졌다.
이른바 '국민의힘 당원게시판' 논란 등을 둘러싸고 지도부에 의해 제명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한 한 후보는 선거 초반부터 '당 조직 없이 혼자 싸우는 후보'라는 이미지를 앞세웠다. 공식 선거운동 전까지는 비서진만 대동한 채 시장과 상가를 돌았고, 현장 인사와 유권자 반응을 담은 짧은 영상을 SNS에 올리며 다른 후보들의 조직형 유세와 차별화했다.
부산 구포시장에서 만난 일부 유권자들은 SNS에서 한동훈 후보 관련 영상을 자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고 말했다.
한 후보는 지역 현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사전투표를 마친 뒤에도 "이번 북갑 선거는 20년 동안 정체된 북구를 새롭게 발전시키고, 보수를 재건하고, 이재명 정권 폭주를 박살 내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선거"라고 말했다. 지역 발전과 보수 재건, 정권 견제를 하나로 묶으며 북구갑 보궐선거를 단순한 지역 선거가 아닌 보수 재건과 정권 견제의 승부로 확장한 셈이다.
하정우 후보는 전재수 전 의원의 지역 기반이라는 자산을 안고 출발했다. 북구갑은 2024년 총선에서 부산 18개 지역구 가운데 민주당이 유일하게 승리한 지역이다. 하 후보 역시 이재명 정부의 AI 인재로 영입된 인물이라는 점을 앞세웠고, 선거 기간에는 전재수 부산시장 후보와 함께 유세와 사전투표에 나서며 '여당 후보'의 장점을 부각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한계로도 작용했다. 전재수 전 의원의 후광은 초반 인지도와 조직력을 보완해줬지만, 하 후보 개인의 경쟁력과 지역 대표성은 충분히 부각되지 못했다. 한 후보는 전재수 후보와 하 후보가 사전투표에 함께 나선 것을 두고 "투표도 혼자 못하느냐"고 비판하며, 하 후보를 '정권과 전재수의 지원에 기대는 후보'로 꼬집었다.
선거 초반 '악수 뒤 손 털기' 논란, AI 기업 주식 거래를 둘러싼 이른바 '주식 파킹' 의혹도 정치 신인인 하 후보에게 부담으로 남았다. 하 후보는 악수 논란에 대해 선거 초반 미숙하게 대응한 부분이었다고 해명했고, 주식 거래 논란에 대해서는 계약에 따른 정상 거래였다고 반박했다.
한동훈 후보의 당선으로 국민의힘은 복당 문제와 보수 재건 논쟁을 동시에 떠안게 됐다. 한 후보는 당선 직후 "이번 선거 민심을 바탕으로 보수 재건이 될 것"이라며 국민의힘 다수 의원들도 자신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역전승 오세훈
서울시장 선거는 이번 지방선거 최대 승부처였다. 결과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승리였다. 오 후보는 출구조사와 개표 초반 열세를 뒤집고 정원오 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막판 역전에 성공했다.
오 후보의 승리에는 견제론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선거 전반의 주도권을 쥔 상황에서, 서울 유권자 일부는 권력 균형과 견제 필요성에 무게를 뒀다. 오 후보가 막판까지 내세운 '민주당 독주 견제론'도 초박빙 승부에서 보수층 결집과 중도층 흡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판세를 흔든 변수도 적지 않았다. 정 후보를 둘러싼 이른바 '칸쿤 출장 논란', 과거 폭행 전과 해명 공방, TV토론 회피 논란은 막판까지 검증 이슈로 남았다. 오 후보 역시 광화문광장 '감사의 정원' 논란과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에 따른 안전 책임론을 피하지 못했다. 다만 오 후보는 사고 직후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현장을 찾는 등 '시정 책임자' 이미지를 앞세워 방어선을 만들었다.
선거 초반 불리하던 선거판을 '인물론'과 행정 경험으로 돌파한 오 후보는 서울시장 사상 첫 5선 기록을 세웠다.
표 분산에 평택 이변
경기 평택을 재선거에서는 국민의힘 유의동 후보가 당선됐다. 조국 조국혁신당 후보와 김용남 민주당 후보가 맞붙은 범여권 내부 경쟁에 관심이 쏠렸지만, 최종 결과는 국민의힘의 승리였다.
평택을의 결과는 야권 후보 분산의 대가라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각각 후보를 내면서 범여권 성향 표가 갈렸고, 국민의힘은 지역 기반을 가진 유 후보를 앞세워 그 틈을 파고들었다. 조 후보는 인지도와 지지층 결집력을 갖고 있었지만, 평택 지역성과의 거리감을 극복하지 못했다.
조 후보의 낙선은 조국혁신당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조 후보가 원내에 입성했다면 민주당과의 합당 논의에서 조국혁신당이 일정한 주도권을 가질 수 있었지만, 낙선으로 합당 논의는 당장 속도를 내기 어려워졌다.
평택을 선거 과정에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사이의 감정의 골이 깊어진 점도 양측에 상처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대구 지키고, 부산 내줬다
국민의힘은 대구와 경북, 경남을 지켰다. 대구시장 선거에서는 추경호 국민의힘 후보가 김부겸 민주당 후보와 박빙 대결 끝에 가까스로 승리했다. 민주당은 김 후보의 인물론을 앞세워 대구에서 돌풍을 시도했지만, 막판 보수 방어 심리를 넘지는 못했다.
반면 부산시장 선거에서는 전재수 민주당 후보가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를 꺾었다. 민주당이 부산시장 자리를 가져간 것은 2018년 오거돈 전 시장 이후 두 번째이자, 8년 만의 탈환이다.
전 후보는 당선 소감에서 "변화를 선택한 시민의 뜻을 무겁게 받들고 열심히 일하겠다"며 "말보다 성과와 결과로 증명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에서는 시장 선거와 북구갑 보궐선거의 선택이 엇갈렸다. 부산시장 선거에서는 민주당 전재수 후보를 택했지만, 북구갑 보궐선거에서는 무소속 한동훈 후보를 선택했다. 같은 부산 안에서도 지방정부 운영과 보궐선거의 표심이 다르게 움직인 셈이다.
'당권 투쟁' 본격화?
선거 이후 정치권의 시선은 당 내부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지도부 책임론과 한동훈 복당론이 동시에 불거지는 분위기다.
장 대표는 선거 직후 "저에게 주어진 막중한 책임을 외면하지 않고, 당원들과 함께 우리가 나아갈 새 길을 찾겠다"며 사퇴 요구에 선을 그었다.
서울시장 선거를 지켜냈고,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4석을 확보했다는 점을 들어 최악의 참패는 피했다는 내부 평가도 적지 않지만, 부산 북구갑에서 국민의힘이 공천한 박민식 후보가 3위로 밀리고, 당에서 제명된 한동훈 당선인이 원내 입성에 성공한 결과는 장동혁 체제에 직접적인 타격이 됐다.
친한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지도부 거취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공개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안상훈 의원은 한 당선인의 국회 입성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승리를 두고 "합리적 보수 재건의 신호탄"이라며 "당 지도부는 거취를 속히 정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정훈 의원도 "우리 당이 사랑받는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지선이 변곡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4일 오후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는 서울 송파구 등에서 불거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규탄이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특히 국민의힘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두고 중앙선관위를 강하게 비판하며 국정조사와 책임자 사퇴를 요구했다.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국가 헌법기관이 초래한 중대한 선거관리 실패이자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투표 제도의 근본을 훼손한 폭거"라며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책임자들의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민주당에서는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정청래 대표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국적으로는 승리했지만, 상징성이 큰 승부처에서 잇따라 패한 만큼 정 대표의 연임 가도에도 부담이 생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 중진인 김영진 의원은 BBC 코리아와의 통화에서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민주당이 제기한 국가 정상화와 '일 잘하는 지방정부'에 대해 국민들이 대체로 동의한 것"이라면서도 "서울은 민심의 풍향계이자 지방선거 승리의 큰 가늠자였다는 점에서 상처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김 의원은 정청래 지도부 책임론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책임론까지 이어질지는 더 판단하고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며 "거기까지 간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정 대표는 전북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이원택 후보가 무소속 김관영 후보를 꺾으면서 최악의 공천 책임론은 피했다. 하지만 서울시장 패배와 재보선 부진을 계기로 중도층 전략과 후보 검증, 범여권 연대 방식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직면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민석 국무총리의 당권 도전 가능성도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김 총리는 조만간 민주당 전당대회 출마를 위해 사의를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인천 연수갑에 당선된 송영길 후보의 복귀까지 맞물리면서 민주당 당권 경쟁은 지방선거 직후 빠르게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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