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플러스] 결핍을 통해 증명되는 살아 있음의 감각,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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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플러스] 결핍을 통해 증명되는 살아 있음의 감각,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뉴스컬처 2026-06-03 15:11:2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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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사진=영화특별시SMC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사진=영화특별시SMC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유토피아는 언제나 완벽함의 이름으로 불린다. 고통이 제거된 세계, 갈등이 삭제된 사회, 결핍이 사라진 삶. 그러나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그 완벽함이 과연 인간에게 적합한 조건인가를 정면으로 묻는다. 영화는 이상향을 향한 동경이 아니라, 그곳을 떠나온 존재들의 선택을 통해 인간다움의 본질을 역으로 탐색한다.

김초엽 소설 원작 SF 애니메이션 영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의 설정 방향은 매우 흥미롭다. 대부분의 SF가 결핍에서 출발해 이상을 꿈꾼다면, 영화는 이미 완성된 세계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모든 것이 충족된 공간에서, 인물들은 오히려 결핍을 향해 걸어 나간다. 그것은 퇴행이 아니라 선택이며, 타락이 아니라 결단이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사진=영화특별시SMC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사진=영화특별시SMC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사진=영화특별시SMC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사진=영화특별시SMC

열여덟 살이 되면 지구로 순례를 떠나야 한다는 규칙은 사회가 개인에게 부여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이자, 존재의 방향을 시험하는 장치다. 그러나 영화는 이 의무를 따르는 것보다, 돌아오지 않는 이들의 선택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유토피아가 제공하지 못하는 어떤 감각을 발견한 사람들이다. 감정의 진폭, 관계의 균열, 사랑의 불완전성 같은 것들. 영화는 이러한 요소들을 결핍이 아닌 ‘살아 있음’의 증거로 제시한다.

허평강 감독은 원작의 편지 형식을 영상 언어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감정의 흐름을 재배치한다. 텍스트가 내면을 향해 수렴한다면, 애니메이션은 그것을 외부로 확장시킨다. 특히 오리지널 캐릭터로 재구성된 소피는 이 변화의 중심에 놓인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사진=영화특별시SMC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사진=영화특별시SMC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사진=영화특별시SMC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사진=영화특별시SMC

극 중 소피는 관찰자가 아니라 체험자가 된다. 원작에서 상대적으로 여백이 많았던 인물이 영화에서는 감정의 진동을 직접 전달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이는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이 가진 감각적 가능성과 맞물려 더욱 선명해진다.

김향기의 목소리는 소피를 설득력 있게 구축한다. 절제된 감정과 순간적으로 터지는 진폭 사이의 균형이 인상적이다. 소피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해가는 과정은 대사의 정보량보다 호흡과 여백에서 더 강하게 전달된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사진=영화특별시SMC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사진=영화특별시SMC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사진=영화특별시SMC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사진=영화특별시SMC

박지후가 연기한 데이지는 영화의 정서적 축을 담당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향해 나아가는 인물의 태도는 로맨스의 영역을 넘어선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이자, 존재의 방향에 관한 선언이다.

특히 극 중 위기의 순간에도 소피에게 무전을 보내는 장면은 영화가 말하는 사랑의 본질을 압축한다. 사랑은 안전한 상태에서만 지속되는 감정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도 유지되는 의지에 가깝다.

이주영이 맡은 올리브는 또 다른 서사를 보여준다. 체제에 저항하는 리더로서, 올리브는 유토피아의 균열을 가장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올리브의 존재는 영화가 단지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구조에 대한 질문까지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 인물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하나의 문제를 마주한다. 완벽함을 등지는 선택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그리고 무엇이 우리를 다시 불완전한 세계로 이끄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이러한 고민은 끝내 인간이라는 존재의 조건으로 귀결된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사진=영화특별시SMC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사진=영화특별시SMC

작품의 미장센 역시 주제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유토피아의 공간은 매끈하고 안정적인 이미지로 구성되지만, 지구는 균열과 흔들림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영화는 후자의 세계를 더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음악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새소년 황소윤이 구축한 사운드는 공간의 감각을 확장시키며, 인물의 내면을 외부로 끌어낸다. 특히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 음악은 설명을 대신하는 또 하나의 언어가 된다.

영화가 감성 SF로 불리는 이유는 기술적 상상력보다 정서적 공감에 있다. 세계관은 배경으로 기능할 뿐,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의 감정이 놓인다. SF라는 장르는 이 감정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사진=영화특별시SMC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사진=영화특별시SMC

흥미로운 점은, 작품이 ‘행복’의 개념을 재정의한다는 데 있다. 고통이 제거된 상태를 행복이라 부를 수 있는가. 아니면 고통과 기쁨이 함께 존재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인가. 영화는 후자의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둔다.

작품이 던지는 메세지는 일회성 감상에 머물지 않는다. 완전함을 향한 욕망과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충동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탐색하며, 관객 각자의 삶과 감각을 천천히 건드린다. 감정과 선택, 관계와 존재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힘은 이야기의 외연을 넘어 오래 잔존한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사진=영화특별시SMC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사진=영화특별시SMC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사진=영화특별시SMC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컷. 사진=영화특별시SMC

결국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유토피아를 부정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완벽함의 조건을 의심하고, 인간에게 필요한 세계의 형태를 다시 묻는 시도다. 그리고 그 질문은 스크린 밖으로 확장되어 관객 각자의 삶으로 이어진다.

돌아오지 않는 순례자들은 길을 잃은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다른 방향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 선택이 얼마나 복잡하고, 동시에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깊게 증명해낸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포스터. 사진=영화특별시SMC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포스터. 사진=영화특별시SMC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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