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보험사 건전성 규제의 무게중심을 '자본의 양'에서 '자본의 질'로 옮기면서 보험업계 자본관리 전략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그동안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통해 지급여력(K-ICS·킥스) 비율을 관리하던 방식이 한계를 맞으면서 보험사들의 경쟁력 기준도 '조달 능력'에서 '내부 자본 축적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보험사들의 자본성증권 발행 규모는 급감했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기준 지난달 기준 자본성증권 발행 규모는 542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조7250억원 대비 88.5% 감소했다. 올해 신규 발행 사례는 DB손해보험의 442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과 흥국화재의 1000억원 규모 후순위채 정도에 그쳤다.
그 배경에는 금융당국의 기본자본 중심 규제 강화가 자리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내년부터 보험사 기본자본 지급여력비율(K-ICS) 제도를 도입하고 기본자본비율 50%를 새로운 건전성 기준으로 적용할 방침이다. 기준에 미달할 경우 적기시정조치 대상이 되며, 2035년까지 단계적 경과조치가 적용된다.
기본자본은 자본금과 이익잉여금 등 손실흡수력이 높은 순수 자본을 의미한다. 반면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은 보완자본으로 분류된다. 지금까지는 보완자본을 포함한 전체 가용자본 기준으로 킥스 비율을 관리해 왔지만 앞으로는 기본자본 자체를 별도로 평가받게 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보험업계에서는 사실상 '빚내서 건전성 관리하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최근 보험사들의 행보도 달라지고 있다. 현대해상은 올해 3500억원 규모 후순위채를 차환 발행하지 않고 현금 상환했으며, KB손해보험도 3790억원 규모 후순위채 상환을 선택했다. 과거 같으면 만기 도래 자본성증권을 다시 발행해 차환하는 이른바 '돌려막기'가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기본자본 관리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업계에서는 보험사 경쟁의 룰 자체가 바뀌고 있다고 보고 있다. 과거에는 시장에서 얼마나 저렴하게 후순위채를 발행하고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느냐가 건전성 관리의 핵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얼마나 많은 순이익을 창출하고 이를 이익잉여금으로 축적할 수 있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최근 정부가 보험업권에 생산적 금융 확대를 주문하고 있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보험업계는 향후 5년간 생산적 금융 분야에 40조원을 공급하고 국민성장펀드에도 8조원을 출자하기로 했다. 동시에 주주들의 배당 확대 요구도 이어지고 있다. 결국 투자 확대와 주주환원, 자본 확충이라는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보험사 간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대형 보험사는 높은 이익창출력과 자본여력을 바탕으로 기본자본을 꾸준히 늘릴 수 있지만 중소형사는 자본 확충 부담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금융당국도 기본자본 규제 도입 과정에서 일부 보험사의 자본 개선 부담을 고려해 9년간의 경과조치를 마련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후순위채 발행만으로도 일정 부분 건전성 지표를 관리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자본의 질 자체가 평가 대상이 된다"며 "보험사 경쟁력의 기준이 자산 규모나 조달 능력보다 이익창출력과 내부 자본 축적 능력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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