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사용량이 급격히 늘어난 155mm 포탄 확보가 유럽의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부족한 포탄을 확보하기 위한 생산 확대에 이어 최근에는 국가마다 조금씩 다른 155mm 포탄을 회원국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표준화 작업도 본격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공급 능력을 인정받아 온 한국산 포탄이 새로운 경쟁 기준에 놓이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 155mm 포탄 확보 총력전···생산 확대 나선 유럽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155mm 포탄은 현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이 가장 널리 사용하는 포탄이다. 한국의 K9 자주포를 비롯해 독일 PzH2000, 프랑스 세자르, 폴란드 크라브 등 주요 자주포 대부분이 155mm 포탄을 사용한다.
이러한 155mm 포탄의 재고 상황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크게 달라졌다. 전선에서 막대한 양의 포탄이 사용되면서 유럽 각국은 부족해진 재고를 채우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EU(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전쟁 이전 연간 약 30만발 수준이던 유럽의 155mm 포탄 생산능력은 최근 연간 200만발 수준까지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EU는 전쟁 이후 탄약 생산 확대를 위해 대규모 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23년 발표한 탄약생산지원법(ASAP)을 통해 생산시설 증설에 나섰고, 이후 공동구매와 역내 공급망 육성 정책도 확대했다. 실제로 체코가 주도하는 탄약 지원 사업에는 여러 유럽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폴란드와 독일 등은 자체 생산시설 확대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특히 폴란드는 최근 155mm 포탄 생산 확대를 위해 현지 생산시설 구축과 기술 확보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단순 수입보다 직접 생산 비중을 늘리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유럽은 포탄을 여러 국가가 함께 구매하는 방식도 확대하고 있다. 전쟁 이후 각국이 동시에 포탄 확보에 나서면서 공급 부족이 심해지자 필요한 물량을 공동으로 구매하는 움직임이 늘어난 것이다. 유럽국방청(EDA)도 회원국들의 공동구매를 지원하며 탄약 확보에 나서고 있다.
◇ 유럽, 함께 쓰는 포탄 만든다···표준화 작업 본격화
이처럼 생산 확대와 공동구매를 추진해 온 유럽은 최근 한 단계 더 나아가 포탄을 회원국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표준화 작업에도 착수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같은 155mm 포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가와 제조사에 따라 세부 규격과 검증 절차가 다르다. 같은 구경의 포탄을 사용하더라도 장약이나 신관, 시험 기준 등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한 국가에서 사용하던 포탄을 다른 국가가 바로 활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발생한다. 유럽이 공동 인증 체계 구축에 나선 배경이다. EDA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3월 ‘공동탄약자격인증 프로그램(JAQ)’을 발표했다. 155mm 포탄을 시작으로 회원국 간 시험과 평가 절차를 통합해 한 국가의 검증 결과를 다른 국가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나토 역시 탄약 표준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 덴마크 국방부는 지난해 여러 나토 회원국이 참여하는 155mm 탄약 공통설계 개발 협력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EDA는 소구경 탄약 분야까지 표준화 범위를 넓히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장기적으로 유럽 공통 인증체계 구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 가격보다 인증 중요···K포탄 향방은?
이 같은 변화는 유럽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국내 업체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그동안 한국산 155mm 포탄은 빠른 납기와 대량 생산능력을 강점으로 평가받아 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글로벌 포탄 부족 현상이 심화되면서 한국은 미국과 유럽의 주요 공급처 가운데 하나로 주목받았다.
실제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산 155mm 포탄을 대량 구매해 우크라이나 지원에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한국은 단기간에 대규모 물량을 공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글로벌 포탄 공급망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유럽이 생산 확대와 공급망 강화를 추진하면서 국내 업체들도 현지 생산 기반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풍산은 155mm 포탄 생산능력 확대를 추진하는 한편, 폴란드 등 유럽 현지 생산 거점 확보도 검토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폴란드에서 모듈형 장약(MCS) 현지 생산과 장기적인 155mm 포탄 생산체계 구축을 추진하며 유럽 현지화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번 변화가 단순히 포탄 수출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K9 자주포 수출은 포탄과 장약, 군수지원 등이 함께 제공되는 경우가 많아 포탄 관련 기준 변화는 포병체계 전체의 경쟁력과도 연결될 수 있다.
특히 유럽은 최근 역내 생산과 공급망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 시장에서는 단순히 제품을 공급하는 업체보다 현지 공급망과 인증 체계에 참여할 수 있는 기업의 중요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에 정부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달 11일 나토와 개최한 제2차 한·나토 방산협의체에서 나토 기준에 맞는 무기체계 개발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날 방사청은 국내 방산업체들의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해 나토 표준 정보 확보가 중요하다고 설명했으며, 나토 측은 탄약 분야 공동협력 사업에 한국의 참여를 요청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확대될수록 유럽 포탄 시장 경쟁도 가격과 납기 중심에서 시험 데이터와 품질관리, 상호운용성 검증 능력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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