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잔 수집가, 요리사 김봉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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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잔 수집가, 요리사 김봉균의 이야기

더 네이버 2026-06-04 09:43:44 신고

3줄요약

북악산 자락 아래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는 소박한 가정식 형태의 양식을 판매하는 음식점 데미타스가 있다. 가파른 나무 계단을 밟고 2층에 들어서면 옛 목조 건물의 구조가 그대로 드러나는 작은 공간이 펼쳐진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김연화 실장의 작업실이자 그릇 전시 공간으로 처음 문을 열었고, 동생인 김봉균 대표가 이어받아 운영해오고 있다. 에스프레소를 담는 작은 잔을 뜻하는 데미타스는 김봉균 대표가 가장 애호하는 잔이기도 하다.
“오래 운영해주세요.” 단골손님들의 요청에 “10년만 할게요”라고 답했던 것이 어느덧 19년째를 맞았다. 유럽 출장을 다니며 빈티지 그릇을 하나둘 사 모으던 누나의 영향으로 북유럽 그릇 수집을 시작한 김봉균 대표는 이제 누나보다 더 많은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실물 컵으로는 모자랐던 걸까. 그의 팔에서 겹쳐 쌓은 데미타스 그림을 발견했다. 

1 매일 커피를 마시는 아라비아 핀란드의 루이자 톨컵을 손에 든 김봉균 대표. 2 어머니의 혼수 그릇. 데미타스에서 앞접시로 사용한다.

어쩌다 빈티지 그릇을 모으기 시작했나? 처음에는 그릇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누나가 모은 그릇들을 가까이서 보다 보니 눈에 익었는지 어느 순간 ‘괜찮네’ 싶더라. 그때부터 북유럽 그릇을 찾아보고 공부하며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다. 그릇의 절반은 이곳 데미타스에, 절반은 집에 두었는데 대략 200~300개 정도다. 컵류가 약 95%, 에그컵이 3%, 접시가 2%를 차지한다.


빈티지 잔은 어떤 경로로 구매하나? 중고 거래 사이트를 주로 이용한다. 지금은 한국에도 북유럽 빈티지 거래 시장이 활발하지만, 초창기에는 현지인 블로그를 찾아 못하는 영어로 메시지를 보내 구매하기도 했다. 한번은 해외 판매자에게 물품 대금 200만~300만원을 먼저 보냈는데, 두 달, 세 달이 지나도 물건을 보내지 않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소통 오류였던 것 같다. 나는 소장품을 구매한다고 생각했지만, 판매자는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구하는 대로 보내준다는 의미였을지도. 잊고 지내니 물건이 하나둘 왔다(웃음).


북유럽 그릇만 수집한다고 들었다.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모던하면서 나서지 않고 차분한 디자인이 매력적이다. 화려하거나 귀족적인 디자인은 쳐다보지도 않는다(웃음). 내 성격과 반대되는 느낌이라 끌리나 보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힐링 되는데, 나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게 아닐까 싶다. 

1 (왼쪽부터) 노란 꽃이 그려진 로스트란드 시파 머그, 피기오 안네마리 커피잔과 소서, 아라비아 핀란드의 플로라 라인 2종, 푸른 패턴의 아라비아 핀란드 아네모네. 2 붉은 테두리가 포인트인 아라비아 핀란드 아슬락 플레이트.


왜 현대 제품이 아닌 빈티지만을 고집하나? 아라비아 핀란드의 대표작 삼 형제인 루이자, 아네모네, 로즈마린 빈티지 잔을 자세히 보면 똑같은 컬러가 없다. 어떤 건 진하고, 어떤 건 흐리고 색감 차이가 드러난다. 같은 라인의 잔을 모아도 미세하게 다르기 때문에 비교하는 재미가 크다. 전사지를 입혀 기계처럼 찍어내는 요즘 제품과 확연하게 다른 점이다. 구스타브스베리의 ‘베르사’ 라인은 지금까지도 인기가 많아 복각판으로 재출시됐다. 하지만 지나치게 반짝이고 색감이 쨍해서 예전 제품에서 전해지는 느낌이 없다. 이 패턴을 좋아하는 분들은 복각 버전으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수집품을 들이는 기준이 궁금하다. 컵은 디자인 라인마다 크기별로 모으려 한다. 보통 중고 거래 사이트를 둘러보다 내게 없는 물건이면 일단 사고 본다. 살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명언이 있지 않나. 고민은 시간만 늦출 뿐이라고(웃음). 요즘은 에그컵에 반해서 에그컵 위주로 구매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보통 큰 잔을 선호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작은 잔을 좋아한다. 웬만한 데미타스 잔은 다 수집했으니 에그컵으로 시선이 돌아가더라. 서로 다른 디자인으로 30점가량 들였다. 작은 화분을 올려 장식한 것도 전부 에그컵이다. 


빈티지 그릇 입문자에게 팁을 전한다면? 디자인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영역이다. 남들이 좋다는 대로 따라가면 오랜 취미로 삼지 못할 것이다. 아라비아 핀란드의 루이자, 로즈마린, 아네모네 라인은 여전히 중고 시장에 활발히 유통되고 있어 입문용으로 구하기 쉽다. 또 빈티지 제품은 손상된 경우가 많다. 물을 먹으면 약해지기 때문에 가급적 자주 닦지 않는다.

1 쌀알 모양의 반투명 패턴을 수놓은 아라비아 핀란드 라이스 그레인 시리즈. 2 데미타스 잔이 쌓인 그림을 팔에 새겼다. 3 목이 긴 형태의 아라비아 핀란드 에그컵. 4 낮은 에그컵에는 작은 화분을 담아 장식했다.


음식점을 운영하며 그릇에 관한 생각이 바뀌었을 법하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속담처럼 같은 음식도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짐을 실감한다. 요리에 어울리는 그릇을 더 눈여겨보게 되었다. 최근에는 화려한 색의 접시에 눈길이 간다. 예를 들면 아라비아 핀란드의 아슬락 그릇. 빨간 테두리 띠가 매력적이라 조금 더 좋아한다. 데미타스에서 가장 비싼 찹스테이크 덮밥을 이 그릇에 담아 드린다(웃음).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잔이 있다면? 울라 프로코페가 디자인한 아라비아 핀란드의 루이자 톨컵. 커피믹스 한 잔이 딱 맞는 크기라 하루에 한 번은 꼭 사용한다. 루이자는 다량 생산된 라인이라 사이즈별로 갖고 있다.


특별히 아끼는 그릇은 무엇인가? 북유럽 빈티지는 아니고, 어머니가 결혼할 때 혼수로 가져오신 그릇이다. 당시 유행했던 미국 제품인데, 60년 정도 되지 않았을까. 원래 더 많았을 텐데 어머니가 살면서 처분하기도 하고 사용하다 깨뜨리기도 하셨다. 지금 돌아보면 소중한 물건이거늘, 잘 보관하지 못한 게 아쉽다. 집에 있는 것 중 몇 개를 가져와 손님 앞접시로 사용 중이다.


빈티지 그릇은 삶에 어떤 의미인가? 20년 동안 곁에 두고 봐온 만큼, 크게 심취해 있다기보다 일상에서 늘 함께하는 친구이자 장난감이다. 추억이 담긴 소장품이라 이가 나간 것도 멋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새로운 장난감인 올드카에 빠졌다. 30년 전 동경했던 자동차를 구입해 직접 수리해본다.  

더네이버, 라이프스타일, 컬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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