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한미 양국이 3일 핵추진잠수함 개발을 위한 첫 후속협의를 마치고 관련 논의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정부가 지난달 '대한민국 핵추진잠수함 개발 기본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한미 간 공식 후속 협의까지 시작되면서 30년 넘게 이어진 핵잠 구상이 구체화하는 모습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핵잠 사업의 성패가 단순한 잠수함 건조를 넘어 원자로 기술 확보와 핵연료 조달, 국제 핵비확산 체계 구축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 한미 협의 착수···'장보고 N' 사업 첫발
4일 외교부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지난 2~3일 서울에서 '한미 정상회담 공동설명자료(Joint Fact Sheet) 원자력 협력 관련 후속협의'를 개최했다. 양국은 박윤주 외교부 제1차관과 앨리슨 후커 미 국무부 정무차관 주재로 협의 발족을 선언하는 모두회의를 개최한 후 국가안보실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주관 아래 범정부 대표단이 참석한 분야별 협의를 진행했다.
특히 이번 협의는 정부가 지난달 26일 발표한 기본계획 이후 처음 열린 공식 후속협의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방부는 기본계획에서 2030년대 중반까지 핵추진잠수함 1번함을 진수하고 2030년대 후반 전력화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리고 사업 명칭을 ‘장보고 N 사업’으로 정했다.
핵잠은 지난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필요성이 제기됐고 이후 여러 정부에서 검토가 이어졌지만, 핵연료 문제와 한미 협의, 국제 비확산 체계 등의 장벽으로 실제 사업화 단계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이번 기본계획은 그동안 개념 검토 수준에 머물렀던 핵잠 구상이 처음으로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사업 계획으로 제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정부는 이번 계획 수립 과정에서 미국과의 사전 조율이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외교부는 지난달 28일 정례브리핑에서 핵잠 기본계획이 미국과의 사전 소통과 조율 아래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또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와 핵잠 추진 문제 역시 초기 검토 단계부터 미국 측과 협의해 왔다고 밝혔다.
◇ 저농축 우라늄 선택···달라진 핵잠 접근법
이번 기본계획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저농축우라늄(LEU) 사용 방침이다. 국방부는 핵잠 원자로의 핵연료로 저농축우라늄을 사용하고, 연료 교체 없이 오랫동안 운용할 수 있도록 장주기 운전이 가능한 원자로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또 핵잠의 건조와 운용, 정비를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국내에서 개발·건조하겠다는 방침도 제시했다.
이는 과거 국내 핵잠 논의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됐던 고농축우라늄 없이는 핵잠 개발이 어렵다는 인식과 차이가 있다. 한국해양전략연구소(KIMS)에 따르면 핵잠은 반드시 고농축우라늄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는 루비급과 바라쿠다급 핵잠에 저농축우라늄 기반 원자로를 적용해 운용하고 있다.
최근 미국·영국·호주의 안보협력체인 오커스(AUKUS) 역시 핵연료 공급과 국제 비확산 체계 구축 문제를 주요 쟁점으로 논의하고 있다. 핵잠 개발이 단순한 잠수함 건조를 넘어 핵연료 관리와 국제 규범 준수를 함께 요구하는 사업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 잠수함보다 어려운 핵원료···핵잠 승부처
업계에서는 핵잠 사업의 성패가 단순한 잠수함 건조를 넘어 핵연료 확보와 원자로 기술 확보 등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이 이미 잠수함 건조 역량을 확보한 만큼 핵잠 사업의 경쟁력은 핵연료 공급 체계와 원자로 기술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이미 장보고급과 손원일급, 도산안창호급 잠수함을 개발·건조하며 잠수함 설계와 건조 역량을 축적해 왔다. 업계에서 핵잠 사업의 핵심 과제가 선체보다 핵연료와 원자로에 있다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도 핵잠을 국내에서 건조하고, 원자로에 사용되는 핵연료는 미국에서 공급받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공급 방식과 협력 구조는 향후 한미 협의를 통해 결정될 전망이다. 외교부는 지난 2일 정례브리핑에서 원전 연료와 관련된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 문제와 핵잠 문제는 구분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핵연료 확보와 별개로 원자로 기술 역시 핵잠 개발의 핵심 과제로 꼽힌다. 핵잠 원자로는 상업용 원전을 단순히 축소한 개념이 아니다. 제한된 잠수함 내부 공간에 탑재돼야 하는 만큼 소형화가 필수적이며, 승조원을 방사선으로부터 보호할 차폐 기술도 확보해야 한다. 또 장기간 수중 작전을 위해 안정적으로 출력을 유지하면서도 적에게 탐지되지 않도록 소음을 최소화해야 한다.
아울러 핵연료가 군사적으로 전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입증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잠에 적용할 안전조치 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한편, 정부는 핵잠 개발을 조선·원자력·방산을 잇는 국가 전략 사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방부는 핵잠 개발이 조선과 원자력, 방산 분야를 연결하는 40여년 규모의 산업 프로젝트가 될 것으로 전망하며 4만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러한 청사진이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이제 관심은 핵잠 필요성 여부가 아니라 핵연료 확보와 원자로 기술이라는 마지막 관문을 어떻게 넘느냐에 쏠리고 있다. 한미 후속 협의가 시작된 가운데 사업의 성패는 핵연료 공급 체계와 비확산 의무 이행 방안을 둘러싼 한미 협의 결과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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