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마시고, 입고, 바르고, 보는' 모든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알고 보면 더 재밌는 유통가 뒷얘기와 우리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비재와 관련된 정보를 쉽고 재밌게 풀어드리겠습니다.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자 주]
"지난번에 샀던 수박은 정말 달았는데 이번 것은 왜 이렇지?"
과일을 사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입니다. 사과도 수박도 참외도 겉모습은 비슷한데 맛은 제각각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일종의 '복불복 쇼핑'인 셈이지요.
그런데 최근 유통업계가 이 복불복을 없애기 위해 인공지능(AI)을 꺼내 들었습니다. 대형마트와 이커머스 업체들이 앞다퉈 AI 과일 선별 시스템을 도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과일은 공산품과 달리 생산 환경에 따라 품질 편차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농장에서 수확한 과일이라도 당도와 숙성도, 식감이 조금씩 다릅니다. 소비자는 한 번 실망하면 재구매를 망설이게 되고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품질 신뢰도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크고 예쁜 과일보다도 "이번에도 맛있을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AI가 보는 과일 속사정
그래서 등장한 것이 AI 선별 기술입니다. 예전에는 작업자가 눈으로 크기와 색깔을 확인해 등급을 나눴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비파괴 광학 센서와 컴퓨터 비전 기술을 활용해 과일 속 상태까지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비파괴 검사는 과일을 자르거나 손상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내부 정보를 확인하는 기술입니다. 광학 센서가 과일에 빛을 쏘고 반사되는 데이터를 분석해 당도와 숙성 상태를 예측합니다. 여기에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품질을 분류합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 눈으로는 알기 어려운 과일의 '속사정'을 AI가 대신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이 같은 기술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온라인 장보기 시장의 성장도 있습니다. 농축수산물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2023년 10조9440억원에서 2024년 12조9584억원으로 늘었고 2025년에는 14조6125억원으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는 소비자가 직접 과일을 만져보거나 고를 수 없습니다. 상품 설명과 브랜드 신뢰가 사실상 구매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같은 당도와 같은 품질의 과일을 꾸준히 공급하는 것이 경쟁력으로 떠오르는 이유입니다.
복불복 과일 잡는 유통가
실제로 유통업계는 AI 선별 과일을 프리미엄 상품으로 육성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쿠팡은 여름 과일 성수기를 앞두고 감귤·참외·수박 등에 AI 과일 선별기 도입을 확대했습니다. 비파괴 광학 센서와 컴퓨터 비전 기술을 활용해 과일의 당도와 수분 함량, 내부 상태 등을 분석하고 외형뿐 아니라 내부 밀도까지 측정합니다.
특히 수박은 기존에 전문 선별사가 두드려 발생하는 음파를 분석하는 타동 선별 방식에 의존했습니다. 반면 AI 선별 시스템은 심부 변질이나 공동과 같은 내부 결함까지 높은 정확도로 찾아낼 수 있습니다.
롯데마트도 적극적입니다. 비파괴 당도선별이 가능한 모든 과일에 대해 100% 당도선별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사과와 참외 등 11개 품목은 기준 당도 이상을 충족한 상품만 매장에 입고합니다.
일반적으로 당도 선별을 하지 않는 샤인머스캣까지 전량 검사하는 점도 특징입니다. 여기에 2022년 멜론을 시작으로 AI 선별 시스템을 도입해 현재 9개 품목으로 확대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딥러닝 기반 분석 기술을 접목해 당도와 중량뿐 아니라 내부 갈라짐과 숙도, 수분 함량까지 분석합니다. 수박과 멜론의 내부 결함, 복숭아의 핵할 현상까지 선별 대상에 포함했습니다. 그 결과 AI 선별 과일 매출은 2022년 대비 7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불량률도 판매량 대비 0.01% 이내로 관리되며 도입 이전보다 약 30% 개선됐습니다.
롯데마트는 기술 기반의 품질 역량을 바탕으로 고당도 과일 라인업도 확대하고 있습니다. 일반 상품보다 1브릭스 이상 높은 당도의 원물을 선별해 고당도 상품으로 판매하고, 20% 이상 높은 당도를 갖춘 상품은 자체 브랜드 ‘황금당도’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격보다 품질이 경쟁력
결국 과일 시장 경쟁도 가격 경쟁에서 품질 경쟁으로 옮겨가는 모습입니다. 누가 더 싼 과일을 파느냐보다 누가 더 실패 없는 과일을 제공하느냐가 중요해진 것입니다.
소비자는 달콤한 사과 한 알을 기대하며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그리고 유통업계는 그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AI에게 과일 감별사 역할을 맡기고 있습니다.
앞으로 마트에서 과일을 고를 때 "AI가 선별한 과일"이라는 문구를 더 자주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미래의 과일 쇼핑 기준은 원산지나 크기가 아니라 'AI 인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비파괴 검사=과일을 자르거나 손상시키지 않고 빛이나 초음파 등을 활용해 내부 상태를 확인하는 기술이다. 당도와 숙도, 내부 결함 등을 판별할 수 있어 신선식품 품질 관리에 활용된다.
☞브릭스(Brix)=과일이나 음료에 포함된 당분 농도를 나타내는 단위다. 1브릭스는 용액 100g에 당분이 1g 들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브릭스 수치가 높을수록 단맛이 강한 것으로 평가되며, 과일의 품질을 판단하는 주요 기준 중 하나로 활용된다.
여성경제신문 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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