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플러스] 감각을 잠식하는 미지의 공간 '백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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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플러스] 감각을 잠식하는 미지의 공간 '백룸'

뉴스컬처 2026-06-03 11:48:2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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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백룸' 스틸컷.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리바이브콘텐츠(주)
영화 '백룸' 스틸컷.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리바이브콘텐츠(주)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영화 '백룸'은 인터넷 괴담의 집단적 상상력이 어떻게 현대 영화 산업의 중심으로 진입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작품은 공포 영화라는 범주를 넘어, 디지털 시대의 감각과 기억, 그리고 공간 인식이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백룸'이라는 개념은 이미 수년 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와 영상 플랫폼을 통해 확장되어 온 일종의 현대 신화다. 현실과 유사하지만 어딘가 어긋난 공간, 끝없이 반복되는 구조, 탈출이 불가능한 환경이라는 설정은 불안의 근원을 물리적 장소가 아닌 인식의 균열로 이동시킨다. 

영화 '백룸' 스틸컷.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리바이브콘텐츠(주)
영화 '백룸' 스틸컷.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리바이브콘텐츠(주)

케인 파슨스 감독의 존재는 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이자 핵심이다. 유튜브에서 출발한 창작자가 할리우드의 중심 제작 시스템과 결합하는 과정은 세대 교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영상의 변화, 제작 방식의 재편, 그리고 관객 경험의 재정의를 동시에 함축한다.

그의 초기 단편이 보여준 감각은 이미 완결된 스타일을 암시하고 있었다. 불안정한 카메라, 의도적으로 결핍된 정보, 반복되는 구조물의 리듬은 전통적인 공포 영화의 서사 중심 접근과는 다른 방향을 제시했다. 장면은 설명하지 않고, 공간은 서사를 대신한다.

영화 '백룸' 스틸컷.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리바이브콘텐츠(주)
영화 '백룸' 스틸컷.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리바이브콘텐츠(주)

'백룸'의 중요한 특징은 공간 자체가 이야기의 주체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등장인물은 그 안에서 기능적으로 존재할 뿐이며, 감정의 중심 역시 인물의 심리보다 환경의 압박에서 발생한다. 이는 ‘장소’가 아니라 ‘상태’로서의 공간을 구현하려는 시도다.

노란 벽과 형광등이라는 시각적 요소는 미장센을 넘어 감각적 공포를 구축하는 핵심 장치다. 따뜻함을 연상시키는 색채가 오히려 불안과 공허를 증폭시키는 역설은, 익숙함이 위협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정밀하게 포착한다.

이러한 시각적 전략은 제작사 A24의 기존 작업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정적과 여백을 통해 긴장을 축적하는 방식, 이미지 자체가 감정의 흐름을 지배하는 구조는 이미 이 제작사가 구축해온 미학적 방향성과 맞닿아 있다.

영화 '백룸' 스틸컷.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리바이브콘텐츠(주)
영화 '백룸' 스틸컷.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리바이브콘텐츠(주)

여기에 아토믹 몬스터의 참여는 공포의 물리적 감각을 강화한다. 제임스 완 계열 작품들이 보여준 공간 활용 능력은 폐쇄된 환경에서의 긴장 설계에 특화되어 있다. '백룸'에서는 이 노하우가 ‘무한한 폐쇄성’이라는 역설적인 구조로 확장된다.

21 랩스 엔터테인먼트의 합류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들이 구축해온 세계관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서서히 침식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한다. '백룸' 역시 일상의 공간에서 출발해 비현실로 미끄러지는 구조를 통해 관객을 끌어들인다.

세 제작사의 결합은 협업 이상의 의미를 형성한다. 각각의 강점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될 때, 영화는 기존의 장르 규칙을 넘어서는 형태를 띠게 된다.

영화 '백룸' 스틸컷.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리바이브콘텐츠(주)
영화 '백룸' 스틸컷.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리바이브콘텐츠(주)

배우 캐스팅 역시 영화의 질감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추이텔 에지오포는 이성적 판단과 감정적 동요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인물 구현에 강점을 지닌 배우다. 그의 시선과 호흡은 공간의 이상성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레나테 레인스베는 감정의 미세한 균열을 표현하는 데 탁월한 배우다. 그녀의 존재는 공포 반응을 넘어, 상황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복합적인 심리를 세밀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영화 '백룸' 포스터.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리바이브콘텐츠(주)
영화 '백룸' 포스터.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리바이브콘텐츠(주)

메인 포스터가 보여주는 두 인물의 대비는 이 영화의 정서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벽에 기대어 있는 불안과 위를 올려다보는 탐색은 각각 ‘내부의 공포’와 ‘외부의 미지’를 상징한다. 이 두 감정은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축으로 작용한다.

예고편에서 드러난 가구 매장이라는 출발점은 특히 흥미롭다. 가장 일상적이고 소비적인 공간이 비현실로 이어지는 통로로 변모하는 설정은 현대 사회의 공간 경험을 날카롭게 반영한다. 익숙한 구조가 갑자기 낯설어지는 순간, 관객의 감각은 급격히 흔들린다.

영화가 ‘체험형 공간 스릴러’로 불리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공간 속에 갇힌 감각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관객을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극장이라는 물리적 장소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전 세계 최초 한국 개봉이라는 전략 또한 의미심장하다. 이는 배급 순서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 시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장르 경험을 먼저 시험해보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한국 관객의 장르 수용력과 몰입도가 선택의 배경이다.

영화 '백룸' 스틸컷.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리바이브콘텐츠(주)
영화 '백룸' 스틸컷.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리바이브콘텐츠(주)

'백룸'은 공포의 정의를 새롭게 세우려는 하지 않고, 공포가 감각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집요하게 밀어붙인다. 설명되지 않는 공간과 반복되는 구조, 탈출이 불가능한 상황은 서사를 구성하는 장치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의 체험으로 작동한다. 관객은 이야기를 이해하기보다 그 안에 머무르게 되고, 그 체류 자체가 공포의 핵심으로 자리한다.

또한 영화는 사건의 전개를 따라가는 대신 감각의 지속을 선택한다. 각각의 장면은 의미를 해설하기보다 상태를 유지하고 확장시키며, 그 과정에서 긴장은 서서히 축적된다. 명확한 설명 없이 이어지는 이미지들은 불안을 분해하지 않고 오히려 증폭시키며, 관객의 인식 속에 잔존한다.

결국 '백룸'이 남기는 것은 결말이 아니라 잔상이다. 극장을 벗어난 이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공간의 감각, 방향을 잃은 채 반복되는 이미지의 기억이 관객의 내면에 길게 머문다. 이처럼 영화는 상영 시간이 끝난 이후까지 이어지는 감각의 여운을 통해, 스크린 바깥까지 확장되는 공포를 완성한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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