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더봄] 수치의 상징이던 마테라가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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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희 더봄] 수치의 상징이던 마테라가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여성경제신문 2026-06-04 10:00:00 신고

돌을 파고 돌을 쌓고 돌의 도시 마테라 /사진=박재희
돌을 파고 돌을 쌓고 돌의 도시 마테라 /사진=박재희

6월은 마테라와 함께 시작되었다.
마테라는 정말 괴이한 곳이다. 사진으로는 수도 없이 봤는데도 막상 눈앞에 서면 도시 전체를 인식하기가 힘들다. 하나의 도시라기보다 거대한 암벽 덩어리에 가깝다. 누군가 오래전에 인간들을 전부 바위 절벽 안에 밀어 넣으려다 절반쯤 성공한 것 같은 모양새다.

우리가 보고 싶었던 건 사시(Sassi) 구역이었다. 절벽과 동굴이 층층이 이어진 마테라의 가장 오래된 부분이다. '사시'는 이탈리아어로 그냥 '돌'이라는 뜻이다. 현장을 보면 왜 이름이 이것밖에 없었는지 바로 이해된다.

돌 위에 돌, 그 위에 또 돌. 돌로 쌓은 집과 돌을 파서 만든 동굴과 돌을 깎아 만든 계단이 수직으로 층층이 올라간다. 건축학적 상상력으로는 구조를 따라가기 힘들다. 지질학 교수를 데려왔어야 했다.

마테라에 처음 사람이 산 건 약 9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이 발견된 사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다. 연배로 따지면 로마보다 한참 위 형님이고, 예루살렘과는 얼추 동갑 정도다. 그 사실을 알고 다시 올려다보면 저 구멍들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선사시대 동굴 주거지를 제대로 보려면 계곡 건너편 산 정상까지 올라가야 한다.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다리 위에서 잠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행이라는 건 원래 걷는 낭만보다 "대체 왜 여기까지 왔지" 싶은 순간이 훨씬 많다. 그냥 돌아가기엔 아까운 마음에 계속 올라갔다. 그리고 결국 그 풍경을 마주했다.

현실감이 없었다. 절벽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안에 집과 창문과 계단과 삶이 들어 있다. 사람은 원래 집을 짓는 존재인데, 마테라 사람들은 돌 속으로 들어갔다. 어쩌면 그게 더 오래된 방식이었을 것이다. 손으로 파낼 수 있다면 굳이 지을 필요가 없다.

마테라의 동굴들은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었다. 바닥에는 빗물을 모으는 정교한 집수 시스템이 있고, 벽에는 용도에 따라 칸칸이 나뉜 공간들이 있다. 어떤 동굴에는 교회까지 딸려 있다.

사시 구역 안에만 150여 개의 바위 교회(chiese rupestri)가 남아 있고, 비잔틴 양식의 프레스코화가 아직도 벽에 붙어 있는 곳도 있다. 문명이란 높이 올라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깊이 파고 들어가도 문명은 생긴다는 걸 마테라가 증명하고 있다.

9000년 역사의 마테라 전경 / 사진=박재희
9000년 역사의 마테라 전경 /사진=박재희

도시에는 다른 얼굴이 있다. 사시는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탈리아의 수치(la vergogna d'Italia)"로 불렸다. 가난 때문이었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동굴 안에서 말, 돼지와 같은 공간에 머물고 가축과 함께 자고 함께 밥을 먹었다. 아이들은 말라리아와 영양실조로 죽어갔다.

1945년, 작가 카를로 레비의 회고록 <그리스도는 에볼리에서 멈췄다> 에 마테라가 등장하면서 이탈리아 전체가 충격을 받았다. 당시 총리 알치데 데 가스페리가 직접 마테라를 방문한 뒤 "국가적 수치"라는 말을 남겼고, 1952년 정부는 강제 이주를 결정했다.

약 1만5000명의 주민이 새로 지은 공공주택 단지로 옮겨졌다. 몇 대에 걸쳐 살아온 곳을 떠나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끌어내다시피 해야 했다고 한다. 국가가 부끄러워서 사람들을 쫓아낸 도시. 역사에서 그런 경우가 흔하지는 않다.

그렇게 사시는 텅 비었다. 누군가의 불행이 누군가의 낭만이 되는 일.그런데 지금의 마테라는 세계적인 관광지다.

가난의 상징이던 동굴은 1박에 수백 유로짜리 감각적인 호텔이 되었다. 버려졌던 돌집은 레스토랑과 와인바로 바뀌었고, 낡은 교회는 갤러리로 탈바꿈했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2019년에는 유럽 문화수도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가난, 방치, 재생, 관광 자본, 문화 브랜딩. 이 모든 층위가 도시 하나에 겹쳐 있다.

마테라가 영화 촬영지로 자주 쓰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경 시대의 예루살렘처럼 보이기도 하고, 중세 도시 같기도 하고, 종말 이후의 폐허처럼 보이기도 한다.

멜 깁슨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를 여기서 찍은 것도, 제임스 본드 시리즈 <노 타임 투 다이> 의 추격전이 이 골목에서 벌어진 것도 우연이 아니다. 마테라는 어느 시대로든 쉽게 변장한다. 9천 년을 버텨온 얼굴은 어느 시대와도 불화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테라는 단순히 아름다운 고도(古都)라고만 할 수 없다. 관광지의 아름다움이 원래 누구의 불행 위에 세워졌는가, 라는 질문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도시도 드물다. 돌은 척박했고, 사람들은 그 돌을 파고 들어가 살아남았고, 쫓겨났고, 결국 타인들의 관광지가 되었다. 역사는 가끔 이런 식의 아이러니를 즐기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도망쳐야 했던 삶의 자리였는데, 다른 누군가는 거기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어쩌면 여행이란 원래 그런 건지도 모른다. 타자의 고단했던 시간을 낭만으로 바라보는 일. 그 사실을 알면서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일.

밤이 되어 전등이 켜진 후에도 야경은 도시의 것과 달랐다. 절벽의 작은 불빛들이 마치 동굴 안에서 누군가 아직도 불을 피워놓은 것처럼 흔들렸다. 현대의 전등인데도 이상하게 원시적이었다. 9천 년이라는 시간은 그리 쉽게 압축되지 않는 모양이다.

왜 어떤 사람들은 굳이 절벽 속으로 들어가 살았을까. 살아남기 위해 자기 몸을 돌에 맞춰 바꿔버린 사람들의 자리가, 수천 년을 지나 생존과 도피와 수치의 시간을 넘어 아름다움이 되었다.

그날 밤 캠핑장 흙바닥은 유난히 딱딱했다. 손으로 돌을 긁어내는 꿈을 꾸었다. 이집트 노예였던 것 같은데 노동은 길지 않았다. 오줌이 마려워 깼다.

신석기 시대 거주지와 중세의 돌로 만들어진 도시 사이 계곡 /사진=박재희
신석기 시대 거주지와 중세의 돌로 만들어진 도시 사이 계곡 /사진=박재희

여성경제신문 박재희 작가
jaeheecall@gmail.com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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