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억년 지구 생명史 조명한 '히스토리아 비테이'
(서울=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 "늙은 일개미는 젊은 일개미에 비해 나뭇잎을 써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평생 잎을 써느라 톱날이 무뎌진 것이다. 그렇다고 늙은 일개미들이 바로 퇴물 취급을 당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힘 좋은 젊은이들이 썰어 놓은 나뭇잎을 운반하는 비교적 쉬운 역할을 맡는다."
생태학자 최재천은 신간 '히스토리아 비테이'에서 초고령 사회 한국의 세대 갈등과 '인생 이모작 시대'로의 진입을 언급하면서 중남미 열대 우림 잎꾼개미를 바람직한 이모작 삶의 예로 제시한다.
이들처럼 사회가 구성원에게 적합한 일을 찾아 맡긴다면 불필요한 존재는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책은 46억 년 전 지구 탄생에서부터 생태계가 위기에 처한 21세기까지 지구의 역사를 조명하면서 그 속에서 오늘날 인류가 마주한 위기에 대한 지혜를 찾는다.
지구 생명체의 기원부터 식물, 동물, 인간의 진화와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탄생해서 살아남았는지에 이르기까지 지구 생명의 역사를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다양하고 흥미로운 동식물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낸다.
여기에 팬데믹과 기후 변화 등 인류와 생태계의 위기 상황, 인공지능(AI) 시대의 문제 등을 아우르며 인간사회에 대한 이야기로까지 나아간다.
책은 대학원 시절 생물학 연구실에서 매일 쥐를 20마리씩 죽여야 했던 저자가 어떻게 생명을 죽이지 않고 연구하는 생물학을 하겠다고 결심해 생태학의 길에 들어섰는지, 이후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아우르는 사회생물학자가 됐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가 이 방대하고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던지는 메시지는 일관된다. 바로 '공생'이다.
그는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최초의 한 생명체로부터 나왔다고 강조한다. 38억년 전 물이 있는 환경에서 우연히 자신을 복제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춘 화학물질이 탄생했다. 그것들이 자기 복제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선택을 받으며 분화를 거듭한 끝에 다양한 생명체가 나타났다. 인간 역시 그 속에서 태어났다.
저자는 특히 인류의 조상인 '호모'(Homo)에 속하는 여러 종 가운데 호모 사피엔스만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협력하는 능력에서 찾는다.
"그 덕분에 소수 집단으로 몰려다니던 네안데르탈인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인류가 열등한 신체 조건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건 타인과 소통하고 사회관계를 유지하는 능력 덕분이라는 게 내 주장이다."
하지만 저자는 지구에서 고작 30만년을 산 호모 사피엔스가 털매머드, 도도새, 캐롤라이나 잉꼬 등 얼마나 많은 종을 멸종시켰는지에 관해 이야기하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태초의 하나로부터 왔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거대한 한 가족을 이룬다. (중략) 46억 년 지구 역사에서 인간 종인 호모 사피엔스는 거의 제일 끝에 등장한 막내다. 그런 인간 종에게 가족을 죽일 권리, 조상 동물들이 살았던 지구를 마음대로 훼손할 권리는 없다."
책에는 식물은 동물보다 열등하다거나 동물은 본능만을 따른다는 편견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담겨있다.
또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쇼를 하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가 어떻게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지, 동물원에 갇힌 동물이 얼마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지, 야생동물을 구경거리로 삼고 접촉하는 것이 동물뿐 아니라 인간에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말한다.
저자는 '현명한 인간', 호모 사피엔스는 더 늦기 전에 '자연과 공생하는 인간', '호모 심비우스'로 거듭나야 한다고 촉구하며 서늘한 경고를 보낸다.
"자연과 공생하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도 없다.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으면 결국 우리도 자멸할 것이다."
지식서재. 3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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