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시장이 국내외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핵심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항암제 분야에만 과도하게 집중되던 글로벌 자본과 국내 연구 인력이 최근 자가면역질환 영역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전체 바이오 시장의 판도가 급격하게 재편되는 모양새다.
특히 연간 1000억 원 규모에 달하는 국내 아달리무맙 시장은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만료 이후 국내 대형 제약사들이 앞다퉈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를 출시하며 점유율 확대를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이 같은 경쟁의 이면에는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국가 의료 재정의 건전한 절감을 도모하려는 산업적 움직임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 바이오 시장의 양대 산맥인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받은 바이오시밀러 라인업을 바탕으로 국내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여기에 대웅제약과 유한양행 등 강력한 국내 병·의원 영업망을 갖춘 전통 제약사들까지 유통 및 마케팅 전선에 가세하면서 약가 인하를 통한 시장 침투 전략이 한층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실제 임상 및 의료 현장에서는 이러한 '가성비 마케팅'과 처방 데이터 축적이 오리지널 의약품의 오랜 독점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처방권을 쥔 일선 의료진과 고액의 치료비용 절감을 절실히 원하는 환자 모두에게 고품질의 바이오시밀러는 이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치열한 가격 인하 중심의 치킨게임이 벌어지는 한편 시장의 다른 한쪽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되고 있다. 기존 치료제가 가진 태생적 한계와 예측 불가능한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신기전 파이프라인들이 본격적으로 글로벌 상업화 단계에 진입하면서 차세대 치료제 시장의 거대한 서막을 열고 있다.
'시밀러 다각화' 셀트리온·에피스 VS '경구용 신약' 대웅·유한 경쟁
국내 자가면역질환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들의 행보는 크게 '바이오시밀러의 리더십 공고화 및 다각화'와 '차세대 혁신 신약 파이프라인 확보'라는 두 갈래로 나뉜다.
먼저 셀트리온은 단순한 복제약을 넘어 복용 편의성을 극대화한 세계 최초의 인플릭시맙 피하주사(SC) 제형 '짐펜트라'를 앞세워 글로벌 매출 1조 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인터루킨(IL)-17A 억제제 계열의 코센틱스 바이오시밀러 'CT-P55'의 글로벌 허가 절차를 밟는 등 타깃 자가면역 질환 영역을 무서운 속도로 확장하는 중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철저한 '임상 데이터 중심의 과학적 마케팅'으로 의학계의 신뢰를 확보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최근 대한류마티스학회 등 국내외 주요 학술대회에서 대표 아달리무맙 바이오시밀러인 '아달로체'를 처방받은 실제 환자들의 52주 장기 추적 처방 데이터(RWE)를 연이어 공개하며 오리지널 대비 동등한 효능과 삶의 질 개선 효과를 과학적으로 재입증했다.
반면 전통 제약사들은 '주사제' 중심의 기존 시장 판도를 뒤흔들 '경구용(먹는 약) 신약'과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카드를 꺼내 들었다.
대웅제약은 환자가 아프고 번거로운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되는 경구용 자가면역치료제 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면역세포인 T세포와 B세포를 동시에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혁신 신약 후보물질 'DWP213388'을 개발해 미국 바이오벤처에 총 6391억 원 규모의 대형 기술수출을 성사시켰으며, 난치성 피부 질환을 타깃하는 'DWP212525' 역시 임상 1상 단계에서 우수한 지표를 나타내고 있다. 자회사 한올바이오파마의 'FcRn 저해제(바토클리맙)'와 함께 그룹사 차원의 막강한 시너지를 내겠다는 구상이다.
유한양행은 검증된 상업화 역량과 공격적인 오픈 이노베이션을 조화롭게 운용하고 있다. 과거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아달로체' 국내 판매 계약을 체결하며 강력한 영업력을 바탕으로 국내 바이오시밀러 대중화를 이끌었던 경험을 갖추고 있다. 동시에 미래 먹거리를 위해 자가면역질환과 면역항암 분야의 핵심 세포인 '조절 T세포(Treg)' 전문 바이오벤처 '굳티셀' 등에 과감한 지분 투자와 공동 연구를 단행하며,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한 퍼스트 인 클래스(First-in-class) 항체 신약 파이프라인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무대 노리는 국산 파이프라인 활약과 국내 기업의 향후 과제
현재 글로벌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시장에서 가장 뜨겁게 주목받는 혁신 기전은 단연 'FcRn(신생아 Fc 수용체) 저해제' 기술이다. 우리 몸의 면역 체계를 광범위하게 완전히 억제하여 감염 위험 등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하던 기존 치료제와 달리, 차세대 FcRn 저해제는 질환을 직접적으로 유발하는 병적인 원인 항체(IgG)만을 선택적으로 차단해 감소시킨다. 덕분에 치료 효과는 극대화하면서도 환자가 겪는 신체적 부담과 부작용은 최소화할 수 있다는 강력한 임상적 장점을 지닌다.
이러한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글로벌 무대에서는 이미 아르젠엑스(Argenx), 존슨앤드존슨(J&J), UCB 등 초대형 글로벌 빅파마들이 중증근무력증(gMG), 만성염증성탈수초성다발신경병증(CIDP) 등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상업화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내외 투자 업계와 글로벌 의학계는 향후 1~2년 내에 이들의 최종 임상 데이터가 대거 도출되면서 기존의 TNF-α 억제제 중심이었던 글로벌 자가면역 시장의 중심축이 이들 신약 세력으로 급격히 이동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향후 국내외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시장은 단순한 '복제약 중심의 약가 인하 경쟁'과 '신기전 경구제 및 항체 신약 개발을 통한 글로벌 영토 확장'이라는 두 가지 거대한 축으로 양분되어 흘러갈 전망이다.
국내 제약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 바이오 생태계가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초기 단계의 가격 치킨게임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체적인 혁신 신약 파이프라인 개발에 기업의 핵심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디른 관계자는 "글로벌 규제 기관의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통과하고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독창적인 자체 파이프라인을 확보하는 것만이 한국 바이오산업이 장기적인 승기를 잡는 유일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폴리뉴스 김진우 기자]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