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오밍주 케머러에 비경수로형 첨단 SMR 건설…SK·SK이노가 2대 주주
美당국서 3월 첨단 원전 건설 첫 승인…대형원전 사고확률의 1천분의 1 수준
韓 원자로 부품으로 2031년 상용화 목표…전력 수요 폭증 속 안전성 입증 관건
(케머러[美와이오밍주]=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3년 전인 2023년 5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미국 와이오밍주의 소도시 케머러를 방문했다.
해발 고도가 2천m가 넘고 인구가 3천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도시다. 와이오밍주 자체가 면적이 한국의 2.5배지만 인구는 60만명도 되지 않는다.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에서 꽤 떨어진 외딴곳에 24㏊의 부지가 확보돼 있었다. 서울의 여의도공원만 한 이 넓은 부지에서 안전성과 효율을 극대화한 첨단 소형모듈원전(SMR) 상용화에 성공하겠다는 게 게이츠의 계획이다.
게이츠는 케머러 방문 당시 "이 시설이 지역 경제와 미국의 에너지 독립, 기후변화 대응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그는 "다른 어떤 청정 에너지원도 원자력만큼 안정적이지 않고 어떤 안정적인 에너지원도 원자력만큼 깨끗하지 않다"고도 했다. 기후 위기의 주범인 탄소배출을 줄이면서 전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려면 원자력이 필수라는 게 게이츠의 생각이다.
게이츠의 이 같은 구상에는 SK㈜와 SK이노베이션이 동참하고 있다. 케머러에서 첨단 SMR을 짓는 미 기업 테라파워에 2022년 8월 2억5천만 달러(3천800억원)를 투자해 2대 주주가 된 것이다.
올해 3월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PC)는 테라파워의 상업용 첨단 원전 건설을 승인했다. NRC가 신규 상업용 원전 건설 허가를 내 준 것은 10년 만이고 300∼500MWe급 비경수로형 SMR과 같은 첨단 원전 건설을 승인한 것은 처음이다.
게이츠의 구상이 현실화하고 있는 케머러에 직접 찾아가봤다. 유타주의 솔트레이크시티 공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북동쪽으로 달렸다.
간간이 농장과 가축떼가 나타날 뿐 미국 특유의 광활한 자연이 이어졌다. 2시간 정도의 이동 끝에 공사가 한창인 현장에 닿았다.
드넓은 부지 한쪽에 소듐테스트시설이 지어지고 있었다. 물이 냉각재인 기존의 경수로형 원전과는 달리 이곳에서 지어지는 SMR은 액체 나트륨을 냉각재로 쓰는 소듐냉각고속로(SFR) 방식이다.
액체 나트륨은 880도의 고온에서도 끓지 않기 때문에 대기압에 가까운 환경에서도 가동이 가능해서 높은 압력을 유지해야 하는 기존의 경수로형 원전보다 위험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게 테라파워측 설명이다.
원자로가 지하에 설치돼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확산할 위험이 적고 비상사태로 전원이 차단돼도 자연 냉각이 가능해 폭발 가능성이 작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제1원전의 전원 공급 상실로 원자로 노심 용융과 방사성 물질 유출 사태가 발생한 바 있다.
기존 원전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출력 조정도 가능해 전력수요 변화에 유연한 대응도 가능하다고 한다. 설비도 단순하고 모듈을 미리 제작해 현장에서의 조립·설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기존 경수로형 원전보다 비용은 절반 수준이고 공사 기간도 짧다.
먼저 지어진 소듐 테스트시설에서 SFR 방식의 SMR 상용화에 필요한 각종 실험과 검증이 실시된다. 인근에 지어진 시뮬레이터 시설에서는 SMR의 실제 운전 및 비상 시나리오 상황을 가정한 안전성 확인 등이 이뤄지고 있었다.
투자에도 SK와 SK이노베이션 등 한국 기업의 비중이 컸지만 원자로 부품 생산에도 한국 기업의 비중이 크다. HD현대와 두산에 수백만 달러 규모의 부품 주문이 이뤄졌고 2029년초에는 부품을 케머러 현장에 가져와 조립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030년에 완공해 1년∼1년반의 시운전을 거쳐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건설을 계획하고 있는 12기 중에 8기는 데이터센터 인근 전력 공급용 건설을 염두에 두고 메타에서 계약했다.
인공지능(AI) 산업의 폭발적 성장이 전력 수요의 폭증을 불러와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가 늘어나면서 SMR 시장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40년까지 SMR 시장이 연평균 22%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2050년 글로벌 원전 투자에서 SMR의 비중이 17∼33%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테라파워의 기술을 활용해 한국 첫 비경수로 기반 SMR 건설을 추진한다. 상업화 목표 시점은 2035년으로, 아시아 시장에도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테라파워의 기술과 경험을 한국 1호 4세대(비경수로형) SMR 프로젝트에 적극 활용하겠다"면서 "미래 산업의 전력난 해소는 물론, 한국이 글로벌 첨단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역시 안전성이다.
기존의 원전 사고 확률이 100만분의 1이라면 SMR의 경우 10억분의 1이라 안전성이 1천배 향상됐다. 사용후핵연료 발생량도 기존 원전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대형 원전에 반경 20∼30㎞의 비상계획구역(EPZ) 설정이 필요한 데 반해 SMR은 300∼400m 정도다. 그만큼 안전성을 상당히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치로 나타나는 안전성이 곧바로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SMR 역시 방식은 달라도 '핵분열' 기술을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기존의 대형 원전과 같다.
테라파워도 케머러에 SMR 건설을 추진하면서 안정성 확보와 주민 설득에 공을 들였다. 인근에 화력발전소가 있어 에너지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지역인데다 와이오밍주 당국에서도 적극 협조한다는 점이 건설 부지 선정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팻 영 테라파워 수석부사장은 "연방정부에서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매우 견고한 원자력 안전성을 입증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예정보다 9개월 빠르게 허가를 받았고 이는 안전성 입증이 매우 강력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앤디 크루시엘 테라파워 건설총괄디렉터는 "우리가 초기에 가장 중요하게 추진한 것 중 하나가 지역사회 참여"라며 "5년 전에 지역사회 소통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주민 설명회도 많이 열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고 말했다.
na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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