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아래는 이미 한여름을 향해 초록빛 장막을 두텁게 두르고 있지만, 해발 1000m 고지를 향해 무등산 능선을 오르다 보면 땀방울을 식혀줄 서늘한 바람이 뺨을 스친다. 우거진 숲길을 따라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쯤, 거짓말처럼 시야가 탁 트이며 하늘을 향해 자로 댄 듯 곧게 뻗은 거대한 돌기둥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의 힘으로는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이 압도적인 규모의 바위 성벽은 중생대 백악기 화산 활동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무등산 주상절리대다. 드넓은 국립공원 구역 안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지정 천연기념물과 명승이라는 두 겹의 보호막 아래 귀하게 보전되고 있는 지질 유산이다.
나뭇잎이 더 무성해져 이 장엄한 암석의 형태를 가려버리기 전, 숲의 푸른빛과 억억 년 세월이 새겨진 회색 바위 기둥이 가장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바로 지금이 무등산의 숨겨진 비경을 마주하기에 가장 알맞은 시기다.
8500만 년 지구의 역사, 무등산 주상절리대의 유래
광주광역시 동구 용연동 일대에 위치한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약 8600만 년에서 8400만 년 전 백악기 후기에 형성됐다. 당시 화산에서 분출한 뜨거운 마그마가 지표면 근처에서 공기와 만나 서서히 식어갔다. 부피가 줄어들고 수축하는 과정에서 마치 가뭄에 논바닥이 갈라지듯 바위에 틈이 생겼고, 이 틈을 따라 오각·육각형 모양의 긴 돌기둥들이 촘촘하게 생겨났다.
이렇게 태어난 바위들은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을 맞고 깎이는 과정을 겪으며 지금의 안성맞춤인 기둥과 병풍 형태로 자리 잡았다. 자연이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이 암석들은 2005년 12월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며 학술적 위상을 공인받았다. 나아가 주상절리대를 품은 무등산 일대는 한층 더 체계적인 보전과 관리를 위해 지난 201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국가 차원에서 소중히 다뤄지고 있다.
서석대·입석대·광석대, 자연이 빚은 암석 예술
주상절리대의 핵심은 서석대, 입석대, 광석대 세 구역으로 나뉜다. 그중 서석대는 거대한 돌기둥들이 병풍처럼 길게 늘어선 모습으로, 규모와 경관 면에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서석대는 다른 구역에 비해 비바람에 깎이는 풍화 과정이 상대적으로 적게 일어나 깎아지른 절벽 형태의 웅장함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반면 입석대와 규봉 암벽은 오랜 세월 깎이고 다듬어지며 기둥 모양이 한층 더 뚜렷하게 도드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입석대와 서석대에 자리한 돌기둥은 남한 지역에서 발견된 주상절리 중 단일 크기로는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해 학계에서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주상절리가 만들어낸 이 기막힌 바위 예술품들은 빼어난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규봉 일대를 중심으로 2018년 명승 제114호로 별도 지정되기도 했다.
산비탈의 너덜겅과 지역 주민들의 문화적 의미
무등산 정상부에서 오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돌기둥들은 산비탈을 따라 흘러내려 거대한 돌밭을 이루었다. 이를 순우리말로 '너덜겅' 혹은 '너덜지대'라고 부른다. 이는 단순히 부서진 돌무더기가 아니라, 지질학자들에게는 암석이 어떻게 태어나고 풍화되어 사라지는지, 그리고 과거 지구의 기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한 연구 자료가 된다.
이러한 지형들은 자연과학적 가치에만 갇혀 있지 않다. 수백 년 동안 무등산 자락에서 터를 잡고 살아온 주민들에게 주상절리대와 너덜지대는 거룩한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토착 신앙의 기도처나 종교적인 수행을 하는 귀중한 장소로 쓰이는 등, 무등산의 바위들은 지역민들의 삶과 역사, 그리고 정신문화 속에 깊숙이 녹아들어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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