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작 애니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연출
"완벽하지 않은 누군가를 사랑한 경험 떠올리길"
(서울=연합뉴스) 정래원 기자 =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완벽하지 않은 누군가를 자신보다도 더 사랑하는 경험을 하잖아요. 그래서 (제 영화 속) 캐릭터가 완벽하게 예쁘지 않아도 사랑해주실 거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난 3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이하 '순례자들') 속 캐릭터들의 겉모습은 대중매체에서 그리는 '전형적인 아름다움'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1970년대 TV 만화 '빨간 머리 앤'이나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떠올리게 하는 5~6등신 몸에, 일부 인물은 인종이나 나이, 성별을 쉽게 알 수 없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4일 서울 중구에서 만난 허평강(44) 감독은 "완벽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찾아내려 했다"며 캐릭터 디자인의 배경을 소개했다.
허 감독은 "눈이 작거나 턱이 길거나 사각턱인 경우처럼 성형외과에선 '고쳐야 한다'는 소리를 듣는 요소가 가장 아름다운 부분으로 보일 때가 있지 않나"라며 "보면 볼수록 예쁜, 그런 아름다움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순례자들' 속 지구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과 고통이 가득한 곳이지만, 그런 불완전함 때문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허 감독은 "'순례자들'이 관객분들에게 완벽하지 않지만 가장 사랑하는 어떤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순례자들'은 김초엽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수록된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일본에서 '명탐정 코난:제로의 집행인'(2018), '일본침몰 2020'(2020) 등 작업에 참여한 애니메이션 연출가 허평강 감독이 처음으로 총감독을 맡은 작품이다.
허 감독은 "원작을 읽으면서 지구와 행성을 오가는 이야기를 2D로 보면 매우 아름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SF이지만 따뜻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배우 김향기(소피 역)와 박지후(데이지), 이주영(올리브)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고,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캐릭터 디자이너 위현송이 허 감독과 함께 작업했다.
영화는 유토피아 같은 행성의 아이들이 성년을 앞두고 지구로 '순례'를 떠난다는 원작의 기본 서사를 그대로 따랐다.
하지만 소피가 올리브의 이야기를 듣는 청자에 머물렀던 원작과 달리 영화에선 비중 있는 주인공으로 부각되는 점이나, 행성 주민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 등은 원작과의 차이점이다.
허 감독은 "소설의 배경 중 영상으로 설명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한 경우가 있었다"며 "일반적인 관객 입장에서 알기 쉽게 바꿨다"고 설명했다.
일부 설정이 각색되며 관객들은 소피와 올리브의 대화를 통해 주요 배경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김초엽 작가는 허 감독의 각색에 대부분 열린 마음이었다고 한다.
허 감독은 "김초엽 작가님이 저에게 '소설과 영상 창작은 별개라고 생각한다. 잘 만들어주고 계시니 자유롭게 만드시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고 떠올렸다.
그는 현재 세 명의 소녀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차기작 시나리오를 구상 중이다.
허 감독은 "예쁘고 공주 같은 캐릭터도 인기 있고 좋지만, 관객들이 '이건 진짜 내 얘기 같은데'라고 생각하게 하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며 "지금 시대의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여성 캐릭터가 나와주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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