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중1 자녀를 키우는 40대 학부모 김민정(가명) 씨는 3일 실시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소에서 교육감 선거 투표용지를 받고 당황했다. 시장·구청장 후보는 정당을 보고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었지만 교육감 후보는 이름만 보고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일하느라 교육감 후보들을 자세히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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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거주하는 60대 남성 최성근(가명) 씨도 교육감 후보 투표용지를 받고 어느 후보에 표를 던져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최씨는 두 자녀가 모두 성인이 된 이후 교육정책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아들 딸을 모두 대학에 보낸 뒤로는 교육정책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며 “후보도 누가 누군지도 몰라 손 가는 대로 찍고 나왔다”고 했다.
◇단일화 이전투구, 현금성 공약으로 표심 공략
올해로 시행 20년을 맞은 교육감 직선제가 여전히 안착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선거 때마다 ‘깜깜이’ 선거 논란으로 제도 개혁의 목소리만 높아지는 상황이다. 실제로 2024년 서울교육감 보궐선거 투표율은 23.5%, 2023년 울산교육감 보궐선거 투표율은 26.5%에 그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단일화 여부나 인지도 싸움에 주력하고 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로 정당 공천을 원천 차단했지만 이념 성향에 따라 후보 대부분이 특정 정당색과 유사한 파란색·빨간색 옷을 입고 선거 운동에 나섰다. 인지도보다는 유권자의 정당 지지도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단일화 싸움이 치열했던 서울과 인천에서 현직인 정근식·도성훈 후보가 ‘진보 단일화 후보’란 타이틀을 놓고 상대 후보를 고발하거나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아예 자극적인 현금 살포 공약으로 표를 얻으려는 후보도 많았다. 전북에서는 5000만원 규모의 ‘우리아이자립펀드’를 만들어 주겠다는 공약이 등장했다. 경기도에선 중1 학생들이 펀드계좌를 개설하면 100만원을 입금해주겠다는 공약이 나오기도 했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유권자들은 후보를 잘 모르고 후보들은 이름을 알려야 하니 ‘돈 풀기’ 식의 직관적으로 눈에 띄는 공약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당의 개입을 금지한 탓에 선거자금을 후보들이 ‘각자도생’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앙선관위)에 따르면 2018년 지방선거 당시 교육감 후보들이 사용한 선거 비용은 1인당 평균 11억원, 2022년 선거에서도 1인당 평균 10억원을 썼다.
후보 간 경쟁이 치열할수록 선거 비용은 상승한다. 2024년 서울교육감 보궐선거 당시 정근식 후보는 38억 2700만원을, 조전혁 후보는 38억 700만원을 중앙선관위에 청구했다.
교육감 후보들은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 기간 중 지출한 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지만 유효투표 수의 15% 이상을 득표해야 비용 전액을 보전받는다. 10% 이상 15% 미만을 득표하면 절반만 보전받을 수 있다.
교육감 후보들이 선거 후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받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007년 직선제 도입 이후 뇌물수수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교육감도 11명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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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폐해 드러나…바꿀 때 됐다”
교육계에선 교육감 선거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나오는 대안이 ‘러닝메이트제’다. 광역지방자치단체장 후보가 교육감 후보와 동반 입후보해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 방식이다. 교육감과 광역단체장의 이념 성향이 달라 교육정책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지난 20년간 드러난 폐해를 보면 교육감 직선제는 폐지해야 할 제도”라며 “지역의 육아·돌봄 등 교육감과 광역단체장은 협업할 일이 많다. 러닝메이트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중앙선관위의 역할을 확대해 선거 공영제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선관위가 후보 단일화를 주관해 단일화 결과를 승복하게 만들고 후보들의 공약을 소개하는 플랫폼을 만들어 유권자 관심을 높이자는 주장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선관위의 역할을 강화해 유권자들이 교육감 후보들의 이력·공약을 쉽게 파악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처럼 임명제로 돌아가자는 목소리도 있다. 교육감은 1998년 이전에는 대통령이 임명했으며 지방자치 시대 개막 이후에도 한동안 간선제(시도의회 교육위원과 학부모 대표가 선출)를 유지하다가 2007년부터 직선제가 시행됐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통령이 장관 추천을 받아 교육감을 임명하는 방식으로 직선제를 개편해야 한다”며 “교육부 장관이 현장 경험이 풍부한 교육계 인사들을 추천하면 각 지역의 교육자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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