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재 굿네이버스 아주좋은이웃심리치유센터장. ⓒ정욱재
심리치유센터를 운영하며 위기 아동을 만날 때마다, 의뢰된 문제보다 더 깊고 복합적인 상처가 존재함을 확인한다. 지역 내 복지네트워크를 통해 위기가정 생계비 지원을 요청하려고 본 센터와 연계되었으나, 사정 과정에서 드러난 핵심 문제는 경제가 아닌 아동의 심각한 학대 경험이었다. 보호자는 상담 과정에서 아동이 피해를 재경험하는 것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인식과 당시 남편의 부도로 인한 경제적 부담으로 심리치료를 미루었고, 그 사이 아동은 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아동 모는 아동의 환경을 바꾸기 위해 전학을 선택했지만, 심리적 외상은 장소를 옮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새로운 학교에서 아동은 타인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교우관계와 일상에 어려움을 겪었다. 2년 만에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단순한 부적응이 아니라 장기화된 트라우마가 아동의 삶 전반을 흔드는 상태가 되었다.
학대 피해로 인해 나타나는 공포, 과각성, 위축, 분노, 주의집중 저하와 같은 외상 반응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착화된다. 이는 학교에서는 산만함과 공격성, 결석과 무기력으로 나타나고, 또래 관계에서는 불신과 회피로 이어진다. 흔히 ‘문제행동’으로 해석되지만, 실제로는 치료받지 못한 외상이 보내는 ‘마음의 신호’일 수 있다. 아동의 부적응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회복되지 않은 외상이 기능을 잠식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이 사례는 피해아동에 대한 심리치료 지원이 부모의 선택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부모의 다양한 상황으로 인해 적절한 심리치료가 병행되지 않을 경우 외상은 만성화되고 회복은 지연된다. 아동은 스스로 치료를 결정하고 접근할 권한이 제한된 존재이기에, 보호자의 판단이 적절히 작동하지 않을 경우 그 공백은 아동의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심리치료는 선택 가능한 서비스가 아니라 공공이 보장해야 할 기본적 회복 지원으로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영유아 발달검사가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발달지연을 조기에 발견하고 개입 시점을 앞당기는 역할을 하듯, 일정 수준 이상의 학대 피해가 확인된 경우에는 보호자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최소한의 심리평가와 초기 개입이 가능하도록 ‘아동 중심 치료 접근권’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학생맞춤형 통합지원체계는 아동 중심 지원제도의 하나로, 전학이나 이주 상황에서도 치료적 개입이 단절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되어야 한다.
교육부에서 추진 중인 학생맞춤형 통합지원체계는 상담, 치료, 지원 네트워크를 아동 중심으로 연결하고 있으며, 실제 현장에서도 이를 통해 필요한 개입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굿네이버스는 ‘마음이 보내는 알림’ 캠페인을 통해 아동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지원으로 연결하기 위한 사회적 인식 확산을 추진하고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학대 피해 아동의 회복과 사회 재통합을 국가의 책임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보호를 넘어 회복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할 의무가 공공에 있음을 의미한다. 더 이상 아동의 회복을 보호자의 선택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한 아이의 회복을 적시에 지원하는 일은 비용이 아니라 사회가 반드시 감당해야 할 기본적 책임이다. 아동이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제도와 시스템이 먼저 신호를 읽고 개입하는 구조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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