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진행된 가운데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일부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4일 새벽, 과천 청사에서 의원회의 후 입장문을 내고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의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현재 진행되는 개표를 중단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개표가 종료되면 즉시 이번 사안에 대한 진상 규명 및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가능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전날 수백여 명의 시민들은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 앞에서 밤샘 시위를 벌였고, 문제가 된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도 시위가 열렸다.
시위 참가자들은 "선거 무효", "개표 중단"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개표 중단과 재투표 시행, 책임자 문책 등을 요구했다.
핵심 쟁점은?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강남구, 서초구 등 서울의 14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한 사태가 발생했다. 국민의힘은 자체 집계를 통해 서울 14개 투표소와 더불어 인천 연수구 2곳과 경기도 화성시 동탄구 등 총 17곳에서 관련 문제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투표 종료 시각인 6시 이후 선거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출구 조사 결과가 공개된 가운데 일부 유권자들이 뒤늦게 투표하게 됐고, 모든 유권자가 동일한 조건에서 투표에 참여했는지, 선거의 공정성이 훼손된 것이 아닌지를 둘러싼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또 다른 쟁점은 실제로 얼마나 많은 유권자가 영향을 받았는지다. 실제로 투표하지 못한 유권자가 발생했으며, 이는 선거 관리 과정에서 유권자의 참정권 침해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선거법 경험이 많은 변호사는 4일 BBC에 유권자들이 "자유로운 투표의 제한"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거의 대원칙은 개인이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투표해야 한다며, 유권자들은 "다른 사람에게서 부당한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이 후보자의 공약을 보고 주체적인 의사로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몇 명이 투표를 못 했는지, 또 몇 명이 자유로운 투표의 제한을 받았는지 규모에 따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자유로운 투표의 제한을 받은 인원이 대규모로 있으면 "재선거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비밀선거와 더불어 자유선거 원칙도 중요하다며, 출구조사 결과가 공개된 후 투표가 이뤄졌다면 자유선거 원칙이 침해됐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기초의원이나 기초단체장 선거의 경우 적게는 수십 표에서 수백 표 차이로 당선 여부가 갈릴 수 있다며, 기초 단위에 출마한 후보들은 굉장히 민감할 문제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재선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투표하지 못한 유권자들이 투표했다면 결과가 바뀔 가능성을 따져봐야 하는데, 정확한 현황 파악이 어렵고, 출구 조사 이후 투표한 개개인이 이에 대한 영향을 받았는지 인과관계를 따지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또, 공직선거법 제198조는 선거의 재투표를 "천재·지변 기타 부득이한 사유로 인하여 어느 투표구의 투표를 실시하지 못한 때와 투표함의 분실·멸실 등의 사유가 발생한 때에는 관할선거구선거관리위원회는 당해 투표구의 재투표를 실시한 후 당해 선거구의 당선인을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적 소송으로 이어질까?
선거 절차에 위법 사항이 있었는지를 따져보기 위해선 투표 전 절차와 투표 이후의 수습 절차를 나눠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직선거법 제 151조에 따르면 "투표용지와 투표함은 구·시·군 선거관리위원회가 작성하여 선거일 전일까지 읍·면·동 선거관리위원회에 송부"해야 한다.
또 공직선거법 155조는 투표 시간을 규정하고 있는데 "투표소는 선거일 오전 6시에 열고 오후 6시에 닫는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마감할 때 투표소에서 투표하기 위하여 대기하고 있는 선거인에게는 번호표를 부여하여 투표하게 한 후에 닫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는 법률상 원칙적으로 투표용지는 하루 전까지 투표소에 도착해야 하는데, 이것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절차상의 하자가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투표 마감 이후에도 예외적으로 투표소 안에 있는 사람들은 6시 이후에 투표할 수 있지만, "투표소에 갔다가 용지가 없어 투표를 못 한 사람들에게 대기표를 주고, 집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 투표를 한 사람까지 있다면 이 경우까지 법률이 허용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의 입장이다.
즉, 투표 전 절차만 보면 "분명한 하자가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후 수습 절차는 판단의 영역이다.
선거법 경험이 많은 변호사는 투표함이 개표소에 도착하면 개표를 진행할 수 있다며 투표가 끝나지 않은 채 개표가 진행되는 것이 "명시적으로 금지된다, 혹은 반드시 위법하다"는 법률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출구 조사 결과가 6시에 나온 상태에서 투표를 진행하는 것이 정당한지, 투표 시간이 지난 후에 투표가 일정 부분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어느 범위까지 허용돼야 하는지는 "판단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선관위의 실수로 투표를 못 한 유권자가 있다면 투표권 침해를 받은 것이기 때문에 국가배상 사유가 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는 공무원 개인이 고의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초래한 것은 아니겠지만, 중과실이라는 판단이 나온다면 개인 배상 책임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결국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을 종합해 본다면, "투표 절차에 위법 소지가 있는 건 맞지만" 이것이 곧 재선거 사유가 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평가이다.
결국 핵심은 투표하지 못한 유권자의 규모와 이들이 실제 투표했다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지 여부다.
다만 현재까지 선관위가 정확한 피해 규모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 얼마나 많은 유권자가 영향을 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 어떤 조사와 절차가 진행될까
기본적으로 선거와 사무 감독 권한이 선관위에 있기 때문에 우선 중앙선관위의 자체 조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선관위는 투표용지 부족이 발생한 경위와 현장 대응 과정이 적절했는지 등을 점검한 뒤, 조사 결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 수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선거 당일 일부 유권자들이 112에 신고한 데다 고소· 고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관련 신고가 접수된 만큼 사실관계 확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는 별도의 법적 대응이 이어질 수 있다.
다만 법률 전문가는 이번 사안이 형사 처벌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공무원이 '고의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초래했다기보다 선거 관리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수나 과실 여부가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형사 책임보다는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나 행정적 책임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투표하지 못한 유권자들은 참정권 침해를 이유로 헌법소원 제기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실제 소송이나 헌법소원이 제기되더라도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향후 논란의 핵심은 투표용지 부족이 발생한 원인과 실제 피해 규모, 그리고 이것이 선거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4일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민주공화국에서 무엇보다 철저해야 할 선거 관리에 납득하기 쉽지 않은 허점이 발생한 점에 대해 매우 큰 유감을 표한다"며 선관위를 질타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관계기관은 행정부가 가진 권한과 책임을 모두 사용해서 문제 발생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고, 또 책임질 것이 있다면 명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며 "적절한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달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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